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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일상] 주말

by 발비(發飛) 2017. 12. 10.

새 아파트로 이사를 결정한 것은 

여름 휴가를 포기하고, 계약을 했었으니, 여름이었다. 

가을동안 이사할 집을 리모델링을 하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이사짐을 보관 서비스에 맡기고 잠시 원룸에서 살기도 했다. 

그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막 시작될 즈음 이사를 했고, 

이사한 다음 주에 아버지가 편찮으시기 시작했다. 

(밖으로 말을 낸 적은 없지만, 이사를 잘 못 한 건가 하는 생각이 몇 번 나기도 했다.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사한 다음주에 예약을 해 두었던 에어컨 설치도 못하고, 

자잘한 정리는 당연히 하지 못한 채, 

겨울이 깊어져, 지난 밤에는 눈이 내린 한 겨울이 되엇다. 


토요일에는 이사 온 아파트 근처에 있는 백화점을 갔었다. 

외투와 모직바지를 샀고,

털 달린 단화를 샀고,

원목식탁매트와 작은 화분도 샀고,

수선해야 했던 가방끈을 수선했고,

엄마가 밤에 침대 옆에 두고 따뜻한 물을 마실 수 있는 아주 작은 보온병도 샀고,

냉동 체리와 블루벨리, 요거트.. 그리고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먹을 것들을 샀다. 


한동안 굶은 사람처럼 좀 과한 소비를 했다. (게다가 인터넷 쇼핑으로 코트와 기모청바지도 샀다)

매생이를 주문해서 엄마한테 보냈는데, 엄마는 안 먹겠다고 하셔서 주문취소를 했다. 

나는 매생이국을 좋아하는데, 엄마는 그리도 싫은 건지, 

엄마는 내 식성이 아버지를 닮았다고 한다. 동생은 엄마를 닮았고.  


그리고, 

저녁에는 미리 예약을 해 두었던 온수매트의 as기사가 와서 온수매트를 잘 고쳐주고 갔다.

그분이 온수 매트 안에 있던 물을 받은 양동이를 쏟는 바람에 수건 몇 장을 써서 엄청 많은 물을 닦았고, 저녁 내내 세탁기 도는 소리가 집안에서 났다.


일요일인 오늘은 

한참 전에 배달된 이케아 6단 서랍을 조립해서 늘 가까이 두고 써야 하는 문구들을 비롯한 자잘한 것들을 정리했고, 

전에 문구를 넣어쓰던 서랍장은 옷서랍장으로 복귀시켰다.


다용도실에 대충 구겨넣어둔 보관식품들과 밀폐용기, 컴퓨터 관련 물건 등을 모두 꺼내서 정리했다. 

그 와중에 청소기를 두 번이나 돌려야 했다. 


베란다 수납장을 옷장으로 쓰고 있는데, 습기가 차서 걱정이다.

전에 살던 아파트는 베란다 수납장을 봉만 달아서 쓸 수 있도록 만든거라 콘크리트 벽이 바로 보여서 어떤 문제가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데, 

지금의 아파트는 수납장을 짜 넣은 거라 수납장과 콘크리트 벽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안 보여서 더 걱정이 된다. 

겨울에 찬 습기로 그대로 남아있으면, 여름이 되면 곰팡이가 생길 수도 있는데... 종일 머릿속에 찜찜함이 계속되었다. 


홈플러스 배달 서비스로 주문한 스파게티면과 소스로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 겸 저녁을 먹었는데, 맛이 없었다. 

몇 번 먹고 남은 스파게티를 냉동실에 넣으면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던 어느 아침이 생각한다.  

함께 걸었던 독일 대학생이 전날 저녁에 만든 거라며, 같이 먹으면 어떠냐고 친절하게 내밀었던 식어서 불은 스파게티.

식은 스파게티는 식은 팥죽처럼 또 다른 맛을 내는구나 생각했던 그 아침.

격의 없이 내밀던 선의의 식은 스파게티를 먹은 뒤, 나는 가끔 일부러 양을 많이 해서, 식은 스파게티를 먹기도 한다.


내일 퇴근하고 와서 스파게티를 데워 먹으면, 그날의 선의였던 스파게티처럼 맛날 것이다. 

월요일 퇴근은 대부분 지치고, 배고프니까.


열시가 넘어 설거지를 하고,

주말에 쓴 나무수저와 도마에 약간의 올리브유를 묻혀 닦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주말의 번잡함을 최대한 정리해두면,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좀 간단하게 살 수 있겠지 생각한다. 


일상이 되겠지. 요즘은 자주 '일상'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나는 지난 이틀동안 모든 것이 그리운 사람처럼 쇼핑을 하고 정리를 했다. 

그러자, 집 안이 정지된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것이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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