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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허지웅] 버티는 삶에 관하여-세상에, 이건 끔찍한 공멸의 징조다.

by 발비(發飛) 2014. 10. 16.

 

 

세상에, 이건 끔찍한 공멸의 징조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들 한다.

그는 언제나 예상했던대로다. 누군가는 의외성을 좋아한다지만,

나는 언제나 예상했던 대로가 좋다.  

그래서 언제나 말한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류의 인간은 캐릭터가 변하지 않은 인간이다.

다시 말해 언제나 예상 가능한 사람이 나는 제일 좋다.

나는 사람에 대해 이리저리 가늠하는 능력을 가지지 못해, 의외의 상황이 생기면  대처 또한 느린 편이라,

그 상황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꼬리를 내리고 숨어버리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딱 그 마음으로 그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역시! 글투는 말투와 같아! 그것 또한 평화롭다. 낯선 이가 아니라 보던 이라 좋다.

 

본론..으로.. 들어가면...

 

모두가 20대를 증오한다. 의식 없고 예의없고, 소명감없고 사회정치 환경에 대한 관심도 없으며 할 줄 아는 건 영어밖에 없고 오로지 성공의 가치에 모든 걸 헌신하는 듯 보이는 '요즘 것'드레 대한 책망이 하늘을 덮었다. 심지어 20대마저 스스로를 증오한다.

 

며칠 전 학교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이 책의 한 부분을 읽어주었다. <20대가 사라졌다>를.

정체성도 없고, 키워드도 없고, 공동체의식도 없고, 시대정신도 없고, 세대의식도 없고, 대체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스스로도 자신에 대해 관심이 없는 20대에 대한 강력한 채찍을 휘둘러 놓은 글이다.

읽으면서 학생들의 반응이 어떨지 눈치가 보였다.

대체로 고요하다. 얼굴이 빨개지는 학생도 없어 보였다.

느낌이 어떠냐니까... 그저 눈을 피한다.

분노가 생기지 않느냐니까.. 몇 명은 고개를 가고 젖고, 대부분은 가만히 있었다.

뭐라고 댓구할 말은 없냐니까... 웃는다.

나는 화가 나야 한다고 말했다. 작은 일에도 화가 나야 한다고...

누군가 자신을 비난하면, 일단은 우리가 왜! 하고 함께 힘을 합쳐 덤비고 싸워서 이기든가, 지든가 하는 거라고 말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잘하지 않냐고... 어버이연합... 이런거... 그래서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원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잖아. 그랬다.

학생들이 또 웃는다. 필을 받아 말을 이었다.

앞으로 그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30.40년을 더 살거다. 그리고 계속 그런 대통령을 뽑을거다. 그리고 각자 집으로 들어가 티비조선을 보다가 선거때만 되면 광장으로 모여들어 정선아리랑을 부를거다. 그럼 너희들은 50살 60살이 될 때까지 그 할아버지 할머니가 뽑은 대통령이 움직이는 나라에서 로봇처럼 일해야 할 거다. 그랬다. 돈은 너희들이 벌지만 너희들이 원하는 세상이 아니라 그들의 세상에서... 각자의 '나'는 ...

학생들의 눈이 잠시 깊어졌다.

그래서 세대의식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를 뒤져,

1990년대 초까지는 캠퍼스소식, 젊은이의 광장이 일간지 한면에 항상 이렇게 당당히 실렸다며, 기성세대가 20대를 의식하고 두려워한다는 증거라며,,, 괜히 실실 웃으면서 작은 일에도 분노하는 연습을 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농담처럼 말했더니, 학생들도 따라 웃었다.

 

이런 이야길 했던 것은 수업시간에 학생들과 함께 학생들에 관한 책을 만드려고 하기 때문이다.

책은 기록이니까... 2014년 대학생은 성적이 기록된 학적부 외에는 어떤 기록도 없을 테니까.

 

진심으로 그랬다.

 

학생들과 만드는 책이 허지웅 작가가 쓴 <20대가 사라졌다>에 대한 대답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말했다.

타깃독자를 오직 허지웅, 한 사람으로 정하자니까, 학생들이 사뭇 진지해졌다.

허지웅은, 그가 한 말처럼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모두들 존재자체를 의식하지 않는 

20대들에게 어깨를 툭치며, 한 판 어때? 뭐 있기는 해? 했으니, 

그것이 긍정적인 대답이든, 부정적인 대답이든, 똑 부러지는 논리정연한 말이든, 더듬거리는 말이 되었든, 낙서가 되었든,

아무튼 뭐라도 말하자. 거울을 마주 하겠지.

 

수업이 끝나고 나오려는데, 앞에 앉았던 학생이 내게 말을 건다.

 

"제가 분노하지 않았다는 것은요. 허지웅은 적어도 20대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만약 아프니까 청춘이다 처럼 말했다면 분노했을 거예요."

 

나는 허지웅에 대한 분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20대를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를 느꼈으면 한다는 것이라고,

'분노'라는 감정을 잊어버렸으니,

분노를 찾고, 부딪히면서 정체성이 생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해 본 말이라고 자꾸 자꾸 가벼이 말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학생이,

 

 "선생님께서 정선아리랑 이야기할 때는 분노가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 분노가 저는 결국 가만히 있을 것이라는 데 대한 분노였어요. 공익을 할 때 대선 다음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동사무소에서 나눠주는 아이스크림을 드시면서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니까 이런 것도 주고 좋다고 드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똑같은 감정이었어요."

 

나는 뭐라고 말을 이어갈까.. 잠시 그 학생을 보았다. 반드시 뭐라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웃을 수 밖에...

엘리베이터를 타고도 나를 보고 있는 그 학생에게,

"가만히 있을거라는 나,를 이겨보는 것, 그런 습관... 나를 이기는 습관... 책도 있는데...." 라고 말했다.

그 순간 생각했다. 나도 늙었다. 왜 질문이 아니고 답이지.......................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더니, 엄청 친근하게 웃어주었다.

그 웃음이 좋았다. 그를 위해 속으로 주문을 걸었다. 니가 원하는대로 살기를...

헤어질 때, 다음 주부터 치를 중간고사 잘 보라고 인사를 했다.

 

허지웅 작가가 쓴 <20대가 사라졌다>는 2007년에 쓴 글인데,

그 사이에 안철수 박경철의 <청춘콘서트> 가 엄청 호황이었지만, 지금까지 우리의 20대는 같은 단락 안에서 미궁에 빠졌다.

 

 

마지막 단락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20대는 가장 행복한 세대여야 마땅하다. 제도적으로 그 시작을 보장 받아야 한다. 그게 건강하고 상식적인 사회다. 그런데 당연히 축복 받아야 할 세대가 한국에선 가장 힘없고, 갈 곳도 없으며 오로지 경쟁만을 강요당한다. 20대는 그런 세상을 바꾸려 하기보다 그저 자학하기 바쁘다. 세상에, 이건 끔찍한 공멸의 징조다. 20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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