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동안 대마도를 다녀왔다.
연휴전이지만, 근무시간을 꽉 채운 오후 6시, 집으로 거의 뜀박질...그리고 달랑 쌕 하나 들고 날았다.
겨우 잡아 탄 버스, 그리고 부산.
대마도 이즈하라항구행 썬플라워호는 생각보다 작았다.
딱 울릉도 여객선과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이었다. 3시간 30분, 그 시간 역시나 속이 울렁거린다.
귀미테의 효험이 있었는지 다른 사람에 비하면 양호하다. 견딜만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부산부터 내린 비는 이즈하라항에도 계속 내리고 있었다.
날을 제대로 잡았다.
섬에 내리는 비는 느낌이 좀 다르다.
습한 섬에 내리는 비는 마치 당연한 일인 듯 여기게 된다. 그게 당연한 것은 아닌데.. 그런데 나의 맘 속에서는 인정하자, 습기가 많으니 비가 내리는 거 아니겠어 하고 인정하게 된다.
주룩 주룩 내리는 비 때문에 산행을 포기했다.
다른 일행들은 비가 오는데도 산행을 했지만, 난 대마도 시내를 돌기로 했다.
일단 24시간을 굶은 나는 우동집을 찾아갔다.
우동집 주인에게 어떤 우동이 맛있냐고 물어보았다. 주인은 내가 뭐라는지 몰라 당황하고 나도 당황하고...
상가안에는 워낙 많은 한국 관광객이 와서겠지만 한국말통역사가 아예 상주하고 있는 모양인지 나의 말을 통역해주었고, 대마도에서만 먹는다는 고구마국수에 미역국물을 말은 듯한 우동을 추천해 주었다.
시원하니 개운하니... 다른 것이 먹고 싶었다
커다란 슈퍼로 갔다.
뭘 먹고들 사는지...
이 나라사람들은 요리의 재료라기보다 반조리상태의 음식의 천국인 듯 싶었다.
밥에 섞으면 주먹밥이 되는 보크라이스필...
우동 위에 얹으면 온갖 종류의 우동이 되는 건더기 스프필...
물을 부으면 야채국이 될 듯 싶은 3분스프필...
물을 부어 끓이면 두부미소가 되는 ...
뭐 그런 것들의 천국...
작은 맥주, 작은 정종, 작은 포장류들...
괜히 옆을 지나가는 일본 여자들에게 어느 것이 맛있냐고 물어본다.
이것 저것 맛있다네.. 맛있다는 것 몇 개 샀지.
맛있다는 라면 몇 봉지, 맛있다는 정종 몇 병, 맛있다는 맥주 몇 캔... 맛있는 것만 사고 싶었다.
거리를 걷는다.
무지하게 깨끗하구만,
대마도는 정말 울릉도와 비슷한 느낌의 시골이었다.
마치 우리나라 어느 시골을 2/3정도의 크기로 축소시켜놓은 듯
거리도 집도 절도 사람도 차도 모두 모두, 심지어 사람들의 말소리조차도 같은 비율로 축소시켜 놓은 듯 싶다.
여기의 주소는 1111-111-111번지로 잘게 나눠있을 것 같기도 한.
*
하루를 끝내고 대마도에서 민숙을 운영하고 있는 재일교포 여자를 따라나선다.
작고 마른, 파란 장화를 신고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이제 막 할머니의 모습이 되려는 여자가 우리의 가이드가 되어 함께 움직인다.
민숙집을 한다는 여자는 우리들을 위해 멧돼지 바베큐와 가리비구이를 준비해 두었단다.
모두들 파도소리가 들리는 그녀의 집 마당 포장 안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들 있었다.
뭐랄까...
왜 그 여자를 찾아나섰는지 모른다.
특별히 사람들 사이에서 재미가 없었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그 여자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는지.. 어쨌는지.
그 여자의 주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 여자를 보든 순간, 찌릿한 무엇이... 내 속에서 일어난다.
일본인 남자와 초밥 몇 개를 놓고 술을 마시고 있는 초로의 여자. 내가 들어서자 무엇이 필요하냐고 묻기만 했던 여자. 웃음도 뭣도 아무 것도 없는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아니 심드렁조차 없는 표정으로 용건만 말하는 여자에게 고추장요 하고 대답했다.
한 여자가 일본의 작은 섬, 국경의 섬이라는 대마도에서 홀로 살고 있다.
그 여자가 종이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천득의 인연이라는 수필에 나오는 한 구절이 생각났다.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왜 일본남자와 초밥을 마주하고 앉아 잔술을 비우던 그 여자를 보는 순간, 난 한편의 소설을 만들고 있는건지... 참 나!
고추장을 얻어 나오면서 뒤가 당겼다.
그 마음의 주소는 그 여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이겠지.
그 여자의 집에서 그 여자가 준비해둔 이불을 덮고 그 여자가 만들어준 밥을 먹으며 지냈다. 하룻밤을....
*
신사에 갔다.
아주 작은 신사에 뭔지 모를 물건들이 여기 저기 놓여있었다.
주황색의 작은 비석같은 것, 당연히 그런 물건인 줄 알았다.
앞에 섰던 일본사람이 100엔을 넣는다. 그러더니 껌 종이 같은 것을 꺼내 읽는다.
나도 한 번 따라 해봤다.
그 종이에는 "신의 가르침"이라고 씌여있었고,,,
대충 한자와 일본어의 조사들을 연결시켜 말을 만들어보니, 올해의 운세 같은 것이다.
올해 나의 운세?
거기에 그렇게 씌여 있었다.
돈을 벌거든 남을 위해 다 써라.
남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전력을 다 하라.
내 마음은 없는 것으로 하라
그럼 내 마음이 남을 것이다.
뭐 대충 그런 것 같았다. 그래 그러자. 뭐 별 거 있어. 남을 위해서 살려고 해서가 아니라
내 삶에 별로 이득이 없다면 그것은 사는 내내 남을 위해 뭔가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
꼭 그렇게 애쓸 것도 없는거야.
저절로 그렇게 되는거야. 하며 웃으며.... 나의 운세를 일본땅에서 보았다.
일본땅!
그렇지 그곳은 일본땅이었지.
대마도에 한국전망대가 있다. 첫날 마구 내리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았다.
부산이 보인다.
핸드폰이 터진다.
집에 계시는 부모님께 전화를 했다.
거기 한국땅이 맞나보다 하신다. 그런가보다 했다.
경계는 항상 통하는 것이다. 경계는 공유하는 것이다. 경계는 모두에게 소외되는 곳이다. 경계는 세상과 가장 먼 곳이다.
일본 땅이라는 그 곳에서서 부산을 바라보며, 집에 계신 부모님과 통화를 하며......
새해인사를 하며
국경, 경계에 선 나의 주소를 추적하는 것이 그 곳이 아니라 내 안에 있음을,
세상의 경계의 모든 경계가, 너와 나와의 경계부터, 과거와 현재의 경계, 할 수 있음과 할 수 없음의 경계... 이 모든 것이 모두 내 안에 있음을,
그 곳이 아니라는,
그 작은 섬이 아니라,
그 작은 섬보다 더 작은 내 안에 있음을,
경계를 그어놓은 선들로 엉켜 바글거리는,
그랬었다.
히타카츠항에서 돌아오는 뱃길은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낯선 부산항이 익숙했다.
주소지로 돌아온 까닭이겠지.
"그리워하는데도 한번 만나고는 못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경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주소를 갖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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