낙타가 죽으면
최승호
낙타가 죽으면
낙타가 죽었다고 말하지 말고
사막의 고요 속으로 들어갔다고
고요의 사막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해주기 바란다
낙타가 앞으로 꽤 오래 살겠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으므로
언젠가 낙타가 죽으면
죽었다고 말하지 말고
낙타가 태어나기 전에 달빛 속으로 들어갔다고
말해주기 바란다
달빛 환한
그곳은 그곳이라고 말할 수 없는 곳이다
그곳이라고 말할 수 없는 그곳에서
낙타는 몸뚱이를 벗고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누워있을 수 없다
서 있을 수도 없다
물론 성큼성큼 걸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난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넌 적이 있었다.
그랬다!
엎드린 낙타의 등위에 앉은 뒤,
낙타가 무릎을 펴고 일어났을 때,
내 몸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그 곳에서 멈췄다.
그대로 하늘 가까운 곳에 정지된 채 그저 고요속으로 잠겼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본 나는 안다.
낙타가 얼마나 초연한 짐승인가를... 그 초연함 앞에 있으면 낙타와 한몸처럼 깊이 가라앉음 혹은 들뜸을 느끼게 된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는 사람은 뜨거운 태양빛도 사막의 모래바람도...
그것을 막으려고 손그늘을 짓거나 머리를 돌리거나 하는 일을 저절로 거두게 된다.
낙타는 사막을 건너면서 그 커다란 몸을 흔들지 않는다.
다만 걸을 뿐인데..
물렁한 발로 그저 걸을 뿐이다.
물렁한 발은 커다란 몸의 흔들림을 모두 받아들인다.
물렁한 발은 모래의 깊고 깊은 함몰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낙타는 그저 사막을 고요히 건넌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물 위를 걷는 작은 새처럼... 그렇게 사막을 건넌다.
낙타를 타고 소리도 없는 사막을 건너다 눈을 감아보면 안다
내가 타고 있는 것이 낙타가 아니라 그저 고요이며 적막인 것을... 그대로 온 몸을 고요와 적막에 맡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 낙타에게 살았다는 말을 붙일 수는 없다.
마치 처음부터 사막에서 태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그저 사막의 고요속에 포함된 것일뿐.
그저 낙타는 물렁한 발을 가져서 사막의 물렁한 모래와 한 몸으로 그저 섞여있었을뿐
언제나 그렇게 지낼 뿐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갔던 곳은 하늘이 아니었나싶다.
낙타가 이곳이라고 할 수 없는 이곳에서 저곳이라 할 수 없는 저곳으로 나를 옮겨주었지 않았나싶다.
물렁한 발을 가진 낙타를 타고 하늘을 오른 적이 있었다.
그러고보니...
난 이미 오래전에 이곳이 아닌 저곳에서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여기가 이미 저곳인지 모를 일이다.
이미 저곳!
이미 저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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