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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을을 위한 이틀

by 발비(發飛) 2024. 9. 12.

텃밭주인에게서 배추와 무를 심어야 할 때라는 문자를 받았다. 

유튜브에 배추와 무에 대해 찾아보니, 배추는 모종, 무는 씨. 그리고 배추벌레 퇴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시장 철물점에 가서 배추 벌레 안 들어오게 하려면 뭘 해줘야 하냐고 여쭤보니,

땅이 얼마만하냐 몇 포기냐 물으셨다.

땅은 손바닥만하다고 하며, 좁은 가게의 반정도라고 가늠해드리고,

배추는 아직 안 샀는데..., 이 정도 크기에 두 고랑 정도 생각하고 있다고 가게의 가로폭을 몇 동강 내며 손을 휘저었다.

철물점의 친절한 사장님은 진지하게 고민하시더니,

 

보통 배추밭에 치는 하얀 방충망은 커서 안되고, 자를 수도 없고 하니 모기창이 좋겠다.

그리고 모기장은 폭이 좁이니 한 고랑씩 작은 비닐하우스 같은 모양으로 치는 것이 좋겠다.

10마 정도면 될거다.

 

이 정도면 배추는 몇 포기 정도 살까요? 했더니,

그걸 왜 나한테 묻느냐는 듯 잠시 눈빛 발사하시더니 가게 가로폭을 기준으로 손을 휘젓고는 50포기는 심을 수 있을거라고했다. 

"네 그렇게 해주세요."

 

사장님은 모기장 열마를 챙기시고는 비닐하우스뼈대가 될 굵은 철사를 가지고 오셔서 잘라오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저희 텃밭 주인께 이런 거 자르는 도구가 많으니 밭에 가서 크기에 맞춰 자르겠다고 그냥 달라고 했다. 

 

배추 모종 가게에 가서 모종 50개를 주문했다. 50개는 안되고, 모종 반판이 56개라며 반판 가지고 가라고 하기에 그러라고 하고, 틀밭에 심을 상추 모종 여덟 개와 무 씨앗와 엄마가 꼭 심으라는 월동초 씨앗을 함께 샀다. 

 

텃밭 주인은 대구서 열시 반에 도착한다기에 나는 그 전에 가서 밭을 어느 정도 정리해두어야 한다. 

밭에 가니 아홉시도 되지 않았다. 

상추가 있던 틀밥에는 흙을 더 채워야 했고, 밭 가운데서 자라고 있던 깻잎은 걷어내고, 

고랑 중간 중간에 심어놓은 파와 부추는 한 곳에 옮겨심어야 한다. 

줄기콩과 오이, 호박 덩굴, 토마토도 정리해야 하고..., 호박은 몇 개 먹지도 않는데 밭 전체를 덮고 있어 그냥 걷기로 했다. 

이러다보니, 수확이 없었던 줄기콩, 너무 많았던 오이와 깻잎, 밭에 비해 너무 거대하게 자라는 호박, 부족했던 토마토..., 저절로 내년 계획이 세워졌다.

내년 주력은 고추, 토마토 그리고 파, 오이와 가지는 한 두개만,  쌈채소는 틀밭

 

우선 밭 가운데 있는 깻잎에서 깻잎 반찬을 만들 깻잎을 따고, 깻잎 반찬에 넣을 고추를 따고,

오이물김치 담을 오이를 따고, 오이김치에 넣을 파와 고추를 따고,

방울토마토 몇 개와 가지도 땄다. 이건 호박과 같이 오븐에 소금과 후추 올리브유만 넣고 야채구이를 할거다. 

그리고 엄마가 좋아하는 호박순과 호박잎도 손질해가며 따서 한 가방 챙겨두었다. 

 

깻잎부터 뽑고..., 가뭄때문에 땅이 너무 단단하고, 뿌리가 깊어서 안 뽑힌다. 그래도 뽑았다.

줄기콩 넝쿨을 모두 걷어내고, 오이는 하나만 혹시 몰라 남겨두고 모두 걷고, 토마토는 옆밭께서 아직 좀 더 따먹고 마지막에 걷으라는 조언을 듣기로 했다. 2번 옆밭께서 잠시 물 주러 오셨더랬다. 

쪽파는 당근이 심겨진 나무 틀밭에, 부추는 큰 화분에 옮겨심었다. 

그 사이에 텃밭 주인은 꽈배기를 사들고 왔고, 그걸 먹으면서 오늘 밭계획을 쭉 이야기했더니,

"브리핑 좋네요." 

밭 주인은 내 밭 옆 경사진 땅에 예초작업을 할거라고 했다. 

그 경사진 땅에는 원래 두릅나무가 가득했었는데, 내가 틈만 나면 그 가지들을 잘랐다. 나는 들어갈 수도 없이 가시나무 옆에 들어차있는게 마음 안 든다며 내년 봄에 시장에서 두릅을 사다 줄테니 그걸 마음대로 자를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했더랬다. 비록 벌에 쏘이긴 했지만, 제법 정리를 한 것이 맘에 들어 적극적으로 거길 어째 보기로 의기투합했었다. 

 

텃밭 주인은 들깨와 파를 정리한 두 고랑에 살충제와 거름을 넣고, 삽질을 해서 두둑을 다시 만들고는 물호스를 댕겨다 밭일을 하기 좋게 준비해주고 본인은 예초작업을 시작했다. 유튜브에서 알려준대로 빈땅에 물을 주고 또 줬다. 그리고 살충제와 거름을 한 번 뿌렸다. 비닐을 덮고, 구멍을 뚫어 배추 모종을 심고, 굵은 철사를 휘어 땅에 꽂고 그 위 모기장을 덮어주었다. 그야말로 럭셔리한 배추밭이 완성되었다. 

 

경사진 땅에 예초작업을 다 한 주인은 여기가 이렇게 넓은 줄 몰랐다며, 둘이 나란히 앉아보니 밭이 모두 보이고, 앞 산의 솔밭도 너무 잘 보이고, 무엇보다 그늘이 너무 좋았다. 꽃을 심으면 진짜 이쁘겠네요. 하길래, 그 곁에 평상을 만들면..., 말 도  끝나기 전에 너무 좋다며 일단 파레트와 박스로 만들어보자고, 밭일 하다말고 간이 평상을 만들었다. 주인은 손재주가 좋은 사람인데다가 재료와 도구도 많은 사람이다. 

 

이제 오늘은 그만하자고 간이로 만든 평상에 앉아 정식으로 만들 평상을 구상하고, 꽃을 심을 생각을 하고..., 9월이라지만 34도의 더위에 땀범벅이 되어있었는데 쿵짝이 맞아 즐거웠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근처 막걸리집으로 가서 고추튀김과 숯불돼지고기에 막걸리를 마셨다. 더할 수 없는 맛이었다. 

 

그리고 또...,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밭으로 가서, 옮겨심을 쪽파 옆에 쪽파 씨모종을 심고, 주인에게서 얻은 시금치 씨앗은 틀밭 상추 곁에 뿌리고, 곧 정리해야 할 토마토 아래로 무 씨앗을 심고, 주인밭에도 무씨앗 몇 개를 더 심고,

몽마르뜨 언덕이라고 부르기로 한 경사진  땅 뒤쪽 경계 너머에 마구 자라고 있는 잡초와 두릅나무를 깨끗하게 정리해 멋진 솔밭이 뒷배경이 되었다. 같이 간 감자는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내려며 신났고, 오늘도 아침부터 땀범벅이 된 밭주인과 나는 평상에 앉아 아아를 마시며, 가을을 시작했다.   

 

함께 해장점심으로 아구탕을 먹고 난 집으로 텃밭주인은 일터가 있는 대구로 갔다. 오후에 비가 억수같이 내렸다. 

밭에 있는 생명들은 이 비로 하나 빠짐없이 모두 살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엄청 좋았다. 진짜 농부처럼.

고되었지만, 오랜만에 성취감이 엄청난 이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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