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읽히는대로 詩

[신용목] 틈

by 발비(發飛) 2008. 2. 20.

 

신용목

 

바람은 먼곳에서 태어나는 줄 알았다 태풍의 진로를 거스르는 적도의 안개 낀 바다나 계곡의 경사를 단숨에 내리치는 물보라의 폭포

혹은 사막의 천정, 그 적막의 장엄

아랫목에 죽은 당신을 누이고 윗목까지 밀려나 방문 틈에 코를 대고 잔 날 알았다

달 든 밖은 감잎 한 장도 박힌 듯 멈춘 수묵의 밤 소지 한 장도 밀어넣지 못할 문틈에서 바람이 살아나고 있었다 고 고 고 좁은 틈에서 달빛과 살내가 섞이느라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육체의 틈 또는 마음의 금

그날부터 한길 복판에서 간절한 이름 크게 한번 외쳐 보지도 못한 몸에서도 쿵쿵 바람이 쏟아져나왔다 나와 나 아닌 것 삶과 삶 아닌 것이 섞이느라 명치끝이 가늘게 번져 있었다

 

 

삶을 해독하는 실타래의 역할.

 

해독[解讀]- 잘 알 수 없는 암호나 기호 따위를 읽어서 풂.

해독[解毒]- 몸 안에 들어간 독성 물질의 작용을 없앰.

 

내가 말하는 것은 첫번째 해독이다.

때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건 이상하게도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점점 더 알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난다.

똑똑함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우매함의 극치... 그 때가 되면 삶이 끝나버릴 것 같다. 도무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그 때가 내가 다하는 때.

 

두번째 해독도 영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다.

단 몇 줄만에 생각을 바꿨다.

 

시- 삶을 해독하는 실타래

 

시인은 틈에서 이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틈사이로 이는 바람은 차고도 맵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바람이다.

강력하지.

 

 

육체의 틈 또는 마음의 금

그날부터 한길 복판에서 간절한 이름 크게 한번 외쳐 보지도 못한 몸에서도 쿵쿵 바람이 쏟아져나왔다 나와 나 아닌 것 삶과 삶 아닌 것이 섞이느라 명치끝이 가늘게 번져 있었다

 

그 사이로 바람이 인다.

나도 당신에게 내 몸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의 자리에 당신을 내어주었더랬다.

그때부터 내 몸에서는 바람이 일었었다.

언제, 어디, 무엇, 어떻게 하더라도 내 몸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일었다. 추웠다.

그 자리를 내어주고부터 난 나도 아닌, 당신도 아닌 바람이는 어느 틈에서 살고 있다.

혹 이리 바람이 불다보면

풍화되어 날리는 작은 내 몸 어느 것들이 틈새를 메우기도 할라나... (아직도 그런 미련을 갖고 있는)

 

해독된다.

 

나의 왼쪽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이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언젠가부터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것도...

그도 나도 살지 않는 빈 심장이라는 것도...

 

그래서 살아있는 것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먼 곳에 가까워지고 있다.

 

오늘 시인의 '틈'을 읽으며

내 몸에서 바람이 일면서 소리를 낸다.

들어보니 빈 심장에서 아직 남아있는 당신의 소리가 아직... 조금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장이 조금이나마 뛰고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