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먹지 않고, 끊임없이 말을 계속하고 있다.
먹을 것을 권하면 커다란 숟가락에 밥을 한가득 뜨긴 했지만,
여자의 손끝에 매달린 숟가락은 마치 허공에 달린 그네처럼 출렁인다.
광화문이야기를 했다가, 대통령이야기를 했다가, 대통령 후보이야기를 했다가, 뜬금없이 탁자에 놓인 반찬이야기도 했다가,
여자의 이야기, 아니 말은 끝나지 않았다.
순간순간 흥분하기까지 했다. 누군가가 본다면 여자는 화가 났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여자는 당연히 밥을 먹지 않은 것이고, 권하지도 않았다.
나무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치 커다란 유리벽이라도 있듯 여자는 내가 먹는 음식의 냄새를 맡지 못했고, 나는 여자의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에 아랑곳없이 밥도 먹고, 국도 먹고, 마른 반찬도 먹었다.
차례차례 아주 천천히 먹으면서 가끔 여자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여자는 지난 번에 보았을 때보다 볼과 눈이 더욱 움푹 패였다.
아마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아무 말도 못했을런지도 모른다.
여자에게 말과 침묵의 경계는 얼마나 두껍고 높을까?
......
내 앞에 놓였던 밥은 이미 다 먹었고, 빈 입에 고추장에 조린 멸치조림을 한마리씩 세듯이 먹고 있을 때였다.
말과 침묵의 경계, 바로 그 생각에 숨이 꼬였고 멸치가 목에 걸리고 말았다.
일부러 더 캑캑거리며 목에 걸린 멸치가 목에서 떨어지기를 바랬지만, 쉽지 않았다.
여자도 놀란듯 말을 멈추고, 내 빈 밥그릇 대신 아직도 수북한 자신의 밥그릇을 내 앞으로 밀었다.
크게 한 숟갈을 떠서 한번에 꿀꺽 삼키라고 한다.
여자의 엄마는 목에 가시가 걸리면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는 것이다.
나는 여자의 말을 따라 크게 한 숟갈을 떠서 한번에 꿀꺽 삼켰다. 그녀의 말대로 멸치가 밥에 밀려내려갔다.
멸치가 걸린 자리였던지 목구멍 어딘가가 따끔거리며 아팠다.
한바탕 소동에 여자는 말을 멈추고 내 얼굴을 쳐다보면서, 이제까지 누구에게서도 본 적이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냥, 그녀가 내 앞으로 밀어준 밥을 또 먹기 시작했다.
크게 한 숟갈을 뜨면서 그래서? 라는 마음으로 여자를 보았다.
여자가 말을 다시 시작하기를 나는 바랐다.
나는 여자의 광화문이야기도, 대통령이야기도, 대통령 후보이야기도, 뜬금없이 탁자에 놓인 반찬이야기도 궁금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한마디의 말을 못해 말을 잃어버린,
첩첩산중에 사는 할머니처럼,
톤 높은 쇼핑호스트의 홈쇼핑과 종편뉴스로 종일 시간을 보내던 여자가
서슴치 않고, 염치없이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두 그릇의 밥을 모두 먹었다.
우리는 모든 생각과 행동은 의식이 또렷한 인사불성 상태에서 이루어진다. -페르난도 페소아, [불안의 서] 텍스트243 중에서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9호선에서 인도를 생각했다. (0) | 2017.05.18 |
---|---|
문재인과 심상정 (0) | 2017.05.08 |
적절한 시점 (0) | 2016.12.27 |
듣지 못한 대답 (0) | 2016.12.23 |
지인(知人)에 관한 질문 (0) | 2016.12.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