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미나리를 줄기를 잘라 물꽂이를 해 두었다.
뿌리가 내렸다.
희한하게 물꽂이가 가능한 식물들을 보면 늘 호기심으로 물꽂이를 하게 된다. 결국 흙에 땅에 심을 거면서 말이다.
어릴 때는 온갖 종류의 아이비를 만날 때마다 신기해서 쥬스병에 유리컵에 박카스병에 기분에 따라 병을 바꿔가며 물꽂이를 했다. 아이비는 늘 뿌리를 내려주었다. 뿌리가 내린 것을 확인한 날을 뭔가 세상에 좋은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 후에도 뭔가 가능해보이면 물에 꽂았다.
이름들이 기억나지 않은 수많은 식물들의 가지 하나, 잎 하나를 전지한다는 명목으로 톡 끊었다.
미나리에 뿌리가 내리자 곧 새 잎들이 나기 시작했다.
새 잎의 싱싱함이라거나 신선한 식재료에 대한 목마름이라거나 그런 이유로 싱크대 앞에 갈 때마다 새 잎이 나며 그걸 톡톡 끊어 먹는다. 향긋하다.
뿌리가 제법 내려 흙에다 옮겨 심어야 하는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 근데 주저주저한다.
일이 커지는 것이 꺼려진다. 그 마음을 알아채자 떠오르는 말,
식물실험
화장품 같은 데 보면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자랑인 듯, 마케팅에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 그건 잔인하지, 하면 안돼, 하는데,
나는 식물실험을 한다. 그건 돼?
미나리를 톡톡 끊어먹다가 식물실험이라는 말에 갇혀버렸다.
뿌리가 나지 않았을 때는 괜찮았다. 채식편향주의자는 아니고 채식편향중의자인데 뿌리에서... 자꾸 멈추게 된다.
뿌리가 났다는 것은 당당히 한 생명으로서의 자리매김을 한 것이고,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적어도 생명으로 꽤 오랜 시간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물꽂이를 해 놓은 미나리에서 뿌리가 내렸다.
꽤 많이, 흙에 옮겨심기만 하면 당당히 번식을 시작할 것이다.
.....
나는 서울에 물꽂이 된 채 수십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꽂이된 미나리처럼 가만히 산다.
흙에 옮겨심어지지 않은 채, 적당한 주기로 누군가 물을 갈아주기는 하는지 간혹 잎도 피우고, 어느 날은 꽃이 피기도 했다. 그때마다 온 힘을 다했다.
지난 해, 지지난 해, 탈서울, 귀촌을 목표로 꽤 애을 썼지만 결국 아직도 서울인데,
간절히 서울을 떠나고 싶었던 것은 서울이 내게 흙, 땅이 아니었던거지.
물꽂이된 미나리를 보며, 흙에 옮겨심기를 주저하는 나를 보며,
서울에 사는 나를 보며, 그런 나를 나와 같은 마음으로 주저하는 누군가 나를 보며,
11층 베란다로 오늘도 햇살이 집안 구석구석을 훑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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