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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대로 小說

[황석영] 바리데기

by 발비(發飛) 2007. 12. 10.

책 이미지

 

황석영 지음|창비
2007.7.31|ISBN 893643358X|301쪽|A5

 

프랑스 영화 '추방된 사람들'(2004)

-전쟁 때문에 알제리에서 프랑스로 도망을 간 부모를 둔, 지금은 파리지엔으로 사는 두 남녀가 알제리로 돌아가는 길 위의 이야기.

영국 영화 '인 디스 월드'(2002)

-파키스탄의 아프칸 난민촌에서 영국까지 6400킬로미터의 길, 꿈을 찾아가는 아이의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내 머릿속의 영상은 이 두 영화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영상 위에서 2시간 남짓한 두 영화보다 하루를 통째로 읽은 이 소설이 좀 더 빠른 호흡이었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두 영화를 떠올리기는 하였지만, 한 편의 뮤지컬을 본 것 같은 느낌이다.

 

바리데기는... 아니 내가 알았던 이름은 '버리데기' 였다.  옛날이야기 속에서 만났던 주인공.

부모로 부터 버려져서 숲속에서 자란 바리데기가 아버지가 병이 든 것을 알고 생명수를 찾아

산넘고 물건너, 별짓 별짓 다 하며 생명수를 찾아 아버지를 살린다는 내용으로... 그저 구박댕이가 결국은 효도를 한다는 정도로 ...내게는...

황석영의 '바리데기'때문에 저절로 알게된 정보들은 그것이 그것이 아니라했다.

우리 민족의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는...

 

황석영의 '바리데기' 의 줄거리는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이 이야기는 줄거리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또 왜냐면, 어떤 것은 풀어서 말해서는 그 느낌이 나지 않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건 판소리나 뮤지컬의 대본을 풀어서 이야기를 하면 대개 유치하기 그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 이야기는 내게 소설이라기보다 뮤지컬이었으니까...

 

단숨에 다 읽었다.

끊어읽을 수 있을만큼 문장의 길이가 아주 짧았음에도 불구하고 숨이 찼다.

마침표에서 끊어읽는 것이 아니라 마침표가 있음에도 앞 문장과 뒷 문장이 고리처럼 연결되어 마침표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4/4박자에 스타카토가 연이어진 음표가 마구 표시된 듯 하다.

 

그래서 난 이 소설을 또 다른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소설(환타지나 청소년 로맨틱소설을 빼고...나의 세대는 그걸 모르니까)은 문학이다.

문학은 행간에서 그 뜻을 찾고, 행간에서 줄거리를 이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아까 말했다시피 행간을 읽은 사이가 없다. 틈을 주지 않는다.

바리데기는 다른 것이다. 새로운 것이라고 해야하나?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새로운 것이지?

그건, 새로운 읽기의 방법이다.

우리가 책을 읽는 방법, 문자가 생긴 이래 우리가 독서라는 것을 시작하고 부터 책을 읽던 그 방법이 아니다.

이것은 21세기가 만들어낸 새로운 방법이다.

아마 40대 이전의 세대들은 읽는 세대라기보다는 보는 세대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텔레비젼이 보급되고 나서 책을 읽은 시간보다는 텔레비젼을 본 시간이 훨씬 많을 것이고,

책을 읽은 권수 보다는 영화를 본 편수가 더 많을 것이고,

책을 통해서 즐기는 오락보다는 컴퓨터게임을 통해서 즐기는 오락의 시간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러니 보는 것이 읽는 것보다는 훨씬 익숙하다.

황석영의 '바리데기'는 활자로 쓰여졌으나,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뮤지컬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바리가 배안에서 온갖 난잡한 일을 겪으며 생과 사를 오고 갈 때,

바리가 남의 영혼 안으로 들어가 영혼의 일을 볼 때,

알리를 찾아 헤맬 때,

마지막 장면인 런던 거리 한복판에서 알리와 함께 버스테러를 볼 때,

 

그 모두가 심리적인 것을 표현하기 보다 그 배경와 짧게 주고 받는 대화로 이어진다.

 

독서를 하면서 행간을 통하지 않고 글의 감동은 어디에서 얻는 거지?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행간의 감동이라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서 바리의 뒤를 따라 뛰어가게 된다.

격언을 닮은 감동적인 문장도 만난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이 책을 덮으면서 숨이 막히게 바리와 함께 달렸다는 생각과 끝이 나지 않고 다시 시작하는 바리의 새로운 고통때문에

다시 숨이 막혔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책을 덮는데 숨이 답답했다.

지금 이 세계가 답답한 것이다.

힘이 떨어졌는데 다시 또 누군가를 향해 방패를 높이 들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답답했다.

바리와 내가 같이 있다.

영화에서 내가 주인공으로 이입되는 시간이 순식간이듯 이 책을 잡으면서 아주 마치 영화처럼 빠르게 바리가 되었다.

 

황석영이라는 작가... 나이가 예순이 넘어다지.

무엇이 대단한 것이 아니라, 시대를 읽는다는 것이 대단했다.

몇 단계를 거쳐서 의미를 찾아가는 시대가 아니라

무엇이든 3D영상처럼 사방을 빠르게 훤히 보여주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즉흥적으로 몸과 마음이 움직이는 그런 새로운 유형의 인간이 가득한 세상이라는 것을 읽었다는 것이 놀랍다.

 

읽은 지 꽤 되었으나 귀에 꽂힌 유행가가 입가를 맴돌듯이 내게 맴돌며 흥얼거리게 되어 내처 두드려보았다.

 

이런 독서도 가능하게 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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