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층간소음이구나. 생각했다.
흔히 아파트에서 분쟁이 되는 층간소음이 아니라,
층과 층 사이의 공간때문에 생기는 층간소음이다.
원인은 같지만, 좀 다르다. 어쩌면 반대.
층간소음이 문제가 된 것은 층과 층 사이에 콘크리트 두게를 얇게 하면서 생긴 일이라고 들었다.
어젯밤부터 마음에 콕 박혀버린 단어, 층간소음은 반대의미에 가깝다.
층과 층 사이에 두게만큼 차이를 느끼는, 갭gap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자기 안에 수많은 자기들이 존재한다.
아마 스님들은 수많은 자기들을 가지치기 해서 하나의 자기로 단순화시키는 것이 도를 닦는 목표일런지도 모른다.
수많은 자기들을 하나의 공간에 모여있기만해도 삶은 그다지 시끄럽지 않을 것이다.
마치 단층 주택에 사는 것처럼 고요할 것이다.
혹, 수많은 내가 있더라도 나라는 존재가 그 하나를 묶어 나라는 존재 혼자만 살 수 있는 외딴 곳의 별장에 있다면
그 정도의 소음은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나처럼 수많은 자리를 끌어안고 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가운데 나라는 집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마치 아파트처럼...
바로 윗집, 바로 아랫집, 바로 옆집에서 내는 작은 소리에도 수많은 내 안의 내가 번갈라가며 저를 드러낸다.
경우의 수가 너무 많은 것이다.
윙윙윙... 벌집이 된다.
소리들이 섞여 내 소리도 남의 소리도 듣지 못한다는 말이다.
누군가를 만나다고 생각하자.
열개쯤 되는 '나' 중에 누군가의 열개쯤 되는 그의 '나'와 딱 맞다. 그래서 서로 좋아한다.
그렇지만 나머지 각자의 아홉이 조용할 리가 없다.
모두들 뭐라고 한마디씩 한다. 각자의 의견을...이것이 갭이며 층간소음이다.
나의 나머지 아홉이 이해가 되고, 그의 나머지 아홉이 이해가 되니, 그 말들이 흘러들어지지가 않는다.
결국 그런 너를 이해해. 이런 나도 이해해줘.
우린 서로에게 잘 맞지만 함께 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이렇게 되는거지.
이런 결론을 흔히들 쿨하다고 하지.
나머지를 이해하는 것.
나라고 인식되는 '나'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나머지는 그저 손님이지 않을까?
손님이 주인되는 집은 주인 없는 집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어젯밤은 내 안의 '나' 열개가 모두 제 모습을 드러냈고,
윗층에 사는 그 안의 '그' 열개가 모두 제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서 엄청 시끄러웠다.
층간소음의 보복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올랐던 사진과 글이 있다. 윗층 초딩들의 소리폭격에 시달리던 한 남자는 우퍼스피커를 구입해서, 소리가 옆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소리를 내는 부분을 천정에 밀착시키고, 나머지 부분을 방음테이핑을 해 다른 집에 소리가 나가지 않게 하고는, 가장 강력한 소리를 내는 곡을 틀었다고 한다.윗층에서 음악소리가 시끄럽다고 내려왔는데, 당신들이 소리를 낼 때마다 견딜 수 없어 음악을 듣는다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계속 그랬더니, 몇 달 후 이사를 갔더란다.
그와 내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의 집을 가지고 있고,
그가 열개의 그를 가지고 있고,
내가 열개의 나를 가지고 있고,
위에서는 얘가 뛰고, 재가 뛰고,
아래에서는 뛰는 소리 듣기 싫어 더 큰 소리를 내고,
신(信), 모두가 알다시피 믿을 신이다. 사람의 말, 말은 곧 마음의 표현으니, 신은 본래의 마음이며, 딱 하나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손해를 보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 하나의 마음이 되면 군자의 삶을 사는 것이고, 하나 이외의 마음은 욕심이 되어 소인의 삶을 살게 된다. 하나의 마음일으로 맞추는 것, 믿을 신.
그래서 사랑보다 믿음이 윗질인가?
머릿속을 벚꽃비처럼 흩날이던 층간소음이 사그라들고 있다.
아마 이 포스팅이 한 줄기 비의 역할을 했나보다.
열개의 나를 배려하기 보다 하나의 나를 생각하는 것, 열개의 너를 이해하기보다 하나의 너를 생각하는 것.
[층간소음]이라는 단어가 어젯밤 내게 왔다가 오늘 떠났다.
오늘밤은 조용히 푹 잘 수 있겠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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