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약속이 정해지면, 대화가 된다.
약속되지 않으면, 말들은 허공을 떠돌다가
내 머릿속을 떠돌다가
한 바탕 돌풍만 일으키다가
내 안에서
허공에서도 말이 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약속되지 않는 말은 사라진다.
출판사를 중심으로
지업사, 필름출력소, 인쇄소. 그리고 편집디자이너
이들은 과거에는 한 사무실에 있었을 것이다.
인쇄소는 출판사의 개념이었으므로..
1950년대 그리고 그 이전. 그 근간의 책들을 보면
...인쇄소 라고 적혀있다.
인쇄소가 출판사다.
그 인쇄소 그리고 출판사...(뭐라고 부를까? 그냥 옛날 출판사)
옛날 출판사는 편집, 활자본, 교정, 인쇄, 제본 을 모두 한 공장에서 한다
그들은 그 안에서 대화했다.
서로의 얼굴을 보면서 실물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맞추었다.
원고에서부터 책까지 같은 말을 사용하는 동종의 사람들이 만들어낸 책이다.
지금은
작가는 원고를 메일로 보낸다.
(원고에 오타가 생길 경우 전화로 확인을 해야한다.
특히 문학작품은 의도된 오자가 있으므로...마음대로 고쳤다간 아주 혼이 난다.)
원고는 다운 받아 편집디자이너에게 넘어간다
(대개의 경우 편집디자이너는 기술자라고 생각한다. 글의 흐름을 보기보다는 블럭의 모양과 레이아웃
글자모양 등을 본다.)
편집이 된 파일(이때부터는 파일이야)을 교정본다. 편집에서 잘 못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원고를 보면서
교정한다.
교정이 끝나면, 필름출력소로 간다..
이때 이용하는 것이 웹하드이다. 인터넷과 같다.
웹하드로 올린 자료를 출력소에서 다운을 받아
인쇄할 수 있는 용지에 맞게, 그리고 책의 크기에 맞게 출력을 한다.
때로는 책싸이즈대로 때로는 용지싸이즈대로,,,필름을 만들어온다.
필름이 모면 또 교정을 본다.
웹하드를 오르내리던 파일이 혹시 에러가 날 수 있으므로
교정을 본 뒤 인쇄소로 넘긴다.
인쇄소에 넘기기전에 종이의 쓰일 양을 계산해서 지업사에 용지를 발주한다. 책의 크기에 따라, 책의
용도에 따라 용지의 종류와 양을 계산해서 인쇄소에 전달해주어야 한다.
인쇄소에서는 필름을 받고 용지를 받아, 인쇄를 한다.
다음은 제본소로 넘어간다.
제본에서는 실끈이 있는 책을 만들것인지. 표지는 양장으로 할 것인지 반양장일지.
교지의 종류는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전달받은대로 책을 만든다.
그리고 출판사로 책이 되어온다
가장 쉬운 책만들기의 과정이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이렇게 책만드는 이야기를 하는건가?
말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옛날처럼 한 곳에서 일을 한다면, 그 사람들의 사용하는 말의 범주는 같은 것이다.
특히 직업적인 용어는 같다. 마치 수학부호처럼
한 단어에 수행되어야 할 명령 행동 결과 까지
모두 함축되어진 말... 그것을 공유한다.
하지만, 요즈음은 이곳에서 일한지 한참이 되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하는
작가, 출력소 인쇄소, 제본소, 지업사 직원의 입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얼굴도 본 적이 없다.
그뿐이 아니라, 그들은 각자의 지역에서 쓰는 사투리를 쓰고 있다.
사투리들은 교통하지 않아서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교통하지 않으므로 말을 통일이 되지 않는다.
출판사라는 특성상, 모든 곳의 가운데 지점이다.
외국어를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처럼 어느 곳에서나 잘 알아들을 수 있으면 싶지만,
처음 이곳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을땐 말이 가장 어려운 문제 였다.
똑같은 말을 다 다르게 말하고 있었다.
바로 오늘 아침 그런 일 때문에 한 참을 진땀을 뺐다.
용지 이름
국전지.
국판
46국판
국배판
모두 다른 말이다. 그리고 다른 단위다.
그런데 지업사,출력소,인쇄소,인쇄물을 청탁한 곳
모두 하나씩 나누어서 이 말을 쓰고 있었다.
인쇄물을 청탁한 곳에서 국전지라고 해서
인쇄소에 국전지라고 하면, 국판이라고 우긴다.
지업사에 전화를 해서 국전지를 하라는데 국판이래요..
그럼 같은 말이라고 한다
필름에서는 46국판아니에요? 하면서 짜증을 낸다.
다시 전화 그것도 같은 말이란다.
아예 자리를 폈다.
지업사 전무라는 분에게 10분의 시간을 청했다.
그리고 이러저러해서 제가 못 알아듣겠거든요...설명 좀
웃는다... 그러면서 그런말들은 없단다. 국판 하나밖에 없단다.
이세상 종이의 단위는 딱 두개인데...국판과 46판이란다
국자가 들어가면 모두 국판 46자가 들어가면 모두 46판이란다.
그리고 덤으로 종목 횡목...그것도 배웠다..
10분동안 배웠다.
10분을 배우고 나니 1년을 넘게 나를 괴롭히던 말들의 밀림에서 나왔다
나와 보니 그냥 한줄 오솔길에 그 양 옆으로 숲이 있었을 따름이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이다.
광장은 비워두고 모두 각자의 방에 들어앉아, 자신의 말만 떠들고 있다.
광장이 비는 시간은 점점 많아진다.
처음에는 편지, 전화, 방송, 인터넷, 웹, 홈페이지,.....
이런 것들은 점점 광장을 폐허로 만든다.
광장은 이제 점점 좁아지고 있다.
어느날 우리 모두가 광장이 그리워 아니 필요해서
광장에 나온다 한들
이미 잡풀들로 우거져 더 이상 광장이 되어 있지 않을 것이다.
광장에 나온다 한들
인터넷의 검색기능을 가진 노트북하나쯤은 들고 나와야만
내 곁에 서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떠들고 있는 단어를 검색하고
내가 말하는 단어를 그사람이 검색을 하면서 우리는 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곤 그곳에 왜 나와 있는지 차라리 의문이 생길 것이다.
그럼 다시 짐을 꾸려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겠지.
그리고 전화로 인터넷으로 소리를 높여 말하겠지.
얼굴을 보면서는 차마 얼굴을 붉히지 못했던 것들을
얼굴을 붉히면서 각자의 사투리를 쓰겠지.
그럼 전화를 받는 나는 다시 인터넷 검색에서 말을 해독하여
다음 사람에게 전달을 하겠지..
좀 비약이 심한가...
하지만,
오늘 아침
그동안 섞여 있었던 열 몇가지들의 단위들이
단 두가지 단위의 사투리였다는데 대해서 충격을 받았다...
무지 많은 것들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했던, 전전긍긍했던 것들이
두개 중의 하나만 선택하면 되는 것이었다니., 그것도 너무나 간단한
오른 쪽 아니면 왼쪽을 알아채듯이
굳이 몰라도 밥먹는 시늉한 해보면 그것으로 알아지는 단순한 것을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옛날 책들에게서 나오는 ..인쇄소 출간
다시 그 옛날 책들을 펴보았다.
단순히 ...인쇄소 출간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시끄러운 기계가 돌아가는 중에, 활자를 꿰고 있는 사람
그 옆에서 틀을 마추는 사람...그들 사이에 오고 갔을 눈빛이나 말들이 모두
스며있는 것 같아 냄새를 맡아보았다. 구수하다.
햇빛의 서시님이 그랬다.
"요즈음은 책마다 왜 오자가 그렇게 많은지 짜증나"
"원고가 메일로 오니까 컴 수정은 아무래도 자세히 봐지지가 않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 그 말이 다시 생각났다.
왜 요즈음 책들은 오자가 많은지....활자는 이쁜데, 오자는 많은지.
말이 통하지 않는 지금
그래서 통하지 않는 지금
날씨가 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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