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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적절한 시점

by 발비(發飛) 2016. 12. 27.




전철에서 요행히 앉았다. 

깔끔한 듯 느껴지는 여자(얼굴을 쳐다보지는 않아서 확실치 않다)는 나와 같은 역에서 탔는데, 내 앞에 섰다. 

다음 역에서 한 남자가 탔고, 여자 옆에 서서 인사를 나눴다. 

서로 존댓말을 한다. 차분히 대화를 하였지만, 아침 전철 안은 조용했기에 그 둘의 이야기는 너무 잘 들렸다. 


여자는 어젯밤 아홉시부터 잤다고 했고,

남자는 너무 한 거 아니냐고 하며, 빵은 먹었냐고 했다.

여자는 빵을 먹었다고 했고, 

남자는 빵을 저녁으로 먹었냐고 했고,

여자는 어제는 피곤해서 단 것이 당겨서 저녁을 먹기 전에 먹었다고 했고, 

남자는 주말 이틀동안 열시간씩 잤다고 했고, 

여자는 왜 그랬냐고 물었고, 

남자는 아팠다고 했고,

여자는.... 또 뭐랬더라.


둘은 과장된 웃음도 과장된 의성어 의태어도 없는 시냇물같은 대화를 나눴고, 

도레미파... 중 '파' 정도의 음높이를 유지한 대화였다. 잘 들렸다. 


나는 두 남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평론가가 보낸 준 백석에 관한 글을 읽고 있었다. 

백석의 의도적 '침묵'에 관한 글이었다. 


미역오리처럼 말라서 굴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통영' 중에서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ㅡ'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중에서


조선은 동양의 하나는 무엇을 잃어버렸다. 잃어서는 아니 될 것을 잃고도 통탄할 줄 몰라 한다. 무엇인가 묵(默)하는 정신을 잃은 것이다. 잃고도 모르는 것이다.

인도의 푸른 빛을 바라보며 나는 이것이 무엇이고 어디서 오는가를 본다. 인도의 푸른 빛은 항하만년의 흐름에 젖는 생명의 발광이다. 이 생명의 적멸에 가까운 숭엄한 침묵이다. 나는 몽고의 무게가 무엇인가를 안다. 일망무제의 몽고 초원이다. 몽고인의 심중에 놓인 일망무제의 초원이다. 이따금 꿩이 울어 깨어지는 그 초원의 적막이다. 이것이 몽고의 무게다. 조선인은 인도의 빛도 몽고의 무게도 다 잃어버렸다. 본래부터 없었는지도 모른다. 슬픈 일이다.

ㅡ'조선인과 요설' 중에서


세상의 모든 언짢은 일들이 다 이 조그만 혀끝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가장 악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ㅡ'이솝과 그의 우화' 중에서


위의 예를 들면서 백석 시인이 침묵에 천착했음의 근거 들었고, 거기에 붙여 최근 서강대 도서관에서 발견된 백석 시인이 번역한 [테스]([고요한 돈강, 시선집 등 백석 번역이 몇 권 더 있었음을 처음 알았다)을 비롯한 몇 편의 번역은 침묵의 방편이었으며, 월북한 뒤에도 백석시인은 우리가 아는 것과 달리 스스로 평양을 떠나 삼수갑산의 현지 지도원이 되어 침묵의 공간으로 들어갔을 것이라 추측했다. 

평론가는 그의 침묵이 그의 시를, 그를 귀하게 만든 근거라고 글을 마쳤다.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어쩔 수 없이 두 남녀의 사이로 나가야 했는데, 

둘은 서로에게 존댓말을 하고, 둘이 따로 밥 한 번 먹지 않은 듯 최대한 차분히 대화를 나눴던 것과는 달리 

둘은 기어이 바짝 붙어서 어정쩡한 자세로 비켜주었다. 


아마 앞으로 백석을 읽을 때면 얼굴도 보지 못한 두 남녀를 생각할 것만 같다. 

분명 침묵과 고독은 다른 것이다. 그리고 전철에서 만난 두 남녀의 이야기도 다른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것들이 한 통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절대적 침묵의 공간인 사막, 그 사막에서 떠올린 얼굴, 두 남녀와 다르지 않았을 얼굴과 얽힌 이야기들,

이야기들이 사막 곳곳에 날리지만, 아무리 멀리 날아가더라도 결국 내 시야에 있는 얼굴과 이야기들은 결국 제 주인에게는 가지 못한다.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내 눈 앞 사막에 흩어져 날린다. 

이것이 침묵이고, 이것이 고독이 아닐까. 

나와 관계한 모든 것들, 그때의 우리가 공유할 수 없는, 내게만 남은 우리의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것. 너무 많이 쌓인다는 것.


뭔가 두서 없지만, 적절한 시점에 본 남녀와 적절한 시점에 읽은 백석시인 이야기와 적절한 시점에 읽은 '사막'이다. 

2017, 내년 한 해 동안 의식하고픈 장면이며, 이야기이며, 시다. 





사막


오르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으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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