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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세상 믿지 못할 것이 내 마음

by 발비(發飛) 2018. 4. 26.




  • 8시 25분 현관을 나와서
  • 8시 31분 9호선급행전철을 타고
  • 8시 45분 2호선을 갈아타고
  • 8시 50분 콤포즈에서 커피를 사고
  • 8시 58분 출근지문을 찍고
  • 8시 59분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 9시 탕비실에 가 텀블러를 씻고 따뜻한 물을 받아 자리에 앉는다 


이 35분간은 지난 가을 이사를 한 후 평일이라면 출장 혹은 휴가가 아니라면 하루도 다르지 않는 그야말로 일상이다. 


몸이 이렇게 정확하게 움직이는 사이, 내가 하는 일은 조금씩 다르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대개 듣지만, 최근 듣는 날은 3,40퍼센트 정도이다. 

전자책 TTS듣기 기능으로 소설을 듣거나, 

요즘 꽂힌 스웨덴의 가수 'CLUB 8'의 'PACIFIC'을 듣거나 (그제, 어제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OST, STAND BY YOUR MAN을 들었다)

'PINTEREST'에 들어가 우드카빙 이미지들을 본다. 


김어준의 뉴스를 들으면서, 대체 국회의원 선거는 언제 오나, 남북정상회담은 대체 어떤 결과를 낳을까, 생각한다. 

소설을 전자책으로 들으면서, 사람들은 참 가지가지다 생각한다. 

CLUB 8의 PACIFIC을 들으면서는 성가신 가사없이 간간히 들리는 파도소리에 바다를 그리워한다. 

'PINTEREST'에서 보는 우드카빙 이미지는 지난 한 달동안 토요일마다 배운 우드카빙으로 저 경지가 가능할까 선망한다. 


나는 입력된 기계처럼 움직이면서 어느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한정적인 생각을 한다. 


꿈틀, 오늘 커피를 사기 위해 콤포즈에 들어가기 두어걸음 전이었다. 



처음엔, 쓰고 싶다. 

다음엔, 하고 싶다. 


나는 십몇년 전 어느 시간처럼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싶다. 

수많은 영화를 보면서 스토리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이미지만 찾으며 시를 쓰던 문청,

도무지 타인에게는 관심이 없던 내가 옆사람들을 뚫어지게 보면서 관찰하며 소설의 인물을 만들던 문청, 

그때의 문청은 글로 살아가는 것, 인정받는 것에 실패하였다. 

시를 쓰던 나는 책을 만들면 카피를 썼고, 

소설을 쓰던 나는 작가들에게 편집가이드를 쓴다. 

지난 문청의 시간이 굶지 않도록, 먹고 살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간혹 아무일도 아닌 것처럼 시와소설은 나를 먹고 살게 해 준 기술일뿐, 

기술이므로 마음은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만족했다. 


어제, 한 작가의 소설 트리트먼트를 끈기있게 읽어냈다. 

독자는 완성된 소설을 보지만, 편집자는 완성되지 않은 소설을 읽는다. 

때로는 그것이 더 재미있기도 하지만, 불불복, 한 편의 재미있는 소설을 만나기 위해, 스무편의 재미없는 소설을 읽어야만 한다. 

그제는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어제는 재미없는 소설이었다. 



지난 해를 마지막으로 학교 수업을 하지 않기로 했기에, 

지난 3월 4월은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처음으로 일과 관련되지 않은 기술을 배웠다.  

수영과 우드카빙(수영은 결국 한달 반만에 강사가 개인교습을 권유하는 것으로 마무리하였고, 우드카빙은 계속할 것 같다)

생소한 경험이다. 저녁시간과 주말이 내게 주어졌다. 



겨우 두 달인데, 나는,


쓰고 싶다. 

하고 싶다. 


의 목전에 있다. 두어걸음 전에 있다. 


재미있는 소설과 재미없는 소설 사이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내버려둔다. 

세상 믿지 못할 것이 내 마음이다. 그것만은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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