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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는대로 映畵

[구스 반 산트] 라스트 데이즈 Last Days

by 발비(發飛) 2006. 12. 3.

 

구스 산 반트 감독. 2006개봉. 미국. 마이클 피트 주연

 

'내가 죽음으로써 얻어질 이득.....나는.....무언가를 잃었다.....내인생에서.....'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기보다 한순간에 타버리는 것이 낫다.'

 

-블레이크가 남긴 유서 중에

 

' It's a long, lonely journey, from death to birth.' 죽음부터 태어남까지의 길고 외로운 여행

 

-블레이크 부른 노래가사 중에

 

 

토요일 밤이면 교육방송에서 방영해주는 영화 덕분에 충만하다.

 

'엘리펀드' 참 색달랐던 영화의 감독인 '구스 산 반트'의 최근작이라한다.

이 영화는 너바나라는 그룹의 리더인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중심으로 영화를 제작했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죽음에 대한 이미지라고 해야 할 듯 싶다.

영화의 전개에 스토리가 정연하지 않고,

그저 한 장면 한 장면이 마치 뚝뚝 끊어진 그림인 듯이 연결되었다 끊어졌다한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의 사연이 정연하지 않은 것과 같다.

죽음을 선택한 사람은 한 가지의 이유 내지는 논리적으로 합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 이미지? 들이 모여 그 아래 깔리는 것이다.

커트 코베인의 음악을 지금 다운 받아서 듣고 있다.

그의 노래는 분명하지 않은 발음, 입안에서 지르는 소리, 소리를 지르나 읊조리는 듯한 .....

그 소리가 영화와 똑 닮았다.

 

블레이크가 산 속에서 밤새 헤맨다.

인적이 없는 숲 속의 집에서 머문다.

친구들이 있다.

따로 행동하는 친구들이 있다.

유서를 적는다. 혹은 기타를 치면서 들을 수 없는 가사로 노래를 한다.

긴소매의 옷을 뚫어 항상 손가락을 옷소매에 끼우고 있다.

함께 하던 친구는 그의 죽음을 보고 떠나며 기타를 연주한다.

 

전개할 수 없는 스토리가 영화의 전편에 깔렸다.

엘리펀드에서 본 던져지는 듯한 화면이 그대로 느껴진다.

엘리펀드는 타인의 죽음을 만드는 이야기였다.

라스트 데이즈는 죽음을 스스로 만드는 이야기였다.

레퀴엠이라고 해야하나.

감독은 죽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타인 혹은 자신의 죽음.

그래서 그런 대사를 사용하는지도 모른다.

 It's a long, lonely journey, from death to birth.

죽음에서 시작하는 삶의 여행, 죽음을 통해 정의되는 삶, 준비되는 삶.

죽은 모든이는 현실을 잊고 여행 중이다.

현실로 돌아와 다시 살아내기 위한 힘을 키우는 혼자만의 여행 중이다.

그들의 여행이 보람차길......

 

이미지로 보는 영화였다.

마치 달리의 그림을 보듯, 이유나 설명이 필요치 않는 어느 언저리로만 이해되는 영화였다.

 

사실,

블레이크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 전에 유서를 쓰고 있었다.

난 잠시 딴 생각을 했었다. 그에게 나를 비춰 생각하면서 블레이크가 아닌 나의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화면으로 돌아갔을 땐 친구는 떠나고 있었고, 구급차가 그의 시신을 거두고 있었다.

난 영화에서 블레이크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죽음의 순간이 나왔는지 어쨌는지도 알 수 없다.

갑자기 그가 죽어 구급차에 실려갔다. 그가 유서를 쓰는 것을 보았는데도 갑자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는 사랑이라고 했다.

 

그럼 사람은 무엇으로 죽음을 떨어뜨릴 수 있는가.

 

톨스토이에게 물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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