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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정현종]빛구름이 외 1

by 발비(發飛) 2005. 9. 14.

-빛구름이-

 

정현종

 

저녁 아홉시.

밖에서 저녁 먹고

술 한 잔 하고

돌아오다가

하늘을 보니 아,

구름이 빛덩어리이고

또 하늘이 푸르르다. 이 밤에

하얀 빛나는 구름 때문에 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다시 술집으로 간다

 

돌아와 샤워를 하는데, 아

그 구름이 나를 씻겨주는 게 아닌가!

 

술에 꽂힌 날.

술을 마셔서 술에 대해서 생각한 날

술 마신 시인의 이야기가 좋다

 

정도, 정도껏 이라는 말이 생각나게 한다.

아마 시인은 정도껏 마셨나보다.

하늘을 보기도 하고 구름을 보기도 하고

하늘과 구름이 아름다워보이고, 그래서 한 잔 술이 더 생각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에게 겨워 한 잔 더 마신 술은 얼마나 달까?

 

하늘과 구름이 환히 보이는 밤

그 밤에 약간의 알코올

정도껏의 알코올

아름다움에 더한 아름다움이 느껴지겠지.

 

그럼 중독인가?

아마 아닐거야...

누구나 더욱 더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갈망하는 것이니까..

정도껏. 그 정도껏을 생각하게 한다.

 

아름다워보이는 정도로

같이 있는 사람들이 아름다워보이고

같이 부르는 노래가 즐겁고

그리고 하늘과 땅과 불빛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정도로

그 정도껏....

난 그 정도껏 살고 싶다.

딱 그만큼 그 정도만 살고 싶다

사람이 그리고 내머리위가 내 발아래가 아름다워보이는 그 정도만 딱 그정도만 살고 싶다.

 

그 정도가 넘은 나,

그런 나는 없었으면 한다.

 

구름이 강한 태양에 자리를 내어주듯 그렇게 소리없이 없었으면 한다.

정도껏 마신 시인의 알코올.

그 알코올을 씻어주는 그의 시. 좋다.

 

2005.02.24 15:05

 

 

 

-바람이 시작하는 곳-

 

 

 

하루를 공친다

한 여자 때문에.

 

하루를 공친다

술때문에.

 

(마음이여 몸이여 무거운 건 얼마나 나쁜가)

 

정신이라는 과일이 있다]

몸이라는 과일이 있다

그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두엄이고 햇빛이고

바람이거니와

 

바람없는 날은

자기의 무거움에서 벗어날 길이 없는

대지여

여자는 바람인가

술은 햇빛인가

그러나 언제나

마음은 하늘이다

바람이 시작되는 그곳이여.

 

 

이제는 너무 순진한 말이 되어버린 '바람'

바람이 불어 바람

볼을 뜯어내는 듯한 바람이 없어지면서

우리곁에 바람도 사라졌다.

 

차가운 봄바람

그래서 따뜻한 봄바람을 잊어버린 시기에

같이 바람이 사라졌다.

 

누가 바람을 피우나 요즈음 세상에...

바람을 피울 겨를이 어디있을까

바람을 피운다고 느끼지도 못하는 사이에 금새 뜨거워지는데...

 

바람이라고 말할때는 흔들림을 이야기 하는 것일 것이다

흔들림이 아니라 넘어가버린다.

 

지금의 우리 아니 나는 흔들림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뜨거워지는 까닭에

바람이라는 말이 너무 순진한 말이 되어버렸다

 

바람을 피우는 동안의 설레임이 사라진 지금이다.

 

2005.02.2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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