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집 속에 거울조각이 있다
손택수
집을 버리면서, 거울을
두고 오는 건 차마 못할 짓이다
버려진 제 모습을 쳐다볼 수 없어
먼지를 풀썩이며 조용히 미쳐가는
집의 거울을 보라
집은 제 얼굴에 화장을 하는 대신
거울에 화장을 한다
거울에 파우더 분가루 같은
먼지를 덕지덕지 처발라
망가져가는 제 얼굴을 흐릿하게 뭉개어본다
그렇게 남은 날을 견뎌야 한다는 건,
아무래도 지나친 형벌이다
폐가는 금이 가거나, 깨어진
거울조각을 품고 있다
여자치고 거울을 참 안 본다.
거울 속의 내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 내가 못 생겨서라기보다는 기억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나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거울도 나를 기억하지 못하도록
이 세상 모든 것들에게 내가 기억되지 않도록
거울이라는 것은 나를 비추는 것이다.
내가 보던 거울을 보는 사람은 자신의 얼굴이 낯설 것이다.
자신의 모습 뒤로 내가 보일테니.
그래서 산산히 조각낼 것이다. 가루가 될 때까지....
거울 속에 저장된 나까지 산산히 조각날 때까지....
그가 새로운 거울을 장만해 그 앞에 섰을 때 나의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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