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 9호선에서 2호선으로 환승을 하다가, 법정스님의 [인도기행]을 떠올렸다.
[인도기행]에 보면 법정스님께서 인도에서 네팔로 국경을 넘어가는 부분이 있다.
법정스님은 지옥에서 천국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었다고 하신 것 같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반대로 네팔에서 인도로 다시 넘어갈 때 숨을 몰아쉬었다고 법정스님이 쓰신 것 같다.
암튼, 바로 그 부분이 생각났다.
오늘 아침 9호선은 좀 더 복잡했던 탓도 있고, 그 와중에 전철이 몇 번 흔들리는 바람에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당산역에서 갈아탄 2호선도 출근길에 정말 만만치 않았지만, 9호선에 비하면 천국이었다.
그래서 법정스님의 [인도기행]이 떠올랐던거다.
나의 연상작용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어 혼자 웃고 만다.
웃겼다. 인도와 9호선!
딱 법정스님처럼 나도 인도와 네팔을 국경을 넘어 가 본 적이 있다.
네팔은 인도와는 달리 길이 제대로 나있었다.
집에 지붕이 있다.
사람들이 매달리지 않는다.
여유가 있었다.
물론 십몇 년전의 일이라 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인도 고락푸르의 이미그레이션을 지나 만났던 네팔은 그랬다.
오늘 아침 9호선과 2호선의 환승이 그랬다.
말이 난 김에, 9호선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풍경 몇 가지.
9호선으로 출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아는 공식 같은 것, 두 같은 방향으로 서야 한다는 것,
간혹, 9호선을 모르는 사람이 타서 전철 문이나 좌석 옆으로 몸을 기대고 서있었다가는 정말 민망한 상황이 벌어진다.
간혹 역방향으로 선 사람도 있다.
백발백중 코를 맞대어야 하는데, 몸의 방향을 아무리 틀려고 해도, 서로 끼어있어서 절대 방향이 틀어지지 않는다.
키가 차이가 난다면 정말 다행인데, 키가 비슷했다가는 정말 꼼짝없이 코와 코를 맞대게 된다.
코보다는 가슴이 낫다.
게임마니아들이 반드시 있다.
정말 그 와중에 핸펀을 머리 위로 올리고, 앞 혹은 옆 사람의 어깨에 핸펀을 걸치고 게임을 즐긴다.
사람과 사람이 온 몸이 밀착이 되어있어도 9호선에서는 정상적인 상황이다. 그냥 평정심을 가지고 게임을 즐긴다.
웹툰도 즐긴다. 끼이는 것이 일상이 된 사람의 풍경이다.
머리 긴 여자가 앞에 서는 것도 괴로움 중에 하나다.
얼마나 얼굴을 간지르는지, 손이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앞 사람의 머리카락이 얼굴을 계속해서 간지르는데...
혹 앞 사람이 머리를 흔들기라도 하면, 그대로 얼굴에 스윽하고 긴 물결이 스친다.
전철에서는 방송을 한다.
큰 가방을 든 사람은 앞으로 들라고, 그러나 많은 남자들이 백팩을 매고 있다. 부드러운 백팩이면 다행인데, 간혹 딱딱하고, 뚱뚱한 백팩이면...
이게 또... 발은 공간이 남으니, 뒤에서 밀면 미는대로 앞으로 나가는데, 백팩을 맨 사람이 앞에 있으면 몸이 그야 말로 20-30도 정도 기울어진 채 서 있게 된다. 이또한 자세를 절대 바꿀 수 없다.
...
움직이려면 공간이 필요한데, 공간이 없으니, 움직일 수 없고, 움직일 수 없으니, 견딜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지옥인 거지.
9호선은 지옥이다.
인도는 9호선에 비하면 양반인데, 법정스님은 다행히 9호선을 타지 않으셨다.
출근길 9호선에서 인도로 넘어가셨다면, 이곳이 천국이다 하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1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던데... 기다릴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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