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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정병근] 그의 구두

by 발비(發飛) 2005. 6. 30.

 

고흐의 [구두 한 켤레]

 

 

 

 

 

*신발이야기 그 하나

 

-고흐의 신발

 

이 신발그림을 난 두가지로 본다.

아마 (진짜 아마이다) 고흐가 목사가 되기 위해 탄광촌을 갔을 때 광부의 신발이거나,

아니면,

그 후 고흐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밀밭이나 교회근처를 오갔을 때 신었을 신발이거나...

이건 조사하면 나오는 것이다.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이 신발을 고흐의 신발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난 고흐의 신발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한다.

왜?

고흐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렸기때문에 다른 때 그 생각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오늘은 광부의 신발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그렇게 우긴다.

 

고흐는 광부촌에서 광부들과 같이 생활을 한다.

그의 옷과 신발을 나누어주고, 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다.

신발.

그것은 세상과 내가 만나는 연결점이다.

세상이라는 땅이 나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고리인 셈이다.

신발.

그것없이는 세상을 만날 수가 없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신발을 통해서 자신을 세상에 묻히고, 알리고 말한다.

말을 하더라도 땅이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몸을 지나 신발을 통해서 흙에게로 전달된다.

흙은 그것을 저장한다. 그리고 나무에게 전해주고, 풀에게 전해준다.

나무에 앉아있는 새들이 나의 말을 듣고, 풀에 앉은 나비들이 나의 생각을 알게 된다.

신발을 신고 걷는 이웃 사람들에게 신발을 통해서 나의 말이 전해진다.

신발은 고리이고, 땅은 저장장치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땅을 파고 사는 사람이 정직하고 착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땅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아니깐..

땅이 가진 그 많은 사연들을 알고 이해하니까 그들은 세상을 순하게 산다,

매일 듣는 땅의 이야기에 세뇌되었다고나 할까?

 

저 신발의 주인인 광부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땅을 판다. 땅 속에서 묻힌 석탄과 보석을 판다.

그것들은 그 만큼 오래된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오래된 이야기를 파들어가기 위해, 듣기 위해 저 신발은 수없이 디뎌야 했을 것이다.

우리가 신발을 벗고 침대위에 올라간 시간에도

저 신발은 땅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니고 다녔을 것이다.

신발이 알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의 저장창고가 된다.

 

지금도 저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다.

수많은 말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제 저 신발의 주인은 휴식을 취한다.

오늘 신발을 통해서 들은 세상이야기들이 그의 머리속으로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는 고단하다.

세상은 참 고단한 사람들이 많으니깐, 그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그는 참 고단한 것이다.

 

행복한 왕자처럼,,,

그는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신발 한 켤레 밖에는 없는 것이다.

행복한 왕자에게 납으로 만든 심장밖에 없었듯이.

신발은 더 이상 어찌 해 볼 도리 없는 세상의 저금통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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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구두 -

 

 

정병근

 

길가에 버려진 구두 한 짝,

얼마나 싸돌아다녔는지

바깥쪽으로만 닳아서 동글동글하다

구두는 끝내 안으로 굽었다

 

조금만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몰라야 했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무수히 헤어진 그는

단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

너무 오래 입을 다물었다

 

햇빛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잘 걸어지지 않는,

자동차와 아스팔트와 건물과 간판들을 지나

어딘가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걸어온 그의 시간이

한순간의 방심을 비웃으며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갔음이 분명하다

 

풀들이 보풀보풀 일어나 앉은 보도블록 위에

걸어온 길을 한 바가지 토해 놓고

기우뚱거리며 그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 시집 [오래 전에 죽은 적이 있다] p.34

 

 

 

*신발 이야기 그 둘

 

정병근 시인의 [그의 구두]이다.

 

조금 있다가 말하고자 한다...시는 항상 몇 번을 읽어야 한다.

 

 

이럼 안 되는데... 아니 되는가?

그의 시에 빠지려한다. 돌겠다. 이 시는 그의 첫 시집에 나오는 시이다.

뭔 말인가 싶었는데.. 역시 내 맘대로 주절거리기로 한다.

 

나누어서 읽기 돌입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단어모르는 영어문장을 해석하는 기분이다.

뭔 말인지 감은 잡겠는데, 완역이 안되는... 아~ 답답하다. 멋진데... 멋진데...

그래서 나의 해결책! 내 멋대로 필 꽂히는대로 나누어 읽기. 그리고 주절거려보기

난 그의 사람이야기가 좋다.

 

 

길가에 버려진 구두 한 짝,

얼마나 싸돌아다녔는지

바깥쪽으로만 닳아서 동글동글하다

구두는 끝내 안으로 굽었다

 

 

길을 가다가 버려진 구두 한 짝을 본다. 버려진 신발은 마음이 아프다.

신발이 남았다기 보다는 사람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다.

사라져서 이 곳에는 없을 것 같은 느낌이다.

신발에 남은 기운이 이 세상에서 남긴 마지막 흔적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길가에 버려진 신발은 섬찟하다.

그런데, 이 구두는 한 짝!  이상하다. 마음이 저리려고 한다.

거기에다, 반짝이는 구두가 아니라,

 

굽이 동그랗게 닳았다고?

거기에다가 걷는 습관이 밖으로만 닳는다고?

그래서 구두가 굽었다고?

 

처량하다. 어쩌냐? 이 신발의 주인은 어쩌냐?

아프다. 자꾸 아프기만 하다. 그것도 심장의 오른 쪽 옆, 딱 가슴의 정중앙이 아프다.

 

조금만 알기 위해

많은 시간을 몰라야 했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무수히 헤어진 그는

단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

너무 오래 입을 다물었다

 

결과적인 삶.

난 그것에 흥분하고, 화난다.

어느날 문득 내가 서 있는 곳을 본다. 그럼 이 순간이 아닌 나머지 시간들이 보인다.

그럼 딱 그렇다.

지금 이 찰라를 위해서 헉헉거렸던 시간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꼴난 지금의 이 순간 나를 위해서, 그 많은 시간들이 바닥에 깔렸다는 생각이 들면

난 폭발해버리고 싶을만큼 화가 난다. 흥분된다. 억울하다...(솔직히 그렇다)

지금 혼자 .

세상과 똑 떨어져 있는 내가 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나 생각해본다.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 그리고 같이 자란 형제들,

학교를 다니면 만났던 친구들,

그리고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

그 모든 사람들이 지금 혼자가 되기 위해 만났던 사람이라면, 난 화가 난다.

이렇게 억울할 수도 있나?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화를 내지도 말아야 한다.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나를 위해서 나에게 화를 내서는 안된다.

입을 다문다.

아마 시인이 본 신발은 나보다는 시간이 좀 지났나보다.

한마디 말을 하기 위해서란다. 난 지금 생각으로는 영원히 말하지 못할 것 같은데...

아직은 그렇게 생각하는데.

너무 오래동안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할 나다.

나의 주인인 나는 내가 아프다.

 

 

햇빛에 얼굴을 찡그리면서, 잘 걸어지지 않는,

자동차와 아스팔트와 건물과 간판들을 지나

어딘가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걸어온 그의 시간이

한순간의 방심을 비웃으며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갔음이 분명하다

 

 

어느 날 난 그렇게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쓴 적이 있다.

청하를 한 병 더 마신 날,

나도 모르게 경복궁 앞에 앉아 세상을 본 적이 있다.

그 때 난 주량보다 많은 청하를 마셨는데, 그래서 그 곳까지 간 것이 기억이 안나는데,

지금도 그 곳에서 본 세상은 너무나 또렷이 기억이 난다.

 

경복궁의 큰 대문,

앞으로보이는 빌딩들,

새벽을 질주하는 빠른 차들.

너무나 넓어서 몇 차선인지도 모를 도로.

 

그 곳에서 난 걷고 뛰고 ....

그런데 내가 선 곳이 바뀌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도 한 곳에 서 있는 것이다. 난 뛰어가고 싶은데...

큰 도로를 가로지르고 싶고, 높은 빌딩으로 올라가고 싶고,

경복궁의 대문을 통해 궁궐로 들어가고 싶고... 그런데 난 그 곳에만 있는 것이다.

어느 순간,

나와 내가 분리된다.

나는 거기에 두고, 또 하나의 나만 그 모든 것을 한다.

그래, 또 하나의 나가 나를 그 곳에 두고 훯훨 날아 사방을 날아다닌다.

 

쌩쌩 거리는 차들 사이로 도로를 가로질러 날아다니고,

궁궐 문을 두드려 아미산아래 앉아 있기도 하고,

빌딩 옥상에 올라가 세상을 보기도 한다.

 

나와 내가 분리되었다.

멀미가 난다. 두 개의 나를 쫓아다니느라 멀미가 난다. 지금 난 그렇게 분리되어있다.

 

 

풀들이 보풀보풀 일어나 앉은 보도블록 위에

걸어온 길을 한 바가지 토해 놓고

기우뚱거리며 그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런 내가 서 있는데, 가만히 서 있는데,

나를 잃어버린 내가 그 곳에 서있는데, 그 아래 보도블럭 사이로 풀이 자라고 있다.

모진 보도블럭 사이로 낮은 풀하나가 자라고 있다.

모둠 모둠 풀이 자라나 있다. 나는 그 곳에 있는데, 나는 어디로 갔을까?

아직도 훨훨 날아다니고 있을까?

내가 나를 그리워한다. 내 속에 내가 들어앉아, 외롭지 않은 내가 되었으면 좋을텐데.

내 옆에는 모질게 자라는 풀이 있을 뿐이다.

 

난 버려진 신발 한 짝이다.

그리고 나는 저 먼 곳으로 가 버린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닳아진 뒷굽이 햇빛에 남은 습기를 보내고, 지탱할 힘이 없어 점점 굽어들어간다.

가죽 발등은 오그라 들고, 온 몸이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

구두 한 짝이 버려져 있다.

너무 늦게 내가 오면, 난 쪼그라져 있을텐데... 내 몸이 점점 쪼그라들고 있는데....

 

 

이렇게 맘대로 시를 읽어보았다.

정말 맘대로 읽는다.

나누어서 읽는 시....., 난 나누어서 읽은 지금 이 시가 좋다.

나누어서 읽어 나를 보게 한 이 시가 좋다.

첫번째 시집에 나오는 시라는데, 그 시집을 장만해야겠다.

 

아마 그의 시에 빠진 것 같다.

 

난 항상 빠지는 것이 문제인데....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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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문자리님의 사진 [구두]-

 

 

 

 

 

 

 

*신발 이야기 그 셋

 

 

내가 좋아하는 사진작가 신미식님의 사진이다.

그의 신발이라고 한다. 그는 사진작가이자 여행가이다.

그래서 그의 네이버 블로그 이름도 [사진과 여행에 미치다]이다.

그는 이 신발을 10년을 신었다고 한다. 이 신발을 신고 세계를 누비고 다닌 것이다.

내가 꿈꾸는 앙코로왓과 페루의 마츄피추를 올랐을 것이다. 저 신발이 그 곳을 다녀온 신발이다.

나의 평생 소원인 두 곳을 다녀온 신발인 것이다.

저 신발의 잘 난 모습을 보라.

아직도 꽉 다문 입, 신발끈을 풀어놓고 주인은 쉬고 있지만,

신발은 제가 가진 , 주인이 밟아서 자신에게 맡겨놓은 사연들을 곱게는 내 줄 수 없다고,

아니면, 흘러보낼 수 없다고 입을 꽉 다물고 있다.

주인은 그랬다. 이제 새 신발을 샀다고...

그는 이제 주인과 여행을 갈 수가 없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가득하다. 어느 늙은 석학이 자신의 서재에 앉아서 파이프담배를 물고

지나간 세월에 대한 생각에 잠기듯, 그냥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다.

말하고 싶지 않은 석학!

세상과 말을 섞고 싶지 않은 석학의 모습이 저 신발에서 보인다.

 

신발은 주인과 떨어졌을 때만이 신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주인이 어떤 길을 걸었냐에 따라 그의 얼굴이 달라진다.

 

내 신발과 신미식작가의 신발은 정말 다르다.

내가 벗어놓은 하얀색 샌들이..... 백치같다. 백치....

주인에게서 그대로 전이된 신발의 모습이다.

 

저 신발에게 다가가 한번 손을 대어보고 싶어진다.

내 손이 닿아, 세상을 두루 보고 온 저 신발이 내게 한마디 해주었으면 좋겠다.

 

"앙크로왓에 갔더니, 흙이 너무 붉더라, 그런데 풀이 없어~~~"

 

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해서

 

"마추피추의 하늘이야기 해줄까? 그 곳의 하늘은 파란데, 아주 파란데...

이상하게도 페루사람의 검은 얼굴빛과 색깔이 같은거야. 너 이해할 수 있니?"

 

이렇게 이야기를 해나가는 신발.

 

내가 신발에 손을 대면, 이렇게 이야기를 할 것 같다.

난 아주 오랜 시간 신발에 손을 얹고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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