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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청계천 트래킹

by 발비(發飛) 2005. 9. 25.
퇴근시간이다.
내일 산행을 위해 푹 쉬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집으로 가려고 작정했었다.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집에서 해 먹기 위해 풀무원 칠리 스파게티를 하나 샀다.
생면이라 그리고 소스가 들어있는거라, 그리고 2인분이라 묵직하다.
뿌듯한 마음!
 
친한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뭐 해요?"
"집에 가려고.."
"나 동대문이야. 누나!"
"어?"
"청계천 괜찮네.. 얼른 나와. 한 번 걸어줘야지.."
"진짜 괜찮아? 기다려! "
 
그러면서 난 발길을 청계천으로 돌린다.
그래서, 난 오늘 얼떨결에 후배와 청계천 트래킹을 시작했다.
 
첫인상은 작다는 느낌이었다.
서울에서는 한강을 보았고, 그리고 작은 개천이라고 본 것은 중랑천을 보았기에
청계천도 중랑천 정도 크기일 것이고 생각했었나보다.
그리고 말로만 듣던 청계천은 항상 큰 의미였으까..
우리에게 뭔가 묵직한 어감으로 각인되었으니까...
그런데 정말 작은 실개천정도의 크기다.
 
하지만, 비대해질데로 비대해진 서울에서 이 작은 실개천은 어쩌면 쉬는 공간일 수 있겠다
항상 허걱거리게 크기만한 서울에서 작고 여린것이 있다는 것은
때로는 위로받을 수도 있을테니까...
정갈하다..
청계천의 양 옆에는 수쿠령이라는 강아지풀보다는 좀 거친 야생풀을 줄지어 심어놓았다.
(후배가 수쿠령은 청설모같고, 강아지풀은 다람쥐같단다.. 딱인 표현이다)
작은 버드나무 가지들도 간간히 꽂혀있었고
쑥부쟁이인듯이 보이는 꽃도 피어있었고..
물길은 고요히 잘 흐르고 있었다.
양 옆으로 번잡한 상가들과 대조적으로 고요히 잘 흐르고 있었다.
보기에 좋았다. 맘이 좋더라..
 
 

트래킹을 시작한 동대문신평화상가(역사의 현장.. 청계천이라는 이름을 강하게 만들어준 그 곳)
 
 
좀 더 올라와서 종로4가 정도.
 
동대문 평화시장 앞에서  만났다.
그리고 광화문 방향으로 청계천을 따라 올라갔다.
아직 개방을 하지 않아 청계천위의 도로 옆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동대문 상가를 양쪽으로 끼고 올라가는 길이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시작해서 광장시장을 지났다.
그 곳은 옷이나, 모자, 천같은 우리와 딱 붙어서 생활하는 그런 물건들을 꽉차있었다.
그 물건들 사이에서 빛이 바래지 않는 것을 고르는 것이 중요했다.
우린 거기서 등산용 장갑을 몇 가게를 거쳐, 고르고 골라서 5000원짜리로 샀다.
기념품이다. 맘에 든다. 아마 마트에서 사면 만원은 줘야 했을 것 같다. 뿌듯하다.
 
중고서적 길을 지났고. 아크릴과 기계들을 파는 종로 4가를 지났다
비닐이 두루마리로 말려있었고, 나사와 각종 모터, 연장들, 그리고 신나냄새
그 옆을 지나는데, '기초' 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무밴드가 산처럼 쌓인 것... 내 팔뚝보다 더 굵은 체인..
이런 것들이 세상을 돌게 하는구나 싶었다.
청계천 상인들이 뭉치면 탱크든 우주선이든 거뜬히 만든다더니.. 진짜 별별것들이 다 있었다.
오른쪽으로 청계천 물을 보며, 왼쪽으로는 온갖 물건들을 보며 유유자적...
그 사이로 사람들이 부딪힌다.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
청계천 복원을 구경나온 사람과 몰려 드는 사람들 때문에 뭔가 들떠보이는 상인들까지
동대문에서 종로 3가까지의 술렁거림은 작고 복잡한 점포만큼이나
잦은 숨을 쉬고 있었다.
아참! 간판들...
좁은 점포들에 마구 붙어있던 간판들이 이쁜 폰트의 글씨체로 통일중인 듯 싶었다
좁고 많은 점포들이 같은 필체의 간판으로 좀 정리는 되어보였다.
눈은 좀 편해졌는데.. 꼭 그렇게 같아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튼 청계천 상가일대는 뭔가 거듭나려고 애를 쓴 것이 역력했다.
말하지 않는 건물과 물건들이지만, 움직이는 어떤 기운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좋은 느낌이었다.
얼마전 처럼 검은 느낌은 아니었다.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랬다
간간히 이명박이 어쩌고 저쩌고....들린다.
(그 곳에서 이명박이라는 이름을 선거때를 제외하고 오늘 가장 많이 들은 듯  싶다)

 
 
풍향계를 청계천에 설치해 두었다
 

 
광통교를 거슬러 올라가자 곡선으로 물길을 만들어 놓았다
 
종로3가.. 아마 광교? 광통교? 아무튼 그 즈음에 지나자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풍향계를 지날즈음 부터인 듯 싶다
빨갛고 하얀 풍향계는 양쪽의 풍경에 비해 좀 쌩뚱맞은 감이 없지 않았다.
아직 바람에 따라 잘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사람들은 그 곳에서 셧터를 마구 눌렀다.
아마 시간이 좀 지나 색이 바래고 좀 찌들어지면 잘 어울리는 구조물이 되겠지 싶었다.
 
뭔가 기운이 다르다
아니 그렇다기 보다 좀 편하게 걷게 되었다.
처음에는 햇빛이 좀 사그라져서 편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건물이 커지면서 거리에 나온 물건들이 없어지면서 좀 한가했던 것이다.
좀 한가해진 거리를 걸으니 걷는 게 편했던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면서 물살이 좀 강해졌다. 물소리도 들린다.
마치 어느 계곡의 물소리처럼 그런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물 흐르는 속도를 줄이려고 그랬는지, 물길을 굽이굽이 흐르게 만들어 놓았다...
 
그때 그 옆에 있는 건물들을 올려다 보았다.
이 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좋겠다. 점심시간이면 물소리를 듣기도 하겠구나
머리가 좀 맑아지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목을 뒤로 팍 제치고 높은 빌딩 꼭대기를 올려다 보았다
높은 건물에 반짝이는 유리들... 이제 그 아래로 '하이 서울' 청계천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높은 건물들.. 그리고 낮고 작은 물.. 야생화들. 풀...
흐음~~~
여기 사람들도 좀 들떠 보였다.
 

청계천 복원의 시작점
 
광화문에 이르자, 청계천 복원 시작점이 나타났다.
물을 끌어와 흐르게 한다더니. 양쪽으로 물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분수를 시험가동하고 폭포도 시험가동하고
풍경이 완전 달라졌다. 가능한 일이었다.
한참을 그 끝점에서 바라보았다... 달라진 모습을 잘 보고 있었다.
아마 담주부터 사람으로 미어터지겠지...
저 길을 걸으려면 줄을 맞춰가야겠지....
청계천홍보관이 있는 걸보면 관광구역이 될 가능성도 있다.
일단 청계천 트래킹을 마쳤다.
 
종각방향으로 나왔다.
보신각에서 턴을 해서 종로3가쪽으로 걸어간다.
그 길을 걸어가는데, 자꾸 오른쪽을 보게 된다.
예전에는 그냥 지나가던 길인데, 오른쪽으로 한 블럭만 가면 물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일탈을 가능하게 하는 것 같은 설레임이 생기는 것 같았다.
오른쪽을 몇 번이나 봤다.
그리고 왼쪽에 줄을 선 포장마차에서 김떡순(김치빈대떡+떡뽁이+순대)를 먹었다.
갖추어진 듯한 느낌이다. 먹고 쉴 데가 있구나 싶었다.
그런 느낌은 내내 들었다.
인사동도 한 바퀴돌았다. 쌈지건물옥상에 올라가서 저기가 청계천이구나 손가락질하면서...
언제나 청계천은 그 곳에 있었는데.
지하에 있었는데. 지상으로 나오자 자꾸 눈이 갔다..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경복궁과 인사동.. 바로 가까운 옆에 청계천이 있었다.
들풀도 있고, 물흐르는 소리가 있고.. 빌딩에서 쏟아져나오는 넥타이들의 깔끔함이 있고
작은 점포의 치열함들이 거리로 밀려나오고 있었다.
마치 인간군상의 띠지를 엮어놓듯, 청계천을 가운데 두고,,, 줄을 서있다.
이렇게 저렇게...
며칠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청계천은 어느 방향이지? 하면서...
새로운 쉴 곳을 마련했다.
경복궁, 인사동,,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청계천에서 다리를 쉬어가면 되겠다 싶었다.
 
바램이라면, 얼른 개업식의 들뜸이 가라앉아서.
그냥 생활속에 묻혀있는 청계천이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빨갛고 하얀 풍향계가 얼른 빛이 바랬으면 하는 바램이다.
 
오늘 하루 4시간을 넘게 묵직한 스파게티 봉지를 들고 걸었던 그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
집으로 와서 가방에서 스파게티 봉지를 꺼내 다시 냉장고에 넣으면서,
괜히 들고 다녔다하는 후회가 되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은 그런 것은 문제되지 않았다.
다른 문제없이 그냥 잘 유지되기를 바란다....
비록 인공적이긴 하지만, 이왕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할거라면, 그 안에서 터득해 살아야 한다.
 
오늘은 청계천 위 도로을 걸었지만, 곧 청계천길을 걸어야지...
 
청계천 트래킹(?)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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