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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序詩)

by 발비(發飛) 2007. 4. 7.

 

 

꽃을 위한 서시(序詩)

김춘수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너는 이름도 없이 피었다 진다.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탑(塔)을 흔들다가
돌에까지 스미면 금(金)이 될 것이다.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新婦)여,

 

 

반성.....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 했다.

이웃을 사랑하라.

자비를 베풀어라.

사랑으로 감싸라.

그렇게 하라고... 그리 사는 것이 참 아름다운 삶이라고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도대체 내가 몇 살이었는지도 알 수 없는 날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큐피트의 화살은 독화살이라 내게 큐피트가 절대 아는 척을 하지 말았으면 했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누군가를 암흙의 세계로 빠트리게 만드는,

사랑은 그렇게 위험한 짓거리인 것이다.

 

때로 어떤 사람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고.....

다른 종류의 것도 있다고 다독거린다.

그런 날이면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無名)의 어둠에/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나는 한밤내 운다.

나의 옆에는 이미 독이 퍼진 화살에 맞은 검은 얼굴의 한 남자가 쓰러져있다.

쓰러진 남자를 각진 방에다 두고 거리로 나온다.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미지(未知)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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