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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일곱시 반 기상 그리고 네 권의 책

by 발비(發飛) 2024. 9. 3.

일곱시 반에 일어난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일곱시 반에 회의에 참석한 것도 아니고, 출근을 한 것도 아니고, 
여행지에서 산책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일어났을 뿐인데,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여름내내 너무 더워서 일어나기가 싫었다. 
일어나면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며 하루 종일 짜증을 낼 일 외에는 아무 것도 없으니 
정신 건강을 위해서 최대한 늦게 일어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최근에 정치권에서 많이 떠돌았던 이야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딱 그거였다. 
 
아침에 눈을 뜨니, 창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들어왔다.
움직일만한 날씨가 되었다. 9월이다.
 
일곱시 반에 일어난 기념으로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블로그를 열었더니, 14년 전 사르트르의 <파리떼>라는 희곡을 읽고 쓴 글에 이 책을 찾고 있다는 분이 문의글을 남겨두었다.

나는 <파리떼>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희곡에 빠져있었던 그때도,
내가 그 책을 가지고 있었는지, 어떻게 읽었는지도,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이것도 전생인가.

책장이 있는 방으로 가서 혹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14년 동안 나는 두 번이나 대대적으로 책을 정리했기에 없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일단 찾아보기는 했다.
역시 없었다. 필요한 분에게 그 책이 갔어야 했는데, 늘 필요해서 찾으면 없애버린 책이다. 
잠시 내가 남긴 것들과 보낸 것들의 기준, 그때는 뭐고 지금은 뭔가 싶다. 

일단 <파리떼>는 찾지 못했고,
 
나는 <파리떼>를 찾느라 오랜만에 책장을 꼼꼼히 스캔하다 몇 권의 책을 빼어 몇 장씩 읽었다. 
 
1. <작은아씨들> 영문판, 영화 <작은아씨들>의 스토리를 기본으로 정리한 포켓북이다. 첫장부터 모르는 단어가 엄청 많아 한 줄 읽기도 힘들었지만 읽어지기는 하기에 두 페이지 정도를 낑낑거리며 소리내어 읽었다.
원래 그러려고 산 것인데, 이제 두 페이지 읽은 거다. 아침마다 단어 찾아가며 두 페이지씩 읽으려고 빼들었다.
 
2. <불안의 책> 민음사
이것도 띄엄띄엄 몇 장 읽었다. 페르난도 페소아는 배수아 작가를 검색하다가 <불안의 서>라는 번역서 덕분으로 알게 된 작가이고 리스본에서 페소아의 흔적들을 보며 <불안의 서>가 페소아가 쓴 글이라는 것이 그제야 각인되었었다. 한때 가장 열광했던 다인격체 시인이다. 그의 <불안의 서>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던 것이고, 정작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민음사의 <불안의 책>이다. 배수아 작가의 번역 <불안의 서>는 읽었으니 <불안의 책>으로 산 것이었는데 오늘 아침 몇 장 다시 읽어보니 역시나 <불안의 서>가 더 좋다. 매끈한 문장의 <불안의 책>보다는 머뭇거리는 듯한 배수아 작가의 특유의 외국말스런 문장이 내겐 더 맞나보다. 도서관에서 다시 한 번 <불안의 서>를 읽어보고, 괜찮으면 <불안의 서>를 사야겠다. 
 
3. <거대한 뿌리> 김수영, 오늘의 시인총서, 74년 초판 81년 발행
<거대한 뿌리>는 활판인쇄에다, 시인이 쓴 한자가 그대로 적힌 시집이다. 바로 옆에 꽂힌 개정판 <거대한 뿌리>는 한글로 바꿀 수 없는 한자만 몇 개가 있을 뿐인데 완전히 다른 느낌이다. 더듬더듬 한자를 읽으며 그 뜻을 새기며 천천히 시를 읽었다. 단어의 무게감, 시인의 생각이 달리 느껴졌다. 한글로 바꾼 시인의 시와는 달리 목 구멍에 먹먹하게 맺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표4에 이런 말이 있었다.
 
'... 시인의 직관은 논객의 논리를 뛰어넘는 어떤 것을 그 작품 속에 표출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의 시인총서>를 발간하기로 결정한 것은 시인들의 그 날카로운 직관을 통해 한국사회의 정신적 상처와 기쁨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오늘의 시인총서를 내면서] 중에서, 오늘의 시인총서 편집 동인
 
4.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 창비, 2021
지금은 헤르만 헤세를 좋아한다. 30대, 40대에는 헤르만 헤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뭔가 불편했다.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 잘 모르겠지만 뭔가 좋은 딴 세상에서 홀로 잘 사는 듯한 느낌때문인가. 그건 그땐 발라드보다는 락이 좋았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발라드가 좋고, 헤르만 헤세가 좋다. 특히 헤세의 식물이야기가 나에겐 가이드 같다. 식물들과 자연을 대하는 마음과 프레임을 헤르만 헤세에게서 배운다. 
 
부러진 나뭇가지의 딸각거림
 
쪼개져서 부러진 큰 나뭇가지가 
여러해 동안이나 매달려 있어,
바람이 불면 메마른 소리로 노래를 딸각거린다.
잎도 없고 껍질도 없어,
텅 비어 활력도 없이 너무 긴 삶에,
너무 긴 죽음에 지쳤어.
나뭇가지의 노래 단단하고 끈질기게 울린다.
고집스럽게 울리고, 은밀히 두렵게 울리네,
한 여름만 더,
한 겨울만 더.
 
책장이 있는 방의 침대에 걸터앉아 이 네 권을 책을 읽다가 책장 제자리에 꽂지 않고 내 방으로 가지고 와 책상 위에 쌓아두었다. 내일도 일곱시 반에 일어나면 오늘처럼 몇 페이지 골라 읽어야지 하면서 말이다. 
오늘 일곱시 반은 바람도 선선하고, 마음도 선선하고, 머리도 선선하다. 
내가 무엇에 지배 당하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하다. 인정하기 싫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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