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오늘도 이상했다.
여기는 나의 오랜 방.
때로는 하루에 몇 번씩 오기도 하고,
때로는 몇 주 동안 비우기도 하지만,
내가 사는 집보다도 오래 산 나의 집이다.
오래된 집에 시간이 만들어 준 사연이 있듯
이 방엔 나는 이미 잊어버린 어떤 시간의 내가 여전히 기록되어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의 댓글도 있고,
작년에 세상을 떠난 오랜 친구의 댓글도 있고,
기억나지 않는 내 험한 여행의 기록들도 있다.
아픈 상처들도 있다.
곧 잊혀질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요즘 다시 일기를 쓰듯 마음이 멈칫할 때마다 이곳에 와서 멈칫 하는 마음을 쓴다.
그런데 여길 오면 늘 눈이 가는 곳이 있다.
(일단 사과를 드립니다. 이렇게 언급을 하는 것은 그냥입니다. 마음대로 생각나는대로 하는 말이니 유념치 마십시요)
방문객.
다녀간 블로그.
이름때문이다.
나를 방문하는 이들의 이름이 나는 이상하다.
처음 이 블로그를 시작할 때, 그리고 한동안,
그런데 언젠가부터 블로거의 이름이 상업적이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
모두들 사는 거니까.
나는 그들을 기억하거나 나의 마음을 나누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름 때문에, 실체가 아닌 무엇 같다는 마음이다.
내가 복잡한 종로3가 상점들 사이에 어울리지 않게 서 있는 느낌이다.
이상하다.
이름은 부모님이 만들어 주시지만 아이디는 자신이 만든다.
그래서 아이디를 보면, 그 사람을 만나지 않더라도 상상하게 된다.
오래전에는 오직 이곳에서 댓글로만 서로 말을 주고 받은 적도 많다.
사적인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리고,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그런데,
부를 이름이, 기억할 이름이 없는 느낌이다.
나는 내 삶이 공식적인 일을 하는 것 외에 고립되었다고 늘 생각하는데,
이곳에서도 건조한 일과 시멘트벽을 마주하는 느낌이다.
뭐라고 말할거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친구신청에 수락이 늦은 이유는 딱 그것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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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상하다.
이 방과 안 어울린다.
이렇게 말해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그냥 드는 생각을 제 방에서 혼자 주절거리는 것이니 이해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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