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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토마스 만] 토니어 크뢰거

by 발비(發飛) 2015. 2. 9.

 

길을 잘 못 든 시민, 시민인 사람들을 한 없이 부러워하지만 시민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경계에 놓인 사람.

어디에도 낄 수 없는 사람, 토니어 크뢰거. 1903년 토마스 만은 쓴 소설이다.

2015년 서울, 같은 생각과 행동을 하고 있다. 되지 못하면서 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 자, 그가 느끼는 고통의 무게는 일상적일 만큼 오래되고 자연스럽다.

너무나 비효율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 이번을 마지막으로 이젠 쓰지 않을거야. 하고 결심했다.

그런데, 토마스 만의 [토니어 크뢰거]를 읽으면서 삶에 무의미를 인식하며 삶의 의미가 되는, 갈등 밖에 없는 삶. 분열된 세계를 가진 자의 삶

세상에 속하지 못하는 삶이며, 세상 밖의 삶에 대한 대책, 누군가는 속하기려하기보다는 관찰자는 어떤 거냐고, 세상을 바라보는 세상 바깥의 시선. 다음에는 이것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쓰고 있는 것도 마무리하지 못했는데 말이지. 대체 왜......

 

[토니오 크뢰거 본문 중에서]

 

나는 두 세계의 사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세계에도 안주할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약간 견디기가 어렵지요. 당신들 예술가들은 저를 시민이라 부르고, 또 시민들은 나를 체포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이 둘 중 어느 쪽이 더 나의 마음에 쓰라린 모욕감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잉에보르크 홀름, 너를 아내로 삼고, 한스 한텐, 너와 같은 아들을 두고 싶구나! 인식해야 하고 창작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저주로부터 벗어나 평범한 행복 속에 살고 사랑하고 찬미하고 싶구나!

 

예술적인 것은 단지 우리들의 타락한, 우리들의 기예적인 신경조직의 불안감과 초조감과 냉철한 황홀경일 따름입니다. 인간적인 것을 연기해 내고 그것과 더불어 놀기 위해서든, 그리고 인간적인 것을 효과적으로 멋있게 표현할 수 있으려면, 또는 그렇게 하려는 시도라도 하고 싶으면, 우리 예술가들 자신은 그 무엇인가 인간 외적인 것, 비인간적인 것이 되지 않으면 안되면, 우리 자신은 인간적인 것과 이상하게도 동떨어지고 무관한 관계에 빠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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