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멈췄다.
비는 내내 많이도 왔고, 그 사이 두 번 정도 텃밭을 다녀왔다.
고추 몇 개를 따왔을 뿐, 다들 무사한지 안부만 보고 왔었다.
오늘 아침 해가 뜰 기미가 보였고, 비가 내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텃밭에 다녀왔다.
하늘에서는 비가 멈췄는데, 텃밭에는 비가 계속 오고 있는 듯 했다.
텃밭 바로 옆이 산인데,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빗물이 밭고랑 사이로 제법 흐르고 있었다.
마치 시냇물처럼.
산 경계에 심어둔 옥수수는 기우뚱하게 몸을 눕힌 것이 몇 개나 되었다.
옥수수대를 똑바로 세워보려하였으나, 산에서 내려온 물이 고여서인지 땅이 물컹하여 다시 기우뚱한다.
옥수수대들이 서로에게 의지하도록 살짝 얹어두었는데 결과는 모르겠다.
옥수수대 뒤로 한달전쯤 옮겨심은 블루베리도 걱정이긴 마찬가지다.
통기성이 좋은 곳에 심어야 한다는데 산 비탈 아래쪽이라 산이라고 생각했지,
산과 밭의 고랑이 되어 될지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내 생각이라는 것이 어떤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농사의 경험이 없으므로 생각이 생각이 아닌 거지 하며 자조를 할 뿐이다.
토마토가 잘 익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가 그친 뒤, 아랫쪽에 달린 빨갛게 익어가던 토마토들이 몇 개나 벌어졌다.
위쪽 토마토들은 아랫쪽 토마토들의 고전 때문인지 뭔가 힘을 받지 못하는 느낌?
과감한 결단, 이미 터진 토마토들이 달린 아랫쪽 가지들을 잘라내고, 위쪽을 살려보리라.
이 또한 잘 된 판단인지 잘못된 판단인지 알 길이 없다.
잠깐 갈등하다 그래, 올해는 첫해잖아. 그러니까 80% 실패 확률이라고 예상한거니 그 정도만 되어도 되지. 하고
실패를 감안한 선택을 했다. 잘랐다.
터진 토마토 가지에 달린 미처 익지 않은 굵지만 초록인 토마토들을 모두 땄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덜 익은 초록토마토 요리'라고 검색했더니 장아찌가 나왔다.
장아지 한 병을 담아 뒷베란다에 두었다. 6개월 뒤, 그러니까 겨울에 먹을 예정이다.
봄에 심은 첫 상추는 순차적으로 뽑아내고 있었는데,
이 비 끝에 만신창이가 된 상추를 마처 뽑았다.
멀쩡한 속들은 잘라 바구니에 담고, 짓무른 겉대와 뿌리는 풀무더기 위에 우선 던져두었다.
해가 나서 썩기 전에 말라야 내게는 가장 좋은데, 비가 계속 올 것 같다.
거름 가방을 장만해야 하는 생각도 했다.
고추와 가지는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고, 그 사이에 잘 자라 꽤 많은 고추와 가지를 수확했다.
이것들도 집에 오자마자 앞집 담을 넘어 상추틀밥으로 넘어온 호박넝쿨 자른 것도 함께 찜솥에 넣어 푹 쪘다.
그나마, 말이 새어나왔다.
이런 정리들을 하고 텃밭 쉼터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새 두 세마리가 내가 있는 줄도 모르고, 날아와 장난을 치다 앞집 나무로 넘어간다.
그 사이에 나비도 날고, 해도 뜨고, 이름을 알 수 없는 검은 색 잠자리도 눈 앞에서 왔다갔다 하고,
쉼터 마루 밑에서 개구리가 풀쩍 뛰어나와 나를 놀래게도 하고,
산쪽 텃밭으로 4번인데, 1번, 2번, 3번 베테랑들이 농사를 짓는 텃밭들의 작물들이 무성함을 넘어 정글처럼 왕성했다.
나는 1번, 2번, 3번 텃밭을 보면서 내년에는 이 베태랑 선배들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나 혼자의 어떤 궁리도 하지 않고, 선배의 경험대로 그대로 따라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는 쉬운 일이 내게는 어렵다.
경험도 없고, 알지도 못하면서 하는 궁리.
그렇더라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 보고 싶은 욕망.
쉼터에 앉아 잠깐 읽을거라고 가져온 <아주 세속적인 지혜> 라는 책을 읽으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새들이 왔다갔다하며 노래하고, 햇빛에 반짝이며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보며 텃밭이 핵심이 아니잖아 하며
나는 그런 나라도 지키자고 마지막으로 생각하며 주섬주섬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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