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
산을 보면 나는 산
안개와 연무를 보면 구름
이슬비가 내린 뒤 풀
종달새가 노래하기 시작하자마자 나는 아침
나는 사람만이 아니다
별이 반짝일 때 어둠
여인들의 옷이 가벼워지자 봄
세상 사람들 모두 한 가지 소원으로 향기를 발한다
진정 평화로운 마음으로 나는 물고기
같은 사무실이면서 다른 방을 쓰고 다른 이름의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직원이 왔다.
"선물요."
하면서 내민 A4용지.
어떤 형식도 갖추지 않은 바탕체 10pt의 소박한 활자체로 들어앉은 말들.
"지금 진행 중인 몽고작품의 서문에 들어갈 시인데요. 너무 좋아요."
"이런 선물 너무 좋네요."
그 후배직원이 내 등 뒤에서 내가 들고 있는 종이 위의 시를 읽는다.
낮고 굵은 목소리로 읽는 '나'에 대한 시.
읽다말고 민망했는지 세줄을 남겨두고 자리를 떴다.
후배직원이 읽던 뒤를 따라 읽는다.
몽골의 어느 초원에 있는 듯 시원한 바람이 내 안에 인다.
내 좁던 가슴과 마음이 마치 큰 운동장이라도 되는 듯 뻥 뚫린 느낌.
그리고 커다란 운동장에 바람이 휘돌아 부는 느낌.
잠시 행복하다.
5분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난 오늘 하루와 절대 바꾸지 않을 '나는' 이라는 시와의 데이트...
언젠가 프린터 옆에 주인도 없이 놓여있던 시를 발견하던 날처럼 오늘도 난 기쁘다.
사는 것이 전쟁과 같이 느껴지던 이 공간 안에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것이 좋다.
알고보면 우린 모두 함께 호흡할만한 사람일 것이다.
나는
내게 너라고 불리운 너의 나는
산을 보면 나는 산
안개와 연무를 보면 구름
이슬비가 내린 뒤 풀
종달새가 노래하기 시작하자 나는 아침
나는 사람만이 아니다
별이 반짝일때 어둠
여인들의 옷이 가벼워지자마자 봄
세상 사람들 모두 한 가지 소원으로 향기를 발한다
진정 평화로운 마음으로 나는 물고기
이니까......
우리는 모두 그러니까..... 잠시 잊었었다.
작가의 이름을 묻지 못했다. 이 책이 출간되면 작가의 이름도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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