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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보통사람들의 진수성찬』

by 발비(發飛) 2007. 6. 5.

 

 

보통사람들의 진수성찬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초대하고 싶다’

 

시인이자 주부인 이섬은 항상 끓고 있다

끓는 일은 가슴 속에서는 시가 되고, 주방에서는 따스한 음식이 된다

  

 

 

 

 

 

오늘 나는 두 권의 시집을 먹어치웠다.

찬물에 말아서 꼭꼭 씹어 먹었다.

어떤 맛이냐고?

글쎄 딱 집어서 말하긴 어렵지만

보일 듯 말 듯한 이미지를 찾는 쫀득쫀득한

인절미 맛이라든가 포스트모던과 서정이

맞물려서 씹히는 살캉살캉한 해파리냉채 맛

군더더기 형용사들 다 쳐내어 깔끔하고 간결한

오이냉국 맛 고통과 아픔이 삭아져서 뽀얗게

떠오르는 담백한 곰국 맛

다 먹고 나니 소나기 한 줄금 쏟아졌다

 

-「피서」전문/ 이섬-

 

 

이 책은...

 

이섬 시인은 국민문학상 수상 시집 『향기나는 소리』에서 뛰어난 문학성과 함께 생활을 시의 주제로 삼았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그의 시는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먹거리를 통해 삶의 갈피갈피 묻어 있는 즐거움과 고통까지도 한 몸으로 껴안아냄으로써 또 하나의 문학적 성취를 맛보게 해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제 그는 시로써 다하지 못한 것들을 이 한권의 에세이로 풀어내었다.

이 책은 제1부 향토음식, 제2부 전통음식, 제3부 초대음식, 제4부 절기음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편의 에세이는 하나의 음식에 대한 조리법 설명과 그에 관련된 시인의 삶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책임편집자의 말...

 

『보통사람들의 진수성찬』을 읽고 난 뒤, 음식을 먹을 때의 생각이 달라졌다.

말하자면 김치를 먹을 때 김치를 먹는 것뿐만 아니라 배추를 잘라먹고, 무를 배어먹고, 빨간 고추가 달린 가을햇살을 먹게 되었다.

또한 시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 해 밥상을 마주했던 그도 생각나도 그녀도 생각나고...

때로는 밥상을 올려다보던 멍멍이까지도.

하루 세 번의 밥상에 매번 새로운 반찬이 올려지는 듯, 그야말로 진수성찬을 마주한다.

‘먹거리’라는 창을 통해서 만나는 삶

밀가루를 치대어 수제비를 만들며 치대면 치댈수록 쫄깃한 수제비처럼, 우리의 삶도

참고 뭉그러지며 속을 비워내는 늙은 호박처럼, 우리의 삶도

콩을 삶아 청국장을 띄우며 콩들 사이에서 실같이 얽힌 곰팡이들처럼, 엮인 우리의 삶도

음식이나 사람이나 즐거움과 고통을 한 몸으로 껴안아내는 시인의 글과 시인의 음식 만들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인은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곁들여 소박한 밥상을 차리는 요리법도 함께 공개하였다.

 

 

이섬 시인이 전하는 말...

 

내가 가꾸는 텃밭에서는 알뿌리 실한 고구마나 감자, 갖가지의 푸성귀만 수확하는 것이 아니다.

무심코 놓쳐버릴 수 있는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들추어 보는 기쁨이 있는가 하면 평범하고 소박한 흙 속에서 달큼하고 소화흡수력이 강한 고농축 詩를 수확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의 밭농사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며 우리 집 식탁은 싱그럽고 풍성할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소박하고 평범한 것일지라도 내 아이들에게 일러주듯 조곤조곤 써보았다.

이 책을 통해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하여 차려낼 평범한 일상의 식탁이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까운 이웃들과 음식을 나누는 정겨운 자리에 도움이 된다면 더 없는 기쁨이 될 것이다.

 

 

본문 중에서...

 

바람결이 스산하고 차가워진 가을날, 속이 텅 빈 것같이 허전함으로 마음이 심란할 때 속이 꽉찬 가을게를 사다가 매운탕을 끓인다. 날씨가 추워지면 가을게는 살이 더욱 단단해지고 미처 방풍막이를 못한 듯 마음속에 찬바람이 불고 사랑니가 아리듯 외로움의 창틀이 흔들리고 관절마디마디 샛바람이 스며들고 흐린 하늘은 눈발을 준비하고 한바탕 휩쓸고 지나가는 흙바람 모래바람, 이 모든 것을 달래줄 음식, 날씨가 스산한 가을날에는 꽃게매운탕이 저녁메뉴로 제격일 것이다.

 

 

이 음식들은 내놓는 순서가 있는데 먼저 닭백숙을 내놓아 어느 정도 먹은 후 쟁반국수를 내 놓는다. 국수를 거의 다 먹으면 닭 야채죽을 공기에 조금씩만 담아서 내놓으면 된다. 따뜻한 닭백숙을 먹은 후 차가운 쟁반국수를 먹고 다시 따뜻한 죽을 먹음으로써 조화를 이룬다.

중요한 건 막국수는 꼭 즉석에서 삶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쫄깃쫄깃한 맛이 난다. 세 가지의 음식을 먹기 때문에 양을 조금씩 하는 것도 지혜다. 다른 반찬이 필요 없고 김치와 물김치만 있으면 그만이다.

올여름, 맛있고 푸짐하게, 나의 솜씨를 한껏 자랑하게 한 쟁반국수와 닭야채죽, 어떤가! 먹음직스럽지 않은가!

 

 

나는 족발음식을 만들 때마다 사람 손이 참 보배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어쩌다가 마장동 우시장에 갔을 때, 빨강 불빛아래 쌓여 있는 소, 돼지의 머리, 발, 내장들……. 너무도 혐오스러운 것들이 보기 좋고 맛있는 음식으로 만들어진다는 게 신통하기만 하다.

예쁘게 썰어 놓은 돼지 족발요리는 보기에도 좋을 뿐더러 쫄깃쫄깃한 맛도 일품이어서 만들기는 고역스럽지만 가끔 만들어 볼 만하다. 백화점에서 사 먹어 보기도 하지만 집에서 만드는 것보다 맛이 떨어지고 위생 상태도 좋지 않은 것 같다.

내 친구가 예쁘게 변신하는 것 못지않게 족발 요리도 상상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변신을 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변신은 항상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시를 쓰는 입장에서도 변신이란 항상 끌어안고 있는 숙제와 같다.

 

 

손칼국수는 지독히 인간적이라고 했다. 아니 사람살이가 칼국수 같다고 했다. 치댈수록 쫄깃하고 깊이가 더 해가는 삶, 때로는 뒤집어 업기도 하다가 겨우겨우 판판하게 밀어놓으면 싹둑싹둑 잘려져 나가는 희망들, 생각의 고명도 집어넣고 눈물 나는 고뇌도 들어가서 푹 삶아 술술 넘어가는 삶이 있다고 했다. 잘 무른 삼색 수제비 같은 삶이 있다고 했다.

 

 

지은이 이 섬

 

시인이자 수필가인 이섬은 95년 국민일보 2천만원 현상 시부문에 당선하였다.

그의 시는 우리 보통사람들의 먹거리를 통해 삶의 갈피갈피 묻어있는 즐거움과 고통까지도 한 몸으로 껴안아냄으로써 또 하나의 문학적 성취를 맛보게 해주었다.

시집에는『누군가 나를 연다』『향기나는 소리』『초록빛 입맞춤』『사랑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에세이집 『외갓집 편지』등이 있다.

 

 

담당 ***| binaida01@hanmail.net

대국전변형판| 224쪽|13,500원| ISBN 978-89-5624-2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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