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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히는대로 詩

[배인환]그대가 내 뜻을 몰라줄 때

by 발비(發飛) 2005. 5. 16.

그대가 내 뜻을 몰라줄 때

 

배인환

 

그대가 내 뜻을 몰라줄 때

나는 절망하지 않느다.

절망은 이미 내 체질이기 때문이다

하루인들 절망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러므로 절망은 이제 나의 고질이라

잘 다스리지 않고는 부지할 수가 없다

 

그대가 내 뜻을 거역할 때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절망은 이미 내 병이기 때문에

내가 돌보지 않으면

불치의 암처럼 내 육신을 파괴하고

종국에 가서는 내 영혼마저 병들게 할 것이다

 

그대가 내 뜻을 무시할 때 나는 절망한다

절망하지 않고는 이 세상은 너무 심심해서

살 의욕이 나지 않고 희망이 새벽 모닥불처럼 사그러 들고

절망은 그냥 절망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배인환선생님...

 

 

그 분을 처음 뵈었을 때,

약간은 취기가 올라있으셨다.

나를 보고...'넨닙 크로바'라고 불러주셨다.

아마 잊으셨을 것이다.

행사장 안내를 하고 있었던 내가 언제나처럼 웃고 있었던 모양이다.

결코 적지 않는 나이의 나더러 네잎크로버 라고도 아니고 '넨닙크로바'라고...

옆에 계시던 분들이 너무 좋은 이름이라고 부러워 했었다.

 

그리고 거의 1년만에 오늘 뵈었다.

사무실에 파리바케트의 빵을 들고 나타나셨다.

 

롤케익하나가 아니라, 쉬폰 하나가 아니라.

녹차머핀 1개

초코머핀 1개

치즈머핀 1개

호밀바케트 1개

그리고 호박빵 1개

ㅎㅎㅎ

롤케익 하나가 아니라, 쉬폰케익하나가 아니라 ...

이렇게 많은 종류의 빵을 들고 오셨다.

 

그리고는 말씀하신다.

"빵먹어요"

그리고 또 말씀 하신다.

"부탁이 있는데, 나의 약력을 좀 바꿔줘요."

당신이 퇴직하신 학교의 이름을 이젠 이력에서 빼달라는 말씀과

성균관대문학상을 타신 경력도 빼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별것도 아닌 것들이 이력에 있는 것이 부끄럽다시며....

그리고 영시집을 내신다며,

내시면,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 영시집을 내면 사람들이 욕하지 않겠냐고...

하시는 옆방의 말씀이 내게도 들린다.

 

뭐랄까....

아주 말끔하게 늙으신 선생님을 뵈면서..

한없이 부끄러웠다.

개코로 잘난것도 가진것도 아무것도 없으면서,

자존심하나로 버티고 있는다는 것이 차라리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다.

자존심이라도 지킨다고 했던 시간들이,

그 반대의 느낌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배인환선생님의 시집을 찾았다.

아무거나 필이 꽂히는 것으로 올리자며 찾은 것이.

 

[그대가 내뜻을 몰라줄 때]이다.

 

더욱 부끄럽게 하였다.

 

살아서 살아서 갈아지고 닳아져야 할 생이 많이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더욱 더 갈아지고 닳아지고

내 살은 아직 그을지도 굳지도 않았다는

그래서 작은 긁힘에도 온갖 비명을 지르고 있었음을

 

살아서 살아서

더욱 긁히고 닳아져서

굳은살 두텁게 붙어야 할 내 살이 보였다.

 

'절망'을 데리고 살려면,

'절망'이 더 이상 '절망'이지 않으려면.....아직은 멀었다

 

빵을 점심으로 대신 먹는데, 호밀빵이 좀 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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