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때 농활을 다녀오고 난 뒤, 처음으로 풀을 뽑고 밭을 갈았다.
농활때 가장 기억에 남는 땅콩밭, endless밭고랑, 산을 돌아 이어진 밭고랑은 쉴틈을 주지 않았다.
끝이 나야 쉬는 건데, 땅콩밭을 덮어 놓은 검은 비닐을 따라가며 풀을 뽑았더랬다.
그 보다 더 뜨거울 수 없었다. 밭고랑이 끝나지 않으면 쉴 수 없었더랬다.
어제는 비가 와 땅이 축축했다.
축축한 모든 것은 부드럽다.
부드러운 흙에 뿌리를 내린 풀은 제법 쉽게 뿌리채 뽑혔다.
뿌리채 뽑힌 자리에는 설핏 보기에도 대여섯종의 벌레들이 꼼지락 튀어나왔다.
흙속에서 나온 벌레들은 그리 징그럽지 않았다.
하지만 긴 밭고랑은 여전했다.
끝이 보이는 데 끝이 나지 않는 밭고랑에서 호미자루 하나 들고, 풀을 뽑음과 동시에 밭을 간 것이다.
지난 온 자리는 잘 정리되었고,
가야할 자리는 무지랭이 같았다.
도시농부에서 겨울배추를 길러, 김장봉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충동적으로 참여하였다.
언젠가는 꼭 이루리라 꿈꾸고 있는 율도국, 자급자족생활 체험, 한 번 해보자 했다.
좋지요!
재미있지요!
그 말에 혹 빠진 거다.
발, 언제 어디든 나의 움직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 발이다.
내가 놓인 위치마다 발은 그 모양을 달리한다.
손도 얼굴도 그다지 변하지 않지만 발은 언제나 최전선이다.
벌레가 발등 위로 스멀거리며 다니고,
흙은 발 아래로 잔뜩 끼었다.
힐을 신던 어제발을 사라지고, 마구 굴러먹는 발이 되었다.
도시 어느 곳에서 흙이 조금이라도 들어갔다면, 간지럽고 부대끼고 그랬을텐데
신기하게 밭에서는 엄청 흙이 끼었는데고 아무렇지도 않다.
아무렇지도 않는 곳,
자연스러운 곳,
신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밭일을 하는 중에 한 두 차례 비가 더 왔다.
우의와 장화를 준비하였지만, 그냥 그대로 맞기로 했다.
일하느라 흐르는 땀이 빗물과 함께 얼굴을 타고 내렸다.
시원하다.
하늘로 얼굴을 치켜든다.
얼굴에 비가 아주 천천히 똑똑 떨어진다.
받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오버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참는다.
몸에 닿는 비가 달고도 시원하다.
우중 산행을 할때의 벅참에 가까웠다.
비가 오는 산을 오르는 것은 최고의 스릴을 느낄 수 있었다.
비가 오는 산은,
땅과 바위가 구분하기는 힘들고,
어디를 딛느냐에 따라 미끄러지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발은 언제나 긴장상태다.
우중 산행을 마치고 산을 내려오면 발과 다리가 얼얼하다.
기특하다.
우중 밭갈기도 그에 가까운 느낌,
발은 마치 진창에 빠진 듯한 모양이지만, 더러운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빗물이 천막에 고였다.
천막 한쪽을 잡아 물길을 만들어, 흘러내리게 한 빗물로 아껴가며 발을 씻는다.
어느 때보다 보얀 발이 된다.
갈아놓은 골로 검은 거름이 뿌려진다.
화룡점정이다. 완벽하다. 이 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색감은 없다.
휴일이었고,
비가 왔고,
피곤했고,
뭔가 그 곳으로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수백가지는 되었지만, 끙 하고 일어났었더랬다.
밭에서의 네시간은
그 전 네시간과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 했다.
마치 현재와 아주 멀리 동떨어진 어느 곳으로 일주일의 휴가를 갔다온 것처럼 푹 쉰 느낌이다.
하지만 말이다.
계속할거냐고 말한다면, 아직은 대답을 못하겠다.
아마 다시 가겠지.
담주에는 배추 씨를 심으러 가야하고, 그 다음주에는 뿌리내린 배추를 솎아주어야 한다고 했다.
어찌지 가야하기는 가야할텐테,
오늘 아침 등 근육이 너무나 아팠으니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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