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면 돼
한강
나의 꿈은 단순하지
너와 함께 햇빛을 받으며
걷는거지 이 거리를
따사롭게 햇빛을 받으며
햇빛! 너의 손 잡고 걸어가지
햇빛! 너의 눈보며 웃음 짓는 거지
눈이 부실 때면
눈 감는거지
나의 꿈은 평화롭지
너와 함께 햇빛을 받으며
쉬는 거지 한가롭게
따사롭게 햇빛을 받으며
햇빛! 우리에게는 그거면 충분해
햇빛! 시린 뼈까지 뎁혀 줄 온기가
햇빛! 우리에게는 그거면 충분해
한나절 따스한 햇빛이면 돼
첫번째 사진은 오늘 아침 출근 길 편의점에서 커피를 사다 유리문 너머 보이는 햇빛이 이뻐서,
두번째 사진은 지난 주 북경 출장을 갔을 때 우연히 만난 어느 정자에 앉아 너무 강렬한 햇빛을 피하다,
어젯밤 술을 꽤 마셨다.
회사일이었다.
많은 작가와 출판사 관계자들... 일로 만나서 술을 마시는 자리였으나, 마치 일이 아닌 듯 꽤 즐거웠다.
시간이, 만남이 반복되면 이렇게 관계가 뭉개진다.
아마 멤버의 대부분이 작가거나, 대표거나, 프리랜서거나 그랬으므로
정시에 출근을 해야 하는 사람은 나 혼자일 듯 하다.
멍한 머리였는데, 햇빛을 의식하는 순간, 행복한 느낌이네, 했다.
햇빛만으로 행복한 느낌이었다.
신기하다 싶었다.
오래전 열심히 들었던 소설가 한강의 <햇빛이면 돼>를 유튜브에서 찾아들었다.
그래, 햇빛이면 된다.
어제 술 자리에서 독신인 어느 작가가 그랬다.
가끔 노년에 대한 공포를 느낀다고,
무서움이 아니라 공포라고 했다.
나는 동의했다. 무서움이 아니라 공포라는 것에.
공포, 라는 말을 서로 확인했을 뿐
노년의 어떤 점인지, 공포와 무서움의 차이는 무엇인지, 뭐 그런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다.
그저 그 말만 하고 다른 이야기를 했다.
오늘 아침 햇빛을 보면서 생각한다. 햇빛이면 돼.
무지막지에 가까운 숙취에도 햇빛 한 자락이 주는 행복감.
그때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때쯤이면, 북경 출장때 가디건으로 얼굴을 감았던 것처럼,
얼굴에 생길 주근깨, 기미, 이런 거 생각하지 않고,
햇빛 아래 길게 누워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한강이 말한 '너'는 비록 곁에 없을 수 있겠지만,
구멍 숭숭 뚫린 뼈 사이를 드나드는 바람이, 따뜻한 햇빛의 온기로 데워지긴 하겠지.
그거면 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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