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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성녀 발비나

by 발비(發飛) 2006. 5. 16.
 

   

 

 

성녀 발비나(Balbina) 축일 3월 31일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e) 활동연도 +2세기경 

 

  로마 순교록에는 성녀 발비나의 순교 사실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교황 알렉산데르 1세(5월 3일)로부터 세례를 받고 순교한 성 퀴리누스(Quirinus, 3월 30일)의 딸이며 동정녀인 발비나는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동정을 지킨 당신의 신부로 간택하셨다. 이 세상의 순례 길을 마친 그녀는 아버지 무덤 근처인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묻혔다.” 이 기록은 순교자들의 행적을 기록해 온 아도(Ado)라는 사람의 주장에 근거한 것이다. (성바오로수도회홈)

 

성녀 발비나는 2세기초 사람이다. 아버지는 귀리노라는 로마제국의 군인으로서 대령까지 승진했다.아버지나 딸이나 모두 처음은 우상교의 신자였지만 나중에 가톨릭으로 개종해 두 분 모두 성인품에 오른 훌륭한 사람들이다.

 

발비나는 소녀 시대부터 외모가 아름다웠고 재능도 뛰어났으므로 아버지도 특별히 사랑했고 가정도 부유했으므로 많은 청년들에게서 혼담이 들어왔다.그러나 세상일은 믿을 수가 없는 지 뜻밖에도 발비나는 목에 나쁜 부스럼이 생겨 용모가 추해져서 부끄러운 나머지 사람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안되었다.아버지는 이를 대단히 슬퍼하며 각지의 의사에게 보이기도 하고, 갖은 약을 다쓰기도 하고, 신들에게 기원도 해보고 점도 쳐보는 등백방으로 고치려고 해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도 보지 못했다.

 

그때 마침 그리스도의 이름이 방방곡곡에 전파되고 기의 기적의 소문도 대단해 귀리노는 마침내

"만일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교회의 두목이 딸의 병을 고쳐 준다면 가족 모두 교회에 나가겠다."는 맹세를 하느님께 드렷다.

 

이 시기는 아드리아노 황제의 박해 시대였으므로 알렉산델 교황은 옥중생활을 하고 있었으나 귀리노가 딸 발비나를 데리고 와서 면회하니그는 그들의 진심을 알고 열심으로 하느님께 기도한 후 손을 묶은 쇠사슬을 발비나의 상처에 대자 곧 그녀의 병은 완치되어 발비나는 전과 같이 미모의 소녀가 될 수 있었다.

 

아버지와 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서 하느님께 감사를 올리는 동시 교황 앞에 무릎 꿇고 그의 쇠사슬에 친구했다.그리고 그의 권고에 의해 전에 맹세대로 집안 모두 교리 공부를 시작하고 오래지 않아 훌륭히 세례를 받고 새 생활을 시작했다.

 

발비나가 완쾌되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그녀의 병을 싫어해 만나지도 않았던 청년들이 또다시 귀찮게 하기 시작했다.그러나 이미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한 발비나는 현세의 사랑 같은데는 끌리는 마음 없이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평생 동정을 지킬 결심을 굳게 했다.

 

전승에 의하면 세례 후에 불을 켠 흰 초를 든 천사가 나타나 그리스도의 배필이 될 것을 권고했다는 말도 있지만하여튼 세상의 허무함을 깨달은 그녀가 영원을 바라보며 거룩한 일생을 보내려고 결심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그녀는 매일을 그리스도께 봉헌하며 사랑을 표시하기 위해 자선 사업에 헌신하는 것을 자기의 일로 삼았다.

 

귀리노 대령의 일가족이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는 사실은 관가에 알려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귀리노는 즉각 법정에 호출되어 판사 아우렐리아노의 준엄한 문초를 받았지만 그는 겁내는 기색도 없이 자기의 신앙을 고백하고 드디어 순교의 영관(榮冠)을 획득했다.그 뒤 딸 발비나도 아버지의 뒤를 따라 천국에 가게 되니, 이로써 이 성스러운 부녀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서로 만나 즐기며 같이 하느님을 찬미하는 몸이 되었다.그 후 성녀 발비나의 용감한 신앙의 덕을 사모한 나머지 로마 신자들은 아벤티노 언덕에 한 기념 성당을 세웠다. 발비나 성당이 바로 그것이다.

(대구대교구홈)

 

출처 : 엔담의 쉼터 |글쓴이 : 엔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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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성당에서 영세를 받았다.

원장 수녀님께서는 생일날과 맞는 성녀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셨지.

'발비나'

듣고 보도 못한 성녀이다.

내가 이제까지 본 발비나라는 영세명을 가지고 계시는 분은 딱 한 분이시다.

 

처음 카페활동을 할때 '발비'라는 닉을 만들었었다.

신부님께서 내게 '발비야!'하고 부르셨거든,

그 영세명이 발비나보다 내겐 백배 천배 맘에 들었고

그렇게 부르실때면 특별한 영혼이 되는 듯 했었다.

특별하고 싶을 때 난 발비를 생각했었다.

 

그리고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때 나의 이름을 뭐라고 할까 생각했었다.

'발'은 姓이라고 치고, '비나'가 이름이다.

비나입니다. 비나인데요. 그러다가 문득 '비나이다'

그것도 '飛' 이다.

그래서 난 비나이다 이올시다.

기원하다는 뜻도 있고, 날고 싶다는 뜻도 있고.

 

이젠 어쩌면 나의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리워지는 이름이다.

발비

비나이다

 

사람들이 묻는다. '발비'가 무슨 뜻이예요?

그럼 영세명이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성당을 나가지도 않고 있으니까.. 괜시히 떳떳지 못해서.

그럼 난 대답한다. "그냥요!"

 

그러다 혹시나 싶어 검색창을 두드리니, 발비나 성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구나...

그런 분이시구나...

아주 이뻤구나. 그리고 험하기도 했구나. 다시 이뻐졌구나.

발비나성당도 있구나.

나처럼 아버지와 친했구나.

참 맘에 드는 성녀다.

 

 

 

 

그저 이름에 대해

내가 지은 나의 이름에 대해

 

"발비가 무슨 뜻인가요?"
한식기와잇기에서 서까래 위에 산자를 엮고 알매흙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덧대어 까는 볏짚, 대팻밥, 헌거적 또는 나무조각등으로 알매흙을 깔때 쓰입니다. -다음 신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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