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번 날자꾸나
김종삼
내가 죽어가던 아침나절 벌떡 일어나
날계란 열 개와 우유 두 홉을 한꺼번에 먹어댔다
그리고 들로 나가 우물물을 짐승처럼 먹어댔다
얕은 지형지물들을 굽어보면서 천천히 날아갔다
착하게 살다가 죽은 이의 죽음도 빌려 보자는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더욱 천천히
죽을만큼 힘이 없고 아플때가 있었다.
온 몸이 텅비어진 느낌의 허기.
그럼 아무 생각도 없이 무엇을 먹어댔다.
그것이 그저 나의 생존본능이겠거니 생각했다.
아파 죽겠다면서 입맛이 없어야 정상인데.. 그때는 마치 개걸스럽게 닥치는대로 먹어치운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까지도...
그리고
집을 나가 아주 재미없는 내용만 무거운 영화를 본다.
'21g'같은 류의 영화였던 것 같다.
그것도 두번 세번 연달아서 본다.
캄캄하게 어둠이 내리고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더욱 무거워진 몸으로 휘청이며 걷게 된다.
그날 내가 먹어치운 것은 에너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게가 된다.
내가 본 것들 또한 무게가 된다.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더욱 천천히
무거워진 몸은 천천히 천천히 걷게 한다.
아무 것도 내 몸에 남은 것이 없는 허기라는 것은 나를 치닫게 한다.
삶이라는 것의 반대 방향에 놓인 쪽으로
현재라는 것의 반대 방향에 놓은 쪽으로
아주 빠르게 달리게 한다. 어느덧 코앞을 보면 그 곳이 이미 보일 정도로...
무게를 만들기 위해 정신없이 먹어치우던, 무게를 만들기 위해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봐대던 그날들은 무게가 필요한 날들이었다.
모처럼 김종삼의 시집을 열었다.
손으로 가른 페이지에서 이 시가 있었고...
어느날들이 생각났다.
웃기게도 그때 먹어치운 것들이 만들어낸 무게가 지금도 내 몸에 고스란히 지방으로 남아있다.
오 마이 갓!!!!
이제는 빼!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명순] 봄날은 간다 (0) | 2008.03.12 |
---|---|
[옥따비오 빠스] 새벽 Madrugada (0) | 2008.03.04 |
[신용목] 틈 (0) | 2008.02.20 |
만남- 네루다, 꼬르따사르, 체게바라, 나 (0) | 2008.01.29 |
[이성복] 라라를 위하여 (0) | 2007.10.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