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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인터넷이 안 되던 날

by 발비(發飛) 2024. 9. 7.

인터넷 와이파이가 만 하루동안 장애가 있었다.

처음 몇 시간은 방을 옮긴 탓에 와이파이 거리가 멀어서 그런가 하고, 원격장치를 사야하나 생각했다.

며칠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컴퓨터에서 지시하는대로 셋톱박스와 공유기 재부팅을 수십번 한 것 같다. 

실패.

혹시나 하고 검색을 해 보았더니 아니나다를까 인터넷 공유기 장애라고 했다.

차라리 안심이 되었다. 우리 집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에서 일어난 일이니 어쨌든 고쳐주겠지.

처음에는 아파트 전체 전기 관리의 날이라 몇 시간동안 정전되었던 것이 문제를 일으킨 걸까

이런 저런 생각을 했던 걸 보면,

기계나 컴퓨터 같은 것들을 또래에 비해 잘 다룬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긴장감은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잠들기 전 핸펀을 보는 대신, 오랫만에 전자책 리더기를 꺼내 책을 읽었다.

몇년 사이 눈이 많이 나빠졌는지, 글자크기를 엄청 키워야 했다.

어마어마하게 글씨를 키우고도 돋보기를 썼다. 

이젠 정말 슬픈 것도 아니고, 속상한 것도 아니고, 내 몸에 대해 체념 비슷한 마음이 생겼다.

 

아침에 일어나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보태니컬 아트' 수업을 들으러걌다.

나는 보태니컬 아트가 식물을 그리는 것인 줄 알았는데, 식물을 그리긴 하지만 세밀화였다.

미리 찾아볼 걸,

사진을 보면서 사진보다 더 정교하게 그리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기에 후회했지만, 12월까지는 다녀기로 한다.

혹시 그 사이에 몰랐던 내 취향이 드러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세시간동안 4H에서 4B연필까지 사용해서  공 아니 구를 명암으로 그렸다.

미술시간에 좌절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비가 감질나게 몇 방울씩 떨어지고, 수업시간에 현기증이 몇 번 와서 수업이 끝나고 뭔가 든든한 것을 먹어야겠다 하고 생각한 곳이 평생교육원 근처에 있는 신라국밥이다. 

기력이 없어지면 순대국밥을 먹으면 좀 나아졌더랬다. 

신라국밥 식당 앞에는 혼자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고 써있었다. 다행이다. 

그렇게 써있지 않았더라도 들어갔겠지만 마음이 좀 더 편한 건 사실이었다.

모듬국밥 소, 작은 사이즈를 시켰다. 

그런데도 고기의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밥은 거의 못 먹고, 고기만 모두 건져먹었다. 

아마 삼겹살 1인분보다 많은 양의 고기 같았다. 든든했다. 

 

마침 안동시 알리미에서 학가산 온천이 공사를 마치고 오픈을 했다는 알림이 왔다.

여전히 비가 오는지 마는지 방울방울, 컨디션은 별로니 온천 가기에 좋은 컨디션이었다.

혹시 온천에서 현기증이 나진 않겠지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내 걱정이 과하다 생각하고 학가산 온천에 갔다.

딱 한 번 가 본 곳이라 뭘 고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좋았다. 

사우나실에도 몇 번 들어가고, 냉수탕에도 몇 번 들어가고, 무엇보다 노천탕이 있어서 답답하지 않게 반신욕을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두 시간쯤 있었던 것 같다. 

차에 목욕가방과 갈아입을 속옷을 챙겨둔 것은 칭찬할 만하다. 

 

시내 반대방향으로 3킬로미터를  달려 농수산도매시장에 갔다. 

아침에만 가야한다는 엄마때문에 늘 가지 못했던 농수산도매시장인데, 오후에도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겸 사과도 살 겸, 겸사겸사 간건데, 다섯시가 넘어서인지 정리하는 분위기였지만 사과를 샀다. 

 

엄마에게 오후에도 시장은 열린다고 말해줬다. 

 

저녁을 먹고 감자양 산책을 가면 또 피곤해질 것 같아 사과만 내려놓고 입은 옷 그대로 감자를 데리고 아파트 단지 안에서 간단하게 산책을 하고 집으로 왔다. 

 

핸펀으로 인터넷 장애를 검색하니 복구가 되었다고 했는데, 우리집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

100번으로 전화를 하니 기계 안내음으로 통화량이 많아 장애에 관해서 통화를 할 수 없다는 멘트만, 

공유기에 붙어있는 지역 KT매니저의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를 했다. 

 

공유기의 전원을 뽑았다가 30초 후에 다시 꽂으란다. 

그리고  천천히 다시 세팅을 했다. 연결되었다. 

전원을 켰다 끄는 것은 모든 전기제품의 핵인 것 같다. 

 

일상이 되었다. 달라지는 건 없다. 뭐 대단한 것을 하는 것도 아니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자체가 안심이 되었다. 

 

엄마가 방으로 들어가고, 

서진이네를 3분의 2지점부터 보기 시작했고, 나혼산은 뒤의 3분의 1정도는 보지 못하고 졸려서 방으로 들어왔다. 

역시 예능은 나를 웃게 한다. 

이 웃음코드가 맞는 사람과 같이 키득거리면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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