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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대로 小說

[김용범]나는 이중섭이다

by 발비(發飛) 2005. 8. 10.

 

 

 

 

딱 활자와 캔버스의 만남이다.

이중섭의 일대기와 현재 그의 위작 이야기가 교직되어 전개된다.

책 넘김이 빠르다.

이 책에서는 그냥 이중섭의 길을 가벼운 마음으로 따라간다. 설렁설렁 따라가 본다.

 

내가 이 책의 책장을 계속 넘기는 이유 중에 하나는

시인인 김용범 작가가 간간히 넣어주는 시 때문이다.

스토리와 맞물려 배치되는 시.

그냥 시집에서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 책에 나오는 시읽기를 하고자 한다.

 

또 한권의 책을 늘어놓았다. 진행 중인 책이 몇 권이냐?

나의 책읽기 습관 ! 이것저것 번갈라 읽는다. 이 책은 빌린 책이라 빨리 읽어야 한다.

 

 

 

-도원-

 

 

사랑의 운명

 

라이너 마리아 릴케

 

그것은 나의 창

살며시 나는 눈을 뜨네

둥둥 떠다니고 싶은 마음

나의 삶은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밤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주위의 모든 것들이

과연 나 자신일까?

수정처럼 맑고

깊고 어둡고 고요한 이것

 

나는 내 안의 깊은 별들을

잡으리라

그렇게 내 가슴에 부풀고

그러다 다시 풀어버리네

아마도 사랑했을,

내 마음속 깊이 간직했을 사람아

한번도 그린 적 없는 듯

나의 운명이 낯설게 바라보고 있네

 

아, 무한 속에 눌려 있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초원의 향기를 풍기며

이리저리 흔들리는......

 

나의 부르짖음을

누군가 알아들을까봐 두려움에 떠는

어떤 사나이의 가슴 속으로

몰락해 들어가는 운명을 지닌.....

-69쪽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보낸 시란다

물론 이 시는 소설가의 설정일 수도 있고, 또 사실일 수 있지만

어떻든 간에 아직은 보이지 않는 사랑에 대한 두려움이 묻어난다

 

사랑을 만났으나 아직은 혼자만의 사랑인

그 순간  절망감 혹은 애닮음

 

사랑의 과정 중 난 이 때를 가장 클라이막스라고 본다

사랑을 만나 갈등 구조가 생기고 화해하고 만나고 할 때보다는

멀리서 바라보는 .....

사랑이 막 시작될 때, 두려움으로 그 사랑을 말없이 보는 때

 

그것은 아직 혼자만의 사랑이지만

사랑이라는 감정의 최고조이며 순수한 결정체라고 생각한다

댓구가 없음에도 간절한 그런 사랑

 

이때의 절실한 감정을 곡선그래프로 그려보면, 그 두근거림과 설레임 공포때문에

신체리듬을 표시한 곡선은 최저치겠지만

실제로 그것은 최저치와 최고치 두 선을 동시에 가진 괴이한 상태일 것이다

 

이 시를 그런 순간의 마음을 나타내는 시로 읽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그 공포와 절망를 느꼈을 것이고, 동시에 희열을 느낄 것이고

절망과 희망의 큰 폭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갈 것이다

사랑은 사랑과 닮았다

 

그 공포는 기쁨이었다

감히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석류

 

발레리

 

너의 하많은 씨알의 힘에 못 이겨

마침내 반쯤 벌어진 굳은 석류들이여

스스로의 발견에 파열된

고매한 이마들을 보는 듯!

 

오, 반만 입을 연 석류들이여

그대들이 받아온 일광은

자만심에 움직인 그대들로 하여금

홍옥의 장벽을 무너뜨리고

 

그리고 금빛 메마른 껍질마저

어떤 힘의 욕구에 밀려

과즙의 붉은 구슬 되어 터진다 하며

 

이 눈부신 파열으

일찍이 내가 가졌던 어느 영혼의

은밀한 구조를 몽상케 한다

-79쪽

 

이중섭 혼자서 조선으로 건너와 일본에 있는 마사코를 그리워하며 보낸 엽서에 쓴 시란다

 

이런 시

사물에서 사람을 찾는 것

세상에 사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나랑 닮은 것 찾기

내 얼굴과 닮은 것, 내 마음과 닮은 것, 내 사랑과 닮은 것... 닮은 것 찾기

 

석류에게서 수많은 마음의 갈래를 찾았다

난 하나인데 내 안의 나는 수백 수천개이다. 그 하나 하나가 제 몸을 빨갛게 익혀가고 있다

어느 것이랄 것도 없이 이 마음 저 마음 모든 마음은 제 마음대로 제 생각대로 자라고 있다

언제가는 그 마음자리가 부족해 나의 안에서 탈출한다

궤도 이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 안에서 나가 버린, 혹은 내가 더는 마음들을 감당 못해 나의 문을 여는 순간

마음들은 마지막 선택을 한다

어디로 가서 맘을 둘 인지.

언제나 결론은 같다.

석류

빨갛게 익어, 농익어 터지도록 내 안에 있다가

다시 석류의 이름으로 돌아가는 것

다시 석류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은 다시 또 다른 태양 아래 수백 수천개의 석류알을 빨갛게 데워가는 것이다

다시 또 사랑을 하는 것이다.

 

이중섭은 이 시를 아내 마사코에게 보낸다

자신의 마음이 빨갛게 타들어가고 있으며, 어느새 마사코에 대한 사랑으로 더는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잘 보여준 발레리의 시를 마사코에게 보낸다

이런 시를 받고도 감동하지 않으면?

인간은 이성의 동물이지만, 감성의 동물이다.

후자를 포기하는 것이 된다

 

 

 

소의 말

 

이중섭

 

말고 참되 숨결 나려나려

이제 여기 고웁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픈 것

 

아름답도다

두 눈 맑게 뜨고 가슴 환히 헤치다

-104쪽

 

모촌

 

오장환

 

초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 서리 차게 내려앉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라 붙던 밤, 지붕밑 양주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 들고 초라한 지붕,썩어가는 추녀가 덮힌 움막을 작별하였다

-108쪽

 

 

이중섭이 남북전쟁이 나고 이념이 갈라지기 전에

오장환의 시집에 그림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그는 오장혼을 좋아했단다

오장환이 공산주의자가 되어 강한 이념시를 쓰기시작하자,

이중섭은 좀은 상심을 했단다.

그는 평소에 오장환의 시를 좋아했었는데, 특히 이 '모촌'이라는 시를 좋아했단다.

 

동상이몽인가?

난 그냥 한편의 그림을 보듯 살폈고,

그렇게만 받아들였는데, 이건 뭔가 사연이 있는 시같다.

마치 한용운의 [님의 침묵]처럼 뭔가 의도된 시 같다

오장환

잘 모르지만, 공산주의 사상에 빠지기 전의 시라지만, 왠지 그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이다

그렇지

누군가 하루아침에 자신의 생각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몸을 관찰하고, 나의 피부색을 알고, 나의 스타일을 파악하고 옷을 사듯이

그도 그의 골수에 박힌 생각의 흐름을 쫓아가다보니 공산주의 였나보다

그것이 그와 잘 어울리는 옷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자신과 어울리는 체제에서 산다는 것은 그 만큼의 힘을 덜어내고 사는 것이니까 가벼울 것이다

그냥 그렇게 그의 시를 읽는다.

 

추녀는 썩어간다.

썩어가는 추녀에서도 박은 자라 영글고 새로운 바가지를 만들어준다

썩어가는 곳에서 같이 썩을 것이 아니라, 새로운 박바가지 하나들고 그들은 새로운데로 간다

썩은 것을 붙들고, 그것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과 썩은 것은 버려야 한다는 사람

그 사람들이 언성을 높였단다

썩은 것은 버려야 한다.

새술을 새부대에 담고 싶다는 쪽이 이긴 모양이다.

시인도 그 편에 손을 덜어준다.

 

떠나려하는 동안은 떠나는 순간은 행복하다.

또 다시 뿌리를 내리는 순간 땅과의 갈등은 시작된다.

 

그래서 항상 떠나고 싶다.

 

 

[그림과 함께]

 

돌아오지 않는 강

 

영화제목, ost

 

돌아오지 않는 강이라 불리는 강이 있었지

그 강은 평화로웠지만 때로는 폭풍우가 불기도 했었지

사랑은 그 강을 항해하는 여행자

이리저리 휩쓸리다가 영원히 폭풍의 바다로 사라지고 말지

강물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돌아오지 않을 거야. 돌아오지 않을 거야)

(포효하는 물살이 부서지는 곳)

그이가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나에게로 와줘

나는 그 강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렸지

그러나 영원히 내 가슴에서 그를 지울 수는 없는거야

-221쪽

 

 

 

 
 

 



  

 
 

-돌아오지 않는 강(여러 작품이다)-

 

 

 

길 떠나는 가족

 

누상동에서 마사코에게 보낸 편지

 

이 순간에도 그대 곁에 있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군요.

나의 소주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덕

그 후에 더위를 견뎌내면서 어느 정도 건강해졌소? 태현이와 태성이도 더위에 지치지 않고 잘 놀고 있소? 나의 감격인 그들의 하나하나의 동작을 내 눈으로 복 싶소, 하나하나를  뜨거운 마음으로 표현하고 싶소

(......)

'선은 재빨리' 라는 속담을 잊지 말고 우리 네 가족만이 사랑하고 소중한 시간을 아끼고 지켜나갑시다. 자, 힘껏 힘껏 서로 껴안읍시다. 내 따뜻한 뽀뽀를 받아주시오, 강하고 강하게 껴안아 우리들의 소중한 아름답고 건강한 시간을 지키십시다

(......)

-212쪽

 

 

이중섭은 가난을 이기지 못해 마사코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내기로 한다

마사코는 극구 반대하지만, 가장으로서의 이중섭도 있는 것이다

가장은 가족들을 지키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이중섭은 처자를 살려야 하기때문에 헤어진다

 

일본으로 도착한 가족에게 수많은 편지를 보낸다

이중섭은 너무나 가정적인 사람이다. 그리고 아이같은 감성을 가지고 산 사람이다

처자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으로 그림을 그린다

같이 가고 싶은 것이었다

아주 멋진 낙원으로 네 식구가 떠난다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즐거운 모습으로 그리고 희망에 찬 모습으로

오직

그의 그림에서만 꿈꿀 수 있는 꿈을 꾼다

즐거움과 기쁨, 환희가 있는 그림이지만, 그리움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그림이다

그는 아주 긍정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리고 파수꾼 같은 사람이었는데,,,

 

 

 

 

 

길 떠나는 가족 29.5 x 64.5cm,1954년

-

-길 떠나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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