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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대로 小說

[한강] 채식주의자

by 발비(發飛) 2007. 12. 11.

 

동생이 학교 앞에서 노란 병아리를 사가지고 와 계단을 오르는 연습을 시킨다며 동그란 병아리를 안고 옥상으로 아래로 오르락내리락 했다. 

얼마 뒤, 동생은 싫증이 난 듯 빈 개집에다 노란 병아리를 넣고는 병아리가 밖으로 나올 수 없도록 벽돌 두개를 나란히 세워두고 밖으로 나갔다.

난 병아리가 궁금했다. 무얼 하고 있나 보려고 개집 안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벽돌이 넘어지고, 병아리는 내 눈앞에서 벽돌에 깔려 죽었다.

그 시간은 아주 한참인 것 같았고... 난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정신을 잃었다.

 

그 후 나는 삶의 큰 장애가 생겼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동물이 새가 되었고, 눈 앞에 새가 있거나, 새 이야기만 해도 경기를 하는 다른 사람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가 되었다. 닭소리만 들어도 한걸음을 걷지 못하고, 저 멀리서 새가 보이기만 해도 온몸이 빳빳해지고, 화장실 옆에 있던 닭장 때문에 외가에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어느 날 가족들의 보신용으로 엄마가 준비해둔 오골계, 온 식구가 합동작전으로 오골계를 숨겼음에도, 베란다 아래에서 나는 새벽 닭 울음소리를 듣고는 한 걸음도 걷지 못했다. 내 방에서 목욕탕까지, 산등성이에 있던 집에서 스쿨버스를 타는 큰 길까지 가기 위해 고2였던 오빠는 고1였던 나를 업고는 웃긴다며 새! 닭! 하며 놀렸다. 그때마다 나는 경기를 했고, 오빠는 휘청거리면서도 놀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마로니에 공원 아니 서울의 모든 공원은 비둘기때문에 맘 편히 걸어보지 못했으며, 그 무엇보다 일주일에 며칠은 새가 나타나는 무서운 악몽을 꾸었다. 가끔 잠을 자지 않는데도 눈만 감으면 닭이 보여서 눈을 감을 수 없어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내 장애였다. 


어른이 되고도 한참 뒤, 전국민이 치맥을 먹을 때도 먹지 못하다가, 어른다운 어른이 되기 위해, 나이값을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후라이드치킨을 처음 먹었던 날, 그 식감을 기억한다. 입안을 빙빙 도는 그 뻑뻑한 이물감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이제는 형체가 있는 날개, 다리, 목은 아직 먹지 못하지만 가끔 후라이드 치킨을 먹는다. 닭이라고 말해도 견딜만하다. 두어개쯤 먹으면 닭의 모습이 떠오르면 그만 먹을 뿐이다. 그때마다 어른이 되었구나 싶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 무리없이 있는 것 같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이 세 편의 연작 소설 중 채식주의자는 언젠가 어디에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문예지에서 읽은 것 같다.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의도적으로 그 이야기와 멀어지고 싶었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지난 작년 파키스탄 여행 중 어느 여행자가 게스트하우스에 흘려놓은 이상문학상 수상집 안에 수록된 몽고반점을 읽었다. 낯선 이방에서 읽는 한글소설이라 그런지 몇배나 쇼킹했다. 이 두 편이 연작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

 

채식주의자의 화자는 영혜라는 여자의 남편으로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하고 상대적으로 나아보일 수 있는 곳에 자신을 둠으로서 자존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평범한 그래서 이기적인 사람의 전형이다. 지극히 평범하게 자신을 보필하던 아내가 갑자기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그 이유를 생각하기보다 그저 불편할 뿐이었다. 그저 방관자... 장인에게 떠넘긴다. 처형의 집들이에 가서 채식주의자가 된 아내에게 장인은 강압적으로 고기를 먹이려 했고, 아내는 손목을 긋는다. 그리고 아내, 아니 영혜는 해체되었다. 아내는 꿈이야기가 화자인 남편과 상관없이 유일한 목소리를 글의 전편에 산재해 있다. 어린 시절 오토바이에 매달려 산 채로 죽게 된 개로 육회를 먹은 기억, 그것은 폭력이었다.

 

몽고반점의 화자는 남편이다. 이야기의 중심인 처제, 그리고 아내, 아내의 남편이 화자이다. 화자인 나는 비디오아티스트. 그럭저럭... 여러가지로 아내의 자리에 완벽한 아내 덕분에 예술을 하지만, 예술가가 가지는 광적인 요소를 스스로 체내에서 해독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 때 아내가 우연히 말한 처제의 몽고반점, 성인의 몽고반점의 의미. 여자의 엉덩이에서 피는 푸른 꽃... 그는 집착하기 시작했다. 정신질환 진단이 내려진 처제의 몽고반점에 보디페인팅을 한다. 화려하게 피어나기 시작하는 푸른 꽃, 자신의 몸에 꽃을 이어 피게하고, 두 남녀가 어울리며 꽃은 발아할 듯 꿈틀거리는 생명이 된다. 이것을 본 아내, 온 몸에 푸른 꽃을 핀 처제는 햇빛 아래에서 온 몸을 편다. 광합성.

 

나무불꽃의 화자는 거식증에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영혜의 언니. 동생은 고기를 먹기를 거부하는 것으로 시작해 고기를 먹지 않기 위해 자해를 하고, 이혼을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던 중, 자신의 남편과 푸른 꽃 영상을 만들고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했다. 고기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을 거부한다. 나무가 되려는 동생, 나무와 닮아 있는 동생을 만나게 된다. 모든 것을 덮어두고 내부에서만 움직인다. 동생은 내어놓는다.  

 

한 권의 책으로 묶인 이 세 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세 이야기를 연작으로 생각하지 않고 읽었었기에 어제는 이 이야기들을 연작이라고 생각하고 빠르게 다시 읽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고, 그 사람은 거기서 그렇게 했고, 그 사람은 저기서 저렇게 했던 사람이었구나. 모두들 바닥을 박박 긁고 있다. 사느라고 손가락 끝에서 피가 나도록 바닥을 긁고 있는 듯했다. 작가는 왜 자신의 주인공을 이렇게 까지 했어야 했을까.


어쩌면 내가 닭이나 새를 치명적으로 무서워했던 것과 같은 무엇인가가 있었던 것일까? 

누구에게나 치명적인 것이 있다. 그 치명적인 것의 바닥이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누군가에게 했던 폭력! 내가 당했던 폭력! 

인간은 태생적으로 치명적인 것을 가지고 태어나는구나 생각했다. 누군가가 그 치명적인 것을 건드리면 사정없이 균형이 깨어지고 무너지고 만다. 어떤 사람은 폭력을 휘두르며 동물적인 모습으로 변하고, 어떤 사람은 폭력을 견디기 위해 식물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또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아 평생 그 모든 것들이 봉인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인간은 어쩌면 그 균형이 유지되는 순간 발현되는 하나의 형상인지도 모른다. 

채식주의자의 영혜, 몽고반점의 남자, 불꽃나무의 인혜, 인류라는 종족 속에서 사는 인간


태내에서 인간이 되고자했던 상징이었을 몽고반점, 몽고반점은 세상과는 반대방향에서 피는 꽃이라 잊고 살았지만, 또 몽고반점을 생겼던 그곳이 세상과 반대방향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몽고반점이 꽃으로 다시 피면 인간이 되고자 한 처음의 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내 몸에도 꽃이 피기를 하는 생각을 했다. 꽃은 나무에서 피고, 나무는 땅에서 자라며, 땅은 바닥이다. 

 

바닥까지 생각이 미친다. 태어나서 사는 동안 내내 하늘을 향해서 머리를 두고 위만 보고 살아가다가 물구나무서기를 해서 아래로... 바닥으로 내려가 피가 나도록 땅을 파서 내 몸을 기둥삼고, 내 머리를 뿌리삼고, 내 머리카락을 잔뿌리 삼아 심으면 그 안에서 내 생명이, 듣도 보도 못한 내가 그곳에 있을런지도 모른다. 반가울 것 같다. 세상에서 대체로 약점이 되고, 가끔 급소가 되는 '나'이지만, 온전한 '나'는 그 안에 있을 수도 있겠다.


며칠 전 새벽, 배가 고파 먹을 것이 있나하고 냉장고를 열었다. 긴 여행을 준비하느라 냉장고를 비우고 있는 중이라 아무 것도 없고, 엄마가 언젠가 가져다 놓은 육포가 냉동실에 있었다. 그거라도.. 하면서 꺼내 찢는데... 그 결이 단단하게 붙어있어서 뜯어지지 않았다. 손 힘으로 우격다짐을 하다가 이로 뜯어야지 하고 육포를 무는 순간, 느껴지는 비릿함, 그것은 피의 냄새에 가까웠다. 딱 남의 살이다. 또 하나의 장애가 올 것 같다는 예감 때문에 먹어야한다. 먹어야 어른인거다 하며 꾹꾹 참고 육포를 씹었다. 하지만, 그날 한 점 먹은 육포때문에 체하여 며칠을 끙끙 앓았다. 앞으로 안 될 것 같다.

 

작가가 얼마나 피가 나도록 팠는지, 책을 덮을 즈음에는 며칠 전 먹은 육포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다시 나는 듯 했다.

잠시 머리를 땅에 심어두고 물구나무를 서고 있었던 듯, 말쑥해진 기분이었다.

그러면서 오지랖 넓게... 이런 작가는 어떻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 괜한 걱정되었다.

하지만, 한동안 이 책이 보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한 20년 후에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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