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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김종삼] 또 한번 날자꾸나

by 발비(發飛) 2008. 2. 29.

또 한번 날자꾸나

 

김종삼

 

내가 죽어가던 아침나절 벌떡 일어나

날계란 열 개와 우유 두 홉을 한꺼번에 먹어댔다

그리고 들로 나가 우물물을 짐승처럼 먹어댔다

얕은 지형지물들을 굽어보면서 천천히 날아갔다

착하게 살다가 죽은 이의 죽음도 빌려 보자는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더욱 천천히

 

 

죽을만큼 힘이 없고 아플때가 있었다.

온 몸이 텅비어진 느낌의 허기.

그럼 아무 생각도 없이 무엇을 먹어댔다.

그것이 그저 나의 생존본능이겠거니 생각했다.

아파 죽겠다면서 입맛이 없어야 정상인데.. 그때는 마치 개걸스럽게 닥치는대로 먹어치운다.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까지도...

 

그리고

집을 나가 아주 재미없는 내용만 무거운 영화를 본다.

'21g'같은 류의 영화였던 것 같다.

그것도 두번 세번 연달아서 본다.

캄캄하게 어둠이 내리고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더욱 무거워진 몸으로 휘청이며 걷게 된다.

 

그날 내가 먹어치운 것은 에너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게가 된다.

내가 본 것들 또한 무게가 된다.

 

생각도 하면서 천천히

더욱 천천히

 

무거워진 몸은 천천히 천천히 걷게 한다.

 

아무 것도 내 몸에 남은 것이 없는 허기라는 것은 나를 치닫게 한다.

 

삶이라는 것의 반대 방향에 놓인 쪽으로

현재라는 것의 반대 방향에 놓은 쪽으로

아주 빠르게 달리게 한다. 어느덧 코앞을 보면 그 곳이 이미 보일 정도로...

 

무게를 만들기 위해 정신없이 먹어치우던, 무게를 만들기 위해 볼 수 없었던 영화를 봐대던 그날들은 무게가 필요한 날들이었다.

 

모처럼 김종삼의 시집을 열었다.

손으로 가른 페이지에서 이 시가 있었고...

어느날들이 생각났다.

웃기게도 그때 먹어치운 것들이 만들어낸 무게가 지금도 내 몸에 고스란히 지방으로 남아있다.

 

오 마이 갓!!!!

이제는 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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