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는 자전거들
황동규
1
어둠이 다르게 덮여오는군요. 요샌 어둡지 않아도 오늘처럼 어둡습니다. 이젠 더 자라지 않겠어요. 마음먹은 조롱박덩굴이 스스로 마르는 窓엔 이상한 빛이 가득 끼어 있습니다. 그 빛 속에서 동네 집들이 모두 언덕으로 기어오릅니다. 이상한 빛이 되어 기어옵니다. 언덕 위에서는 어깨 높은 一團의 집들이 줄지어 길을 막고 있습니다. 길이 없군요. 없습니다. 한 점씩 불을 켠 채 언덕을 오르는 아이들. 자 문들을 나서 아이들의 길을 걸어보실까요. 아이들은 넘어지지 않습니다. 쓰러집니다. 우리들이 휘청대다 넘어집니다. 모든 것이 너무 가벼워져서 가슴 속에 돌아가는 바퀴들과 공기를 밀어넣는 펌프가 보입니다. 그 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2.
모두 넘어지고도
날이 저물지 않았어요
언 빨리들이 묵묵히
매달려 있었어요
빨래줄에는 놀란 듯 한 두 점
흰 눈이 묻어 있었어요
잊혀지지 않은 것들은
모두 그렇게 조그맣게
묻어 있었어요
<여보세요, 당신은 바다를 보았나요?
<여보세요, 나는 개를 향해 짖었어요.
<여보세요, 바다로 가는 길엔
아직 자전거가 달리고 있습니까?
<여보세요, 요새는
짖는 개도 물어요.
3.
또 비탈! 눈 자갈이 튀고 그가 쓰러지고 나도 쓰러졌다. 자전거는 밭에 들어가 돌고 있었다. 수수 그루터기마다 한 모금씩 한 모금씩 눈이 녹고 있었다. 그를 일으켜세우며 나는 바다 냄새를 맡았다. 그의 흰 옷엔 피가 배어 있었다. 어떤 꽃무늬보다도 눈이 부신, 허리에 크게 번지는 꽃, 또 비탈! 자갈이 튀고 우리는 다시 쓰러졌다. 그가 나를 일으켜주었다. 내 옷에도 피가 배었다. 신기했다. 내 몸에서도 바다 냄새가 났다. 우리 자전거는 나란히 달렸다. 서로 살필 필요없이.
휴가 중에 안동집에 가서 조용히 책들을 구경했다.
내가 산 책, 동생이 산 책, 그리고 ?가 산 책. 부모님이 산 책.
부모님은 당신들의 집이니까, 당연 책들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고,
동생은 미국에 있으니까, 잠시 그 곳에 있고.
?도 지금은 없으니까, 그의 책들은 소속이 바뀐 것이고,
간간히 꽂혀 있는 내 책만이 이상해보여, 몇 권을 챙겨서 서울로 가지고 왔다.
그 중엔 사실 내 책보다는 나의 형제들의 책이 더 많았지만,
그 책들 사이에 끼인 시집이 있다.
문학과 지성 시인선 100번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100번 기념으로 여러 시인의 시들을 묶어놓은 시집이다.
누가 사놓은 것일까?
다섯 명의 식구들 중 어떤 이가 샀겠지.
우리 식구들은 책에 뭔가 남겨놓는데 흔적이 없다. 누굴까?
몇 번을 읽어본다.
그 중에 황동규시인의 [바다로 가는 자전거들]이 자꾸 자꾸 읽고 싶다.
시인은 이 시를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썼을까.
이 시를 타이핑하면서, 시인이 가슴으로 벅차오르는 힘을 누르며, 가지런한 호흡을 하기위해
숨을 고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숨을 고르게 쉬어야 한다.
거친 숨소리를 들키면 안된다.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숨쉬고 말해야 한다.
가다듬고 있다. 그는 끝없이 차오르는 힘을 누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인내야 말로 간절히 원하는 것의 반증이 된다.
그가 얼마나 원하고 있는지.
원하는 만큼 참아내고 있는 것이다.
자갈밭임을 알지만, 자전거로 가야하지만, 같이 간다.
같이 가는 것을 의식해서도 안된다. 그저 저도 가고 나도 가고 가는 것이다.
다치더라도 흥분하지 말고 그냥 가는 것이다.
처음처럼 , 아이처럼
다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길은 자갈길이다.
목표점은 태초의 바다이다.
다시 시작하고 싶은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읽히는 것이 다를 것이다.
분단. 유신. 독재.... 이런 것들... 흘러가는 것이다.
바다가 보이는데, 자전거는 아직 바다로 가고 있고, 자갈밭을 지나고 있다.
내 속에서도 힘이 오른다.
숨을 고르게 쉬어야 한다.
'읽히는대로 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창대] 하늘 외 3 (0) | 2005.07.26 |
---|---|
[백석]모닥불 외 1 (0) | 2005.07.25 |
[김명인] 신발 외 1편 (0) | 2005.07.22 |
[김기택] 얼룩 (0) | 2005.07.13 |
[이형기]착각 (0) | 2005.07.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