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술이야기가 좀 그렇지만, 간만에 파지에서 나온 술 이야기가 재미있다.
낄낄거리며 읽으면서 아침부터 괜히 입맛을 다신다.
어제 만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술꾼이라고 말했다.
그건 아마
난 다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술에 대해서도 그냥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기 때문일 것이다.
"네 좋아해요!"하고 씩씩하게 말하니깐..
많이 마시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분명 다르지...
집안내력이다.
그리고 술자리는 대체로 답답하지 않다. 사람들이 좀은 얇아지니까 좋다.
얇아지는 사람과 술을 마신다.
작은 제목이 [술의 사회학, 주법과 의식] 이라고 되어있다.
옮겨본다.
술친구 12원칙
1. 말을 잘 하면서도 아첨하지 않는사람
2. 기백이 약한 듯 하면서도 어느 한군데에 쏠리지 않는 사람
3. 눈짓으로 하는 주령(酒令, 신호라 뜻한다)보고 잘못된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 사람
4. 주령이 새행되면 온 좌중에 호흥하고 나오는 사람
5. 주령을 들으면 즉시 이해하고 재차 문의하지 않은 사람
6. 고상한 해학을 잘 하는 사람
7. 좋지 않은 술잔(이 경우 여자를 포함)을 차지하고도 아무 말이 없는 사람
8. 술을 받게 되어도 술의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는 사람
9. 술을 들면서 거동에 실수가 없는 사람
10. 아예 만취가 되었어도 술잔을 들러 엎지 않는 사람
11. 제목에 따라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
12. 술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흥취가 밤새도록 만발하는 사람.
-이러한 기준이 가히 같은 자리에서 술을 나눌만한 친구들이다. 여기에 합당하지 않은 술자리라면 꽁무니를 빼는 것이 가장 유능한 술꾼의 자세이다.
다르다.
일반적으로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술을 함께 마시고 싶은 사람은 좀 다르다.
호락호락한 사람과 술을 마셔야 하는구나.
호락호락한 사람? 그런 사람과의 술자리에서는 대등할 수 있으니깐.
술은 결국 한 짐을 덜려고 마시는 것인데,
짐 나눠지진 않아도, 짐이 느껴지지 않게 마취제 정도는 되어줄 그런 사람과 마셔야지.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그런 사람과 나누고..
그래서 어깨에 짊어진 짐이 좀은 무감각해지기도 하고
술에 사람에 그냥 취해 짐진 줄도 모르게 저 앞까지 가 있으면 더 좋고.
그러려고 나누는 술!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 호락호락한 사람... 好樂 好樂 好樂 好樂 好樂한 사람!
허균의 술이야기
멋지다. 그런 생각도 하고 술을 마시는 사람. 모든 것을 정리하며 사는 사람.
멋지다. 가지런한 사람
술을 마시는 데 적절한(마시지 않을 수 없을) 때
1. 시원한 달이 뜨고, 좋은 바람이 불고, 유쾌한 비가 오고, 시기에 맞는 눈이 내릴 때
2. 꽃이 피고 적당히 술이 익은 때
3. 우연한 계제에 술이 마시고 싶을 때
4. 술을 조금 마시고도 흥이 도도해질 때
5. 처음에는 약간 울적한 기분이었다가 한두순배 술이 돌아 기분이 맑게 개고 대화가 화창해질 때
-계절을 거스리지말고 억지로 기분을 만들지 마는 것,
이럴 땐 마셔야지.
울릉도 바닷가에서 하늘에 동그랗게 떠 있는 달, 바닷물에 비친 달 그림자,
그리고 내 술잔에 달을 담아 마셨던 그 때가 생각난다.
난 딱 마셔야 할 때 마신거다.
남들은 좋은 회안주에 술을 마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난 그날 안주를 안먹었다.
동그란 달이 안주였다.
그리고 알딸딸해서 바닷가를 걸었었지.
파도소리 들으며 모래에 일렁이는 파도가 아니라, 검은 바위에 부딪는 파도소리...
술 한잔이 파도소리를 더욱 크게 들리게 하고.
온 세상이 바다로 보이게 하고
달은 더욱 둥글게 만들고. 나는 충만한 행복을 느꼈다.
술이란 그런 거.
마셔야 할 때 마시면 좋은 것으로 가득차게 되는 거. 그런 거...
그런 자리 있으면 나 좀 불러주~~~.
술을 삼가해야 할 때
1. 날씨가 찌는 듯하고 바람이 건조하여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삭막히 부는 날
2. 정신과 마음이 삭막할 때
3. 특별한 자리에서 자신의 주량이 걸맞지 않는때
4. 술을 마시며 주인과 손님이 서로 견제할 때
5. 분주하고 황망하게 술잔을 돌려 마치 시간의 여유가 없는 듯 할 때
6. 억지로 기쁜 표정을 짓고 있어야 할 때
7. 자리를 자주 옮기며, 동석한 이들이 서로 귓속말을 주고 받을 때
8. 약속에 의해 야외로 나갔다가 날씨가 몹시 흐리고 폭우가 쏟아질 때
9. 갈 길은 먼데 날이 어두워져, 술잔을 놓은 채 돌아가기를 생각해야 할 때
10. 초대한 손님은 훌륭한데, 그가 뒷 약속이 있거나 기생이 즐거워하면서도 다른 볼 일이 있을 때, 술이 진하여 입에 맞지 않고 술 안주가 맛갈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차게 식어있을 때
마셔야 할 자리의 강제성과 마시지 말아야 할 자리의 강제성을 생각한다면,
당연 마시지 말아야 할 강제성이 우선 순위다.
이것이 바로 술마시는 자의 품위를 좌우하는 일이다.
술을 좋아하는다고 술이 있는 자리 어디든 술을 마신다?
그건 절대 안되는 말씀!
다른 것은 몰라도 술자리를 가려야 한다. 온 몸으로 체득한 결과물이다.
마시지 않아야 할 때 마시는 것!
그것보다 괴로운 것도 없으며, 그 댓가 또한 지저분하게 치뤄야 한다..
즐겁자고 가볍자고 술이 있는 것이다.
구색이 맞지 않을 때는 작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담을 꼭 기약한다.
필이 꽂히지 않으면 삼가한다.
술에 대한 시
져근덧 가디마오 이 술 한 잔 먹어보소
북두성 기우려 창해수 부어내여
저먹고 날먹여 날 서너잔 거후로니
화풍이 습습하여 양액을 추혀드니
구만리 창공애 져기면 날리로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중...
모밀묵이 먹고 싶다
그 싱겁고 구수하고
못나고도 소박하게 점잖은
촌 잔칫날 팔모상에 올라
새사돈 대접하는 것.
(......)
은은하게 서로 사랑하며 어여삐여기며
그렇게 이웃끼리
이 세상 거느리고
저승을 갈 때
보이소 아는 양반 앙인가요
보이소 웃마을 이생원 앙인가요
서로 불러 길을 가며 쉬며 그 마지막 주막에서
걸걸한 막걸리 잔으 나눌 때
절로 젓가락이 가는
쓸쓸한 음식
-박목월 [적막한 식욕] 중
들락날락 하면서 몇 번에 걸쳐 두드렸더니.. 그 와중에 한 번은 날아가고..
뭔 말을 했는지 모른다.
파란 글씨는 파지의 원본임.. 그러므로 그것은 정상인의 것!
2005.9.30. 아침
어제 이리 재미있어하면서 두드려놓고,
후배와 술약속을 했다. 실로 간만에 만나는거다.
'오호~, 오늘 술 마시라고 아침에 이런 말이 나에게 온 것이로군!'
인사동에서 소주를 딱 한 병 마셨다.
나 한 병, 그 친구 한 병
어지러웠다. 그래서 한 일... 청계천으로 건너갔다.
-잠시 딴 이야기-
(밤의 청계천은 새로운 에로물?들이 널려 있었다)
바람좋고, 간간히 몇 방울의 비가 내리고, 레이저 조명도 발사되고,
맑은 정신이 아니어도 보기에 좋더라.
이명박시장이 하느님이 천지창조를 하시고 나서
"보기에 좋더라"
하심을 충분히 공감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물 속에서도 조명, 물밖에서도 조명,,
오색찬란하더군. 소주 한 병 마신 내 맘처럼
1. 시원한 달이 뜨고, 좋은 바람이 불고, 유쾌한 비가 오고, 시기에 맞는 눈이 내릴 때
술을 마셔야 할 첫 번째 조건이 갖추어진 셈이다.
청계천 건너편에 맥주집이 화려하다.
조건이 갖추어졌으니, 한 잔 더! 함서 들어갔다.
어지럽다.
코로나 한 병을 시켜놓고, 마실 엄두를 못낸다.
9. 갈 길은 먼데 날이 어두워져, 술잔을 놓은 채 돌아가기를 생각해야 할 때
마시지 말아야 할 조건에 걸렸다. 한 병을 그냥 두고 나왔다.
아깝다... 무지 아깝다. 레몬도 띄웠던데....
그리고 집으로 왔다. 어지러웠다.
아침, 출근을 했다. 아직도 어지럽다.
어제 두드려놓은 주도에 대한 글이 나보고 웃는다.
그래도 잘 했는데,,,, 근데 힘이 든다. 이젠 내가 말하는 주량을 한 단계 내려야겠다.
이틀째 술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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