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호] 연인심청 다산책방 2015. 01
여시아문(如是我聞)
이 말은 그 뜻이 아니지만, 책을 읽고나면 나는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먼저 말하고 싶어진다.
이렇게 거창한 말을 붙여도 되나? 하지만 부처님께서 들으셨을, 아마 비슷한 아우성이 들리는 것 같다. 아우성 소리에 지옥이 따로 없다.
지난 주말 내내 [연인심청]을 읽었다. 빠르게 쓴 것인지 빠르게 읽혔다.
비오는 일요일 오후에는 전자책 오디오 서비스로 들으며 창경궁과 창덕궁을 걸었다.
마침 왕비가 된 심청이 나오는 부분이라 비가 적당히 내리는 고요한 궁궐과 잘 어울렸다.
[연인심청]을 읽는 내내 원전에서는 없던 질문이 생겼다.
심청은 효녀였을까? 좋은 연인이었을까? 또 임금에게 좋은 아내였을까?
심봉사는 한때 글을 읽었던 선비라고 상상할수도 없을만큼 싸구려 욕망 덩어리 같은데 맞을까?
윤상은 심청의 정인(情人)인데, 정말 서로에게 중요한 정인이었을까?
연로한 임금의 사랑은 사랑일까? 그 임금 곁에 있는 심청은 무슨 마음일까?
원전과 다른 작가의 설정이 재미있다.
심봉사와 심청이 전생에 연인이었다.
심청에게 윤상이라는 정인이 있었다.
심청은 전생과 이생, 애매하긴 하지만 동시에 기억을 가지고 있다.
거의 다 읽어갈 무렵부터 작가는 아마 등장인물 중 특별히 애정하는 인물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건 등장하는 인물 중 누구에게도 특별히 감정이입이 되거나 몰입이 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개인취향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는 톤을 아예 바꿔야 될 것 같지만,
오페라처럼 인물들이 놓인 나름의 절박한 이야기들을 배우의 연기 혹은 음악으로 극대화시킨다면 인물성이 극대화되어 멋질 것 같았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것은 이야기를 읽을 때는 절대적 몰입의 단계까지 못했는데,
그건 아마 민감한 내면 갈등이라거나, 결정적인 사건이 깊게 파고 들어가지 않아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서,
이야기는 이야기일뿐이라고 의도적으로 헛헛하고자 하였는데,
최근에 가장 열심히 읽은 거라 그런지 자꾸 머릿속을 맴돌고,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자 내 마음때문인지,
아니면 거의 한달이 다 되어가는 지독한 불면과 과민때문인지 이야기가 날카롭게 되돌아오고 있다.
뭔가를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잠시 딴 소리-
어제는 오랜만에 오래도록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 어느 시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의 말로는 지난 번에 나와의 전화통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아무 것도 아니고, 사소한 잡담을 왜 써요? 나는 안 써요. 시를 버렸어요."
내가 그랬단다. 사실 기억도 나지 않는다.
"제가 그런 발칙한 말을 했어요?"
그랬단다. 그래서 시인은 오랫동안 깊이 생각했단다.
자신은 시를 쓰는 것을 천형이라고 생각하고,
마치 신내림처럼 거부하지 못하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삼류시인의 길을 가고 있었는데,
어떻게 시를 사소한 것이라고 용감하게 말하고, 안 쓰고 버틸 수 있느냐고 말했다.
마음 속으로 나는 시에 목숨을 건 적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다.
그 또한 기억하지 못할, 장담하지 못할 또 하나의 말이 될 지도 모르니까.
쓰는 이들, 나는 모든 쓰는 이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끼고, 그들의 손을 꽉 잡고 싶고, 어깨를 토닥이고 싶고, 심지어 안아주고 싶은 것을 참지못한다.
그래서 오해의 여지가 많다.
-잠시 딴 소리 끝-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꿈인듯 현실인듯 아우성처럼 들려 지난밤도 꼬박 새고 말았다.
어제처럼 오늘도 하루를 버티기 위해 점심시간에 밥 대신 링거를 맞아야 하나.
아니면 지독한 과민증상일 수 있다는 의사의 추천대로 신경정신과 처방을 받아야하나.
역시 고전의 인물은 기가 세다.
심청이 마음에 확 들어오지 않는데 그 이야기 안으로 자꾸 끌려들어간다.
1.
주위는 한없이 고요하나, 고요하고 투명한 공기사이로 들려오는 비명소리들.
그제도 어제도 이별을 코 앞에 두고 더는 함께 살 수 없다는 부부의 말에 아무런 충고도 위로도 해 주지 못하였다.
평생 심봉사의 인욕(人慾), 그 뒤치다꺼리하다 비단치마를 뒤집어쓰고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이에게 우리가 몰랐던 남자가 있었다한들,
마음에 품은 남자 또한 자기를 가없이 사랑해 목숨을 바쳐 생을 다했다한들,
심봉사와의 인연이 전생에 있었던 깊은 연인의 업이었다 한들,
너그럽고 사랑 가득한 늙은 임금의 마음을 얻어 심봉사를 다시 만났다한들,
자애로운 왕비가 되어 백성들이 기뻤다한들,
애랑이에 뺑덕어미에 투전에 인간망나니였던 심봉사가 개가천선을 했다한들,
이들의 아우성이 멈추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려다 이 또한 내가 지르는 아우성이 되어 버렸고,
그들의 아우성이 내게 왔던 고요하고 투명한 공기 사이로 난, 그 길을 따라 곧장 그들에게 달려갔다.
오늘밤 내가 보낸 아우성이 누군가의 온 신경을 긁고 그 또한 나처럼 불면의 밤을 보내고 말 것이다.
2.
꿈은 꾸었다. 꿈속에서 눈이 파란 사공과 눈이 마주쳤다.
마침 황해에 해가 떨어져 사방이 붉어 그가 마땅히 흘렸을 피에 대한 기억에 없다.
잠과 꿈에서 깨어 그 사공을 생각하고 온 신경을 집중해 지옥처럼 시끄러운 그의 이야기를 찾아 듣는다.
그의 이야기일수도 내 상상일수도 꿈이 만들어낸 무엇일수도 있다.
청이가 탄 커다란 중국배에 노를 저었던 외팔이 뱃사공이 있었다.
어 느해 숫처녀가 아닌 처녀를 용왕에게 바쳤다가 크게 화가 난 용왕은 배를 반쯤은 부셔 버릴만한 파도로 불경한 제물에 대한 답을 했다.
그 덕에 상선 아래에서 구령에 맞춰 노를 젓던 사공,
아침으로 먹은 보리밥 한 알 떨어져 붙은 그의 왼팔이 파도를 이기지 못한 노에 걸려 찢기듯 잘려나가 인당수에 빠졌다.
누군가는 두부 잘리듯 했다고 한다.
마음 좋은 선장은 외팔이된 사공을 버리지 않고 자리를 바꿔 오른쪽 노를 젓게 했다.
그리고 청이가 선녀처럼 잠든 연꽃을 건지던 날,
갑판위에서 사람들이 술렁거리다 배를 멈추라는 명령에 잠시 쉬게 된 외팔이 사공은 제 앞 길 생각이었는지,
제 고향인 신장 생각이었는지,
그 곳에서 하루 세번 기도를 올렸던 신에 대한 생각이었는지,
넋을 빼놓고 있다가,
연꽃을 건져 돌아오는 작은 배의 뱃사공이 한껏 들떠, 제 기꺼움을 이기지 못해 넋을 빼고 있는 외팔이에게 자기의 노를 장난으로 가로 걸었고,
헛웃음이 날만큼 허망하게 외팔이 사공의 남은 팔마저 찢겨 인당수에 떨어진다.
그는 손이 없는 팔로 하늘을 향해,
자신의 이마에,
자신의 입술에,
자기의 남은 팔을 찢어버린 사공의 망연한 두 눈에,
그때 쯤 파란 눈의 뱃사공은 손이 없어 반절 뿐인 두 팔을 뻗으며 꿈결의 나에게도,
잊지 않고 눈 맞춰 기도하고 선 모습은 털 뽑힌 장닭 같았다.
기도를 끝낸 파란 눈의 뱃사공은 비틀거리긴 했지만 순순히 자기 자리를 떠나 커다란 배의 더 깊은 방문을 열었다.
얼핏 문사이로 보이는 팔이 없는 사공이 가득하다.
청이가 아무리 착하다 한들 몰랐을 눈 파란 사공의 아우성.
나는 [연인 심청] 어디에도 없는 사공이 장닭과 같은 모습으로 나와 마주친 꿈을 붙잡았다.
잘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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