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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보는대로 책 & 그림

[김윤식] 한국 근대문학의 이해

by 발비(發飛) 2014. 12. 14.

 

 

문학동네 팟캐스트에서 윤대녕의 소설 [탱자]를 소개하는 말미에 김윤식의 [한국근대문학의 이해] 서문을 읽어주었다.

아무생각없이 딴 일을 하면서 띄엄띄엄 듣다가 평소에 관심이 많은 '무릎'이라는 단어가 툭툭 나와 되돌려가며 들었다.

몇 번을 돌려 들었는데, 읽어주는 것이라 그런지 생각이 머뭇거릴 뿐 뭐지 뭔 이야기지 하는 의문으로 서서히 약이 올랐다.

다섯번 여섯번을 돌려듣다가, 나를 사로잡는 이 책의 서문을 직접 읽어보면 이해될 것 같았다.  

헌책방을 뒤져서 이 책을 샀고, 서문을 옮겨 보았다.

이 짧고 완고한 서문을 읽으며, 한자를 변환하며, 땀땀이 쓰기에 대한 생각도 했고, 젊음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도 했고,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게으름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문학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고, 출발과 회귀에 대한 생각도 했다.  

그러나, 팟캐스트에서 들었을 때 뭐지, 뭔 이야기지 했던 것과 같이 옮겨 타이핑을 할 때도, 소리내서 읽어보아도 또렷하지 않은 걸 보면,

나는 당시의 학생보다도 말귀를 더 못 알아듣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틈만 나면 읽어보려고 핸펀에도 저장해 두었다. 1973년에 쓴 글을 말이다.

 

 

出發의 意味와 回歸의 意味

 

-책머리에 부쳐

 

K君, 君과 나와의 이러한 記號的 地平內에서의 만남이 바람직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最小限의 가능성이라고 생각해 주길 바란다. 文字로서의 이러한 記號란 너의 것도 아니지만 더구나 나의 것은 아니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다. 이 信念 때문에 이 자리를 빌어 두 가지 이야기를 해 두기로 하였다.

첫째 번 이야기는 出發에 관한 것이다. 出發이란 무릎이다. 무릎의 메타포가 出發인 것이다. K君, 君은 傷處없는 무릎을 보았는가. 우리가 未知를 向할 때, 우리가 보다 멀리 손을 뻗치려 할 때, 그리고 우리가 일어서려 할 때, 피를 흘려야 하는 곳은 바로 이 무릎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미 뜀박질을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山과 大地와 江의 흐름과 칸트의 성공(Kants Sternenhimmel)은 사정없이 우리를 막아선다. 그것은 가정이고, 네 이웃이고 親舊이며 社會이다. 너를 에워싸는 이 감옥에서 너는 脫出해 나와야 한다. 이미 날 때부터 너는 그 脫出의 욕망의 씨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늘의 구름 때문에 네가 넋을 잃고 시무룩해 있을 때 아마도 어머니는 너의 건강을 근심할 것이고 심지어 강아지도 네 표정을 살필 것이다. 이 수없는 거미줄 같은 人緣의 끈에서 君은 질식해 본 적이 없는가. 이 감옥에서 脫出하기 위해 이번엔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너의 무릎을 사용해야 한다. 모든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번의 脫出은 보다 아픈 것이다. 그것은 未知를 向한 너의 理性的 本能이다. 내가 목마른 너에게 물을 떠 준다면 너는 그 물을 마셔서는 안 된다. 그것은 네 갈증의 욕망을 無化시키기 때문이다. 너의 몸을 눕힐 자리를 내가 만들어 준다면 너는 거기서 잘 수가 없으리라, 너는 저 새벽의 광야, 청청한 호수, 태풍 속의 존재여야만 하기 때문이다. 헛된 所有가 아니라 욕망 자체여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所有도 너를 죽이는 것이다. 안일한 나날보다도 비통한 나날을, 죽음 이외의 휴식은 없는 것이다. 참으로 두려운 것은 못다 한 욕망이 죽음 후에도 남지나 않을까에 있을 뿐이다.

K君, 이 욕망이 바로 사랑의 의미이다. 그것은 同情이 아니라 사랑이다. 설사 내가 [아홉 개의 교향곡]을 짓고, [최후의 만찬]을 그렸고 中性子를 발견했다 할지라도 너는 영원히 나를 비웃을 권리가 있다. 그것은 오직 너만이 가진 순수욕망 때문인 것이다. 행위의 선악을 판단하기도 전에 행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熱情(passion)이며 아픔인 것이다. 그 아픔이 본능적 욕망의 순수라면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K君, 보이지 않는 무릎의 상처가 아물기 전에 너는 모든 책을 버리고 떠나야 한다. 너의 골방에서, 거리에서, 都市에서 脫出해 가라.

K君, 여기까지가 너에 있어서의 文學이다. 그것은 영혼의 충격이고 모랄이다. 실상 여기까지는 舊約聖書에 나오는 [蕩兒의 歸家]와 R.M.릴케의 [말테의 手記]와 토마스 만의 [토니오 크뢰거]와 A. 지드의 [地上의 糧食]을 읽었을 때 가능한 너의 言語다. 그런데 이러한 아름다운 言語를 어째서 우리는 서서히 背信하게 되고 말았는가. 어째서 너는 주름살이 늘 때마다 비굴한 몰골과 발맞추어 평범한 사나이가 되고 말았는가. 어쩌자고 행위의 판단 이전에 행위하던 네가 살얼음판을 걷듯 그렇게 움츠리고 말았는가. 폭풍우 속에 놓였던 그 네가 어째서 선량한 아저씨가 되고 복덕방에서 장기나 두면서 백발과 함께 주저앉게 되었는가. 그 감수성과 本能과 感覺의 匕首는 어디로 갔는가?

이 모든 물음에 해답을 찾는 것은 이미 너에게는 文學이 아니다. K君, 이점에 주목하기 바란다. 文學은 그보다 더 위대한 것이라고 적어도 君은 말해야 한다. [아홉 개의 교양곡]과 [최후의 만찬]과 中性子의 발견에 대해서도 네가 영원히 비웃을 권리를 가졌을 때까지가 文學이라면 그 이상 최고는 없다(non plus ultra). 대체 그것은 무엇이었던가. 바로 너의 젊음인 것이다. 그 아픔인 것이다. 현실의 代置物로서 예술이 놓인다면, 그러한 것이 예술이고, 문학이라면, 너는 이미 敗北한 것이다. 그리하여 너는 평범한 俗物로 주름살을 늘이며 사라져야 한다. 베토벤과 미켈란젤로와 오펜하이머를 수용하고 절을 할 때 너의 의미는 없다.

K君,여 기서부터 우리의 回歸의 意味가 시작된다. 살아있는 精神(der lebendiger Geist)이 사라질 때 닥치는 추악함을 견디기 위해 우리가 돌아갈 길에는 파우스트적인 악마의 시련과 도스토예프스키의 地獄이 놓여 있다. 그것은 本能的 욕망의 댓가로 지급되는 보편적 아픔이다. 이러한 自己回路를 비교적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것이 이른바 文化라는 裝置이다. 물을 것도 없이 文學도 바로 그러한 裝置 중의 하나이다.

K君, 이러한 어리석음과 확실함의 승인 위에서 韓國文學이란 무엇인가를 나를 썼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한 入門書가 아니다. 그 以下이면서 그 以上이다.

물론 君은 아직도 失手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失手가 어떤 비참의 경지에 이를지라도 君은 우리에게 최소한 다음과 같은 선상에 머물 것으로 믿는다. 그것은 君이 純粹했다는 過去的인 사실 자체에서 마침내 달성되리라.

 

어리고 성긴 柯枝 너를 믿지 아녔더니

눈(雪) 期約 能히 지켜 두세 송이 피여세라

燭 잡고 가까이 사랑할 제 暗香조차 浮動터라 ([歌曲源流]에서

 

1973.10. 著者

 

<목차>

 

1부 문학이란 무엇인가
1. 문학의 정의방법
2. 두가지 문학관
3. 문학과 언어
4. 문학의 비예술성과 예술성
5. 문학과 반영론
6. 문학이해의 몇가지 편견

-묘사의 정확성이란 무엇인가

-문학의 역사는 판연히 구분되는가

-전면적 진실이란 가능한가

-문학에서의 사조란 있는 것인가
7. 비유의기능
8. 시정신과 산문정신
9. 문학의 기능과 정치의 기능
10. 개념상으로 본 문학의 요소

-소리의 요소

-의미적 요소

-대상적 요소

-쟝르

-문예사조

제2부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
1. 한국문학의 정의
2. 한국어의 특질
3. 한국문학의 연속성 문제
4. 한국문학과 민족문학
5. 한국적인 미란 무엇인가
6. 한국문학의 이해방법

-역사주의 방법

-분석주의 방법

-종합주의 방법

제3부 한국 현대문학 작품론
1. 시 작품

-창가, 해에게서 소년에게, 가을의 노래 등
2. 시사적인 검토

-주요한론

-소월, 만해, 육사론

-시와 계절의 인식

-시조와 그 명맥
3. 소설작품

-무정, 물레방아, 해돋이, 삼대, 소나기, 날개 등
4. 소설사적 검토

-이광수의 처녀작

-이광수론

-한국소설의 문제점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제4부 한국현대문학사 개관

1. 한국현대문학사의 개관

2. 해방에서 60년대까지의 한국문학

3. 흰 빛을 통해 본 문학적 형상의 분석

4. 한국문학과 여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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