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
신용목
바람은 먼곳에서 태어나는 줄 알았다 태풍의 진로를 거스르는 적도의 안개 낀 바다나 계곡의 경사를 단숨에 내리치는 물보라의 폭포
혹은 사막의 천정, 그 적막의 장엄
아랫목에 죽은 당신을 누이고 윗목까지 밀려나 방문 틈에 코를 대고 잔 날 알았다
달 든 밖은 감잎 한 장도 박힌 듯 멈춘 수묵의 밤 소지 한 장도 밀어넣지 못할 문틈에서 바람이 살아나고 있었다 고 고 고 좁은 틈에서 달빛과 살내가 섞이느라 바람을 만들고 있었다
육체의 틈 또는 마음의 금
그날부터 한길 복판에서 간절한 이름 크게 한번 외쳐 보지도 못한 몸에서도 쿵쿵 바람이 쏟아져나왔다 나와 나 아닌 것 삶과 삶 아닌 것이 섞이느라 명치끝이 가늘게 번져 있었다
삶을 해독하는 실타래의 역할.
해독[解讀]- 잘 알 수 없는 암호나 기호 따위를 읽어서 풂.
내가 말하는 것은 첫번째 해독이다.
때로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그건 이상하게도 한 해가 지날 때마다 점점 더 알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난다.
똑똑함과는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우매함의 극치... 그 때가 되면 삶이 끝나버릴 것 같다. 도무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을 그 때가 내가 다하는 때.
두번째 해독도 영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다.
단 몇 줄만에 생각을 바꿨다.
시- 삶을 해독하는 실타래
시인은 틈에서 이는 바람을 이야기한다.
틈사이로 이는 바람은 차고도 맵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바람이다.
강력하지.
육체의 틈 또는 마음의 금
그날부터 한길 복판에서 간절한 이름 크게 한번 외쳐 보지도 못한 몸에서도 쿵쿵 바람이 쏟아져나왔다 나와 나 아닌 것 삶과 삶 아닌 것이 섞이느라 명치끝이 가늘게 번져 있었다
그 사이로 바람이 인다.
나도 당신에게 내 몸에서 가장 뜨거운 심장의 자리에 당신을 내어주었더랬다.
그때부터 내 몸에서는 바람이 일었었다.
언제, 어디, 무엇, 어떻게 하더라도 내 몸에서는 차가운 바람이 일었다. 추웠다.
그 자리를 내어주고부터 난 나도 아닌, 당신도 아닌 바람이는 어느 틈에서 살고 있다.
혹 이리 바람이 불다보면
풍화되어 날리는 작은 내 몸 어느 것들이 틈새를 메우기도 할라나... (아직도 그런 미련을 갖고 있는)
해독된다.
나의 왼쪽 가슴에서 뛰고 있는 심장이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것도...
언젠가부터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는 것도...
그도 나도 살지 않는 빈 심장이라는 것도...
그래서 살아있는 것들이 알아야 할 것들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먼 곳에 가까워지고 있다.
오늘 시인의 '틈'을 읽으며
내 몸에서 바람이 일면서 소리를 낸다.
들어보니 빈 심장에서 아직 남아있는 당신의 소리가 아직... 조금 남아있음을 알게 되었다.
심장이 조금이나마 뛰고 있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옥따비오 빠스] 새벽 Madrugada (0) | 2008.03.04 |
---|---|
[김종삼] 또 한번 날자꾸나 (0) | 2008.02.29 |
만남- 네루다, 꼬르따사르, 체게바라, 나 (0) | 2008.01.29 |
[이성복] 라라를 위하여 (0) | 2007.10.29 |
[박제천] 술놀이 (0) | 2007.10.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