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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제3세대 책상 다리

by 발비(發飛) 2014. 8. 8.

옛날 이야기를 듣다보면, 엄청난 가치가 있는 골동품을 마당에 한 켠에서 이리뒹굴 저리뒹굴 둔 사람도 있다하고,

엄청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고서를 도배지로 쓴 사람도 있다하고,

어렸을 적 내가 본 것 중의 하나, 이어령의 산문집을 라면 냄비 받침으로 쓰고 있었던 누구네 집도 있었고,

아 무식한 것을 어떡해 했다.

 

그런데!

 

내가 좋아하는 제3세대 문학전집, 대학교 1학년때 이 시리즈 중 몇 권을 읽으며

이런 신세계가! 했던 그 책들.

그때 옆 집 언니에게 빌려읽었던 책을 어느 헌책방에서 24권 전집으로 산 것이 몇 년 되었다.

엄청 뿌듯했는데...,

 

그런데!

 

난 오늘 이런 짓을 했다.

 

 

 

 

 

 

 

 

 

 

 

 

 

 

 

 

한 일년 쯤 되었나.

이제 책상은 없어도 돼! 하면서 책상을 없애고 좌탁을 샀더랬다.

마침 고택을 해체하고 남은 목재로 만들었다는 엄청 마음에 드는 이 나무 좌탁이.. 좀 불편했다는 것이지.

맘에는 드는데 불편한;;

그래서 이 좌탁을 어찌하면 책상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고민하다가,

목공을 배우던 전 회사 동료에게 부탁들 해서 다리를 만들어 달라고 할까... 고민고민하다가,

덧대겠지? 그러다가,

벽돌을 쌓아서 올릴까? 그러다가,

마주 보이는 책장 꼭대기에 24권짜리 [제 3세대 문학전집]이 눈에 띈 거지.

이거다! 이래도 될까?

몇권을 꺼내 높이를 가늠해보니 여섯권을 쌓으면 소파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기 딱인 높이가 된다.

6*4=24

어떡해;;; 딱 맞잖아.

윤후명 선생님, 박범신 선생님, 이청준 선생님... 최인호 선생님, 전상국 선생님....

헉 어떡하지;;;

결론은 꼭대기에 두지 말고, 가까이에 두자.

그 분들이 받쳐주는 책상에서 공부 열심히 하자.

잘 꿰어졌다.

이 새벽에 괴력을 발휘하여 올려놓으니 딱이다.

소파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자판을 두드려도 되고,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 자판을 두드려도 되고, ^^

 

근데, 저쪽 건너편에서 보니, 참 멋진 최고의 책들이 책상 받침대로 쓰이고 있다는 것이지.

어느 옛날 엄청나게 귀한 골돌품이 마당에 뒹굴듯이

어느 고결하신 분의 명문이 적힌 종이가 도배지로 벽에 발려있듯이

그렇게 나의 집은, 그렇게...그 꼴이 되었다.

이상하게 시원하게 웃긴다.

 

새벽 6시 20분 비행기로 제주를 가야하는데,

새벽 2시반이 넘어가는 이 시간에

나 이런 여자야! 하며 통쾌하게 한 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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