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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이윤택] 살아있다, 난

by 발비(發飛) 2007. 6. 8.

 

 

 

 

 

살아있다, 난

 

이윤택

 

 

살아 있다, 난 아침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살아 있다, 공복의 담배를 깊숙이 들이마시면서

살아 있다, 난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이란 시간이 할애해 줄 좋은 일을 생각한다

그래, 살아 있다,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

산책을 나간다, 긴 장마 사이 얼핏 비치는 한 평 반 푸르름을 위안 삼고

아파트 옆 개천 위로 둥둥 떠 밀려가는 저 찌꺼기들까지 아름답게 느끼려 한다

창을 열고 젖은 이불을 널어 말리는 사람들

모두 용케 살아 있다, 유리창을 닦고 전구를 갈아끼우면서

이런 식으로 살아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매일 조금씩 불투명해지는 창일 지라도 매일 화분에 물을 주는 사람들

살아 있다는 것이 즐거운 건지 쓸쓸한 건지

한때의 반짝임인지

어느 순간 맥없이 부서지는 오르간인지

잘 모른다, 알고 보면 가혹한 시간

그러나 가혹함을 견디면서

살아 있다, 난

 

'나'라는 것을 인식할 때는 '나'라는 것이 고통에 가까이 있을 때이다.

 

아침, 푸파박!!!!! 하고 깨졌다. 아프고 어지러웠다.

그때 생각했지.

내가 왜 사는것인지?

아 내가 살고 있었구나.

아침, 푸파박하고 깨졌을 때라야 난 내가 살아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 생각해보자.

기쁨의 극치, 행복한 어떤 순간에 난 없어지는 몰아의 상태가 된다.

내가 내 안에서 빠져나간 듯 몸이 가벼워지며 둥둥 떠있는 듯 생각이고 뭐고 모든 것이 정지이다.

몰아, 내가 없을 때 내가 진정 행복한 순간이 된다.

 

우린 살아있다.

그러므로 우린 고통속에 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실존을 느끼려면 우린 끝없이 고통속에 머물러있어야 한다.

좀 작은 고통, 좀 짧은 고통을 원하는 것일 뿐이다.

 

오늘 아침, 난 내가 살아있음을

내 가슴이 뛰고 있음을

내가 길게 숨을 쉬었음을 하나 하나 다 느낄 수 있었다.

 

아파서 뭐 없을까 하고 두리번 거리다 책상에 꽂혀있던 시집.

그 안에 한 자리 차고 앉아 나를 기다리던 '살아있다'는 한 마디.

 

살아있는 순간은 시인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자극받을 때이다.

자극, 뾰족한 것으로 찔린 듯 집중되는 것.

그리고 '가혹함을 느끼며 살아있다' 했다.

가혹함, 타인에게서 아픔 이상의 것을 당하는 것.

 

사는 것은 누구나 다르지 않다.

 

고통 속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순간 순간 내가 없어지는 몰아의 시간을 짧게 즐기는 것,

짧은 몰아의 시간을 최대로 증폭시키려면 살아있어야 한다.

 

살아있다, 난

더는 바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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