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10월 9일
한 달 이상 일기를 쓰지 않았다.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나를 따분하게 한다. 정신적 진보가 의식적, 의도적 그리고 고통에 찰 대 일기는 유용하다. 게다가 너는 네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고자 한다. 그러나 지금 내가 말해야만 하는 것도 나 자신에 대한 수없는 되뇌임일 것이다, 일기는 깜짝 놀랄만한 생각 혹은 사춘기의 감수성을 기록했을 때, 아니면 스스로 현재 죽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라야 재미있다. 나에게는 더 이상 어떠한 드라마도 일어나지 않는다,
종잡을 수 없는 관념만이 있을 뿐이다. 종이 위에 써 내려갈 필요도 없다.
-앙드레 지드의 [다시 태어나고 싶은 이 지상에서] 중 '회색빛 영혼의 내면일기'
앙드레 지드' 라고 하면 '좁은 문' '전원교향곡' 이 생각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뭔가 강렬한 인상보다는 읽어야 할 필독서의 작가였다. 내게는 그랬다.
그저 담담했던 소설... 이라고 기억한다.
사춘기즈음 아니면 그 이후에 삼성출판사 100권짜리 세계문학전집 중의 한 권으로 읽고는 다시 읽지 않았다. 그 기억 뿐!
까뮈를 몇 권 읽다보니, 자꾸 이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각인된 어떤 상을 너무 오래도록 갖고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더는 像을 다시 각인하지도 못하고, 처음 각인된 상에 대해 의심하지도 않고 살아간다.
'데미안'이 그렇고 '이방인'이 그렇다.
학창시절 들었던 그 강력함을
-강력한 각인은 내가 스스로 독서를 통해 체험한 것이 아니라 전해 들었다는 것-
그 각인된 상을 쭉 갖고 있게 된다.
시간이 지나 까뮈를 읽고, 지드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리고 지드를 찾아가보았다.
어제부터 [다시 태어나고 싶은 이 지상에서]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러다 이 일기에서 멈췄다.
언제나 존재한다.
'삶'이라고 부를 가치가 있는 삶은 언제나 존재한다. 오늘 내일... 허락한다면 이 책을 다 읽고 싶은데... 떠들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드는.....이 허영!
"나를 너에게서 본다. 나를 너에게서 찾는다. 나를 더 선명히 보여주는 너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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