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를 다녀왔습니다.
신선이 노닐던 곳이라 선유도라 합니다.
서울에서 군산까지.
군산에서 선유도까지.
선유도에서 장자도, 무녀도까지
버스타고 배타고 자전거타고... 다녔습니다.
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고 남쪽이라더만, 어찌 그리도 추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아마 그 추위는 온도도 문제이겠지만, 바람이 불어 더 추웠을 것입니다.
배는 흔들리고, 몸은 흔들리는 배를 따라 흔들렸습니다.
간신히 도착한 선유도에는 비가 내렸습니다.
사실 비가 내리는 지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왜냐면, 바람이 너무 불어 빗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요.
민박집에 도착하고, 옷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야 그것이 바람이 아니라 비였음을 알았지요.
비가 눈이 되고,
함박눈이 그치자, 바람은 더 세게 그렇지만 간간히 해가 보이기도 했습니다.
선유도에 가보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섬에서 자전거를 타보고 싶었습니다.
바람이 무지 부는데 자전거를 타고서 장자도 쪽으로 향했습니다.
선유도를 중심으로 장자도와 무녀도가 다리로 연결되어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다리를 건너는 맛.
장자도로 가는 다리를 건넙니다.
다리를 중심으로 양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바퀴 두개에만 의지해서 나아가는 것.
온 몸의 힘을 허벅지에 몰아주고 페달을 밟는 것,
바람때문에 핸들의 방향이 멋대로 돌아가지만, 절대 핸들을 놓지 않는 것,
중심을 잃지 않는 것.
참 센 바람이었지만, 두 바퀴에 의지해 바다를 건너 다시 섬으로 향했습니다.
이 섬에서 저 섬을 보는 것,
장자도는 참 작은 섬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추워서 그런지 한 명도 볼 수 없었지만,
배들은 모두 갯벌에 묶인 채 묵묵하지만,
흔적 같은 것, 기운 같은 것은 남아있었습니다.
마을로 들어서자 바람이 멎고 페달이 잘 돌았습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사람이 있어 바람도 좀 잦아지는 듯 했습니다.
장자도에서 나와 선유도의 서쪽에 있는 명사십리를 지나 몽돌해수욕장으로 향했습니다.
망주봉자락을 돌아 몽돌해수욕장으로 가는 언덕길에서는 자전거를 끌었습니다.
자전거가 있어서 좀 안 무서웠다고 해야하나.
아무도 없는 길을 돌면서 무섭지 않았던 것, 옆에 자전거가 부드럽게 따라오고 있어서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올라갔던 봉우리에서 바다를 내려다보고, 장자도를 내려다보고, 갯벌에 묶여있는 배들을 내려다보고, 숨 한 번 크게 쉬어주고.
자전거를 타고 이젠 내리막길을 내려왔습니다.
볼이 찢어질 만큼 추웠는데 브레이크도 잡지 않고 신나게 내려왔지요.
해질녘의 명사십리.
섬들이 길게 누워있었습니다.
마고할미의 전설이 생각났습니다.
한반도의 '가이아' 같은 존재인 마고할미가 바다에 무릎세우고 누워있다더니 꼭 사람이 누워있는 듯한 섬이 있었습니다.
언젠가 마고할미가 벌떡 일어나는 날이면 우리나라의 힘이 불끈 생긴다던데... 얌전히 잠을 자는 듯 싶었습니다.
해지는 시간, 해몰이는 보지 못했지만,
지는 해의 붉은 빛에 물든 파도치는 바다, 그 입체감은 분명 생명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다시 어둠 속에서 자전거를 탔습니다.
이번에는 동행이 있었습니다.
제 아무리 간이 크다 할 지라도 어둔 섬에서의 자전거, 주저 주저.
이번에는 자전거보다 더 강력한 동행자인 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가다가 동행이 보이지 않으면 기다리고,
저 앞에 가서 어둠 속으로 동행이 사라져버리면 더 빨리 페달을 밟아 사람들과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다리가 무지 아프지만, 그럴 시간이 없어 페달을 밟고 밟고...
어둠 속의 무녀도는 장자도보다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듯 싶었습니다.
개도 짖고, 학교도 있고, 차도 있고.
사람들이 사는 집들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뱅뱅돌았습니다.
어둠 속의 마을.
어둠 속의 바다.
어둠 속의 배. 그리고 섬들을 잇는 다리.
간간히 서있는 가로등.
섬.
깊은 어둠이 깔려 섬인지 육지인지 잘 느껴지지 않을 듯 하지만,
어둠은 내가 달리고 있는 섬이 더욱 작게 느껴질 만큼 섬다운 섬으로 점점 작아졌습니다.
섬,
섬 안에 내가 작은 섬처럼 끼어있는 듯 싶었습니다.
무녀도, 밤이라 섬의 이름과 더욱 잘 어울린다 생각하며, 다음날 오전에 밝은 무녀도를 봐야지 생각했습니다.
민박집으로 돌아가니, 볼이 얼었습니다.
화끈거리며 열을 내는 볼에 손을 대니, 불덩이처럼 뜨겁습니다.
자가발전이라고 해야하나,
차가운 바람을 맞느라 내 몸은 자가발전을 했었나봅니다.
이제는 바람이 없는 곳이라고 두 손을 볼에 한참 갖다 대고 있었습니다.
자가발전을 멈추게 하는 데 한참이 걸렸다는, 따갑고 뜨거웠다는...
그런데 바람이 잦아들지 않았습니다.
섬에 들어오던 날도, 우리가 탔던 배를 마지막으로 '파랑주의보'때문에 배가 들어오지 못했는데,
모두들 걱정합니다.
다음날 섬을 나가지 못할까봐...
섬 여행을 유배를 꿈꾸는 자의 최적코스라더니,
마음속으로 내일 배가 나가지 말았으면 하고 빌어보기도 했다는.
다음 날 아침,
눈보라입니다.
정말 대단한 눈보라가 칩니다.
배가 뜰 수 없다는 추측이 난무하고,
군산에서 단체로 들어온 우리들을 위해 딱 한 대의 배를 보낸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파도가 무지 친다는데, 이를 어째.
귀미테를 붙이고,
무녀도를 밝은 날 다시 돌 거라는 생각은 어느새 접고.
오후 2시에 떠나기로 한 섬을 오전 10시 30분에 떠났습니다.
그 배 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배가 완전히 기울고, 흔들리고.
지금 생각해도 속이 울렁!
바닥에 죽은 듯이 누워 내공 수련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배에 놓인 커다란 쓰레기통을 껴안고 있었습니다.
냄새가 나는 지도 모르고 쓰레기통을 껴안고 시도 때도 없는 구토.
멀미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신의 축복을 받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신의 축복 좀 받고 싶다.
뒤집히는 배, 뒤집히는 뱃속!
하지만, 쓰레기통이 있어 난 조금은 편했습니다. 든든했습니다.
전쟁같은 1시간 40분.
시간은 여지없이 가고, 끝이 없는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구나. 끝이다!
배에서 내리자, 이것도 기억이고 추억이구나 싶던 종잇장 같은 마음을 보라니,
선유도, 그 곳은 솔직히 말해서 생각보다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 생각해보면,
육지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곳이라서,
사람들이 잘 갈 수 없었던 곳이라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해서 꿈을 꾸고, 상상을 하고, 확장시킨 것이 아닐까, 그래서 선유도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지 못하고,
만지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이상형이라는 이름으로 꿈꾸듯,
섬 또한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을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잠시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를 알려고 하지 말자는
꿈을 꿀 수 있는 몇 사람, 꿈을 꿀 수 있는 몇 곳, 희망을 품을 수 있는 몇 가지의 일들.
성급히 보따리를 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단단한 신념같은 것이 생겼을 즈음에,
어떤 모습으로 내게 오더라도, 넌 나의 꿈이었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신념이 생겼을 때에 다가가자고.
잘 다녀왔다고 생각했습니다.
눈보라쳐대는 신선이 놀던 땅,
특별한 곳으로 만들었습니다.
몇 시간 내내 자전거를 타고 섬을 일주했던 그 곳,
차가 다니지 않는 자전거만의 길을 만끽했던 그 곳은 분명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는 다른 곳이었습니다.
배에서 내 가는 방향을 찾던 나침판
무녀도와 선유도를 잇는 다리. 그 위의 오토바이, 난 자전거로 건넜지.
선유도 명사십리 해수욕장
민박집에서 방파제로 나가는 다리
선유도 앞 바다, 바람이 무지부는데 둥둥 떠 있는 배
갯벌에 묶인 배, 물이 밀려오면 그 자리에서 자유로워지겠지.
선유도에서 장자도로 연결된 다리, 바람이 바람이.
망주봉 건너 마을 앞의 배들.
해질녁의 명사십리 해수욕장, 바다가 붉은 빛이었는데, 내 눈이 보배.
밤에 자전거를 타고 나오는 길
무녀도 앞 바다 모습, 배도 있고 바다도 있고 집도 있고,
선유도를 나오던 길, 갯벌에 묶인 배가 너무 알록달록해서 색을 떼내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들린 금강하구의 철새도래지. 저 점들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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