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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브라이언 마리너] 독살의 기록

by 발비(發飛) 2007. 8. 13.

 

 

독이라는 것에 대해 우리가 경험한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어린 시절 물렸던 독거미, 옻나무와 같은 식물에서 나오는 독, 독버섯..... 그것들은 어린 시절 우리들의 자유를 방해하던 보이지 않는 자연의 힘이었다.

독 때문에 산에 갈 일이 있으면 긴 옷을 입어야 했고, 숲이 우거진 곳은 피해야 했었다.

독이라는 것은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이길 수 없는 존재였다.

 

독살의 기록은 독살에 관한 실화사건을 추적하고 독살에 사용된 독극물에 대한 해설을 덧붙인 책이다.

이 책에서는 주로 1850년대 초반부터 1950년대 중반까지의 독살사건들을 다루고 있는데,

아마 이 시대에는 자연상태로 혹은 주변의 약물 속에 함유되어 있던 독들이 추출 가능한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살해할 수도 있다는 가정, 그리고 실험(?)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던 때일 것이다.

 

아내의 사치와 정신적 폭력을 이기지 못한 남편의 복수, 독극물이 정말 사람을 죽게 할 수 있는 지 실험대상으로 취급한 사건, 임종을 맞은 사람의 말기를 편하게 해 주는 안락사의 방법 등 독극물을 이용한 살해사건의 목적 각기 달랐다.

그러나 살인자는 독극물을 투여하고 피해자가 서서히 죽어가는데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살해’ 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천천히 무감각해진다. 죄의식조차 없어져 자신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비소, 스트리키닌, 시안화물, 탈륨, 니코틴 등과 같은 독극물에 의해 서서히 중독 되어가는 몸, 몸의 반응들을 옆에서 지켜보는 살인자. 인간이 인간을 죽이겠다고 생각하는 것. 대부부의 경우 증오나 미움이 바닥에 깔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다루는 독살이 일반적인 살해와 다른 것은 독극물에 의한 살해만이 가지는 ‘시간성’이다.

피해자는 대부분 범죄자와 가까운 사이이다.

한 공간에 머물면서 매일 독극물을 투여한다. 그리고 독극물에 의한 중독, 피해자는 아주 서서히 살해한다.

이 사건들이 섬뜩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서서히 살해되는 피해자의 옆에서 죽어가는 인간은 쳐다보는 또 다른 인간, ‘서서히’ 죽이고 죽는다는 것.

피해자들은 자신이 살해당하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알지 못한 채 죽어간다.

살해자는 서서히 죽어가는 피해자의 옆에서 죽음의 과정을 지켜본다.

이미 그 또한 인간으로서 가지지 말아야할 어떤 것에 중독이 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소개된 한 독살사건의 범죄자는 진술했다.

자신이 철들 무렵부터 또 한 명의 남자가 자신의 마음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이것은 인간이 자신도 모르게 품고 있엇을 악의성의 실체가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인간은 아리조나 사막에 서 있는 선인장과 같아서 처음부터 온 몸에 가시를 두르고 자신의 곁으로 날아드는 것들을 제 독으로 찌르지는 않았다.

사막의 건조하고 모진 바람이 아리조나 선인장에게 독을 강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독살 사건들에서 갖는 ‘서서히’ 라는 것의 의미는 아리조나에 서있는 선인장처럼 서서히 죽고 죽이는 것이라서 느껴지는 삶의 모습이다.

 

이 책은 단순히 흥미를 위해서 독극물에 의한 살해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다.

독극물 살해사건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인간의 심리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죽음을 만들고 바라보는 인간의 심리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지,

그런 악의적인 인간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고찰을 해보자는데 의미를 둔다.

단순한 독극물에 대한 흥미만 남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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