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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거림

지붕과 감자

by 발비(發飛) 2013. 7. 23.

비가 오면 모든 것이 소소해져.

 

소리도 소소하고

풍경도 소소하고

사람들도 소소하고,

 

출근을 하면 직원 대부분이 원두커피 한 잔을 내려 마신다.

유독 한 명만 커피믹스를 마시는데,

그 분의 비주얼은 신사동 가로수길 필인거지.

오늘도 그 멋진 비주얼로 커피믹스를 타서 담배를 피우러 옥상으로 올라간다.

그런데 급하게 무지하게 궁금한 질문이 생겨 참을 수가 없다.

 

오늘은 메신저에도 들어오지 않는군.

궁금해~~

문자를 보냈다.

 

"진짜 궁금해서 질문! 비오면 옥상 어디에서 담배를 피우세요?"

곧장 온 답 문자.... "옥상에 벤치와 테이블 그리고 지붕이 있습니다!! ㅎㅎ"

오호!  하고 다시 답을 보냈다.   "아...지붕! 지붕! ㅇㅋ"

 

지붕이 있었구나.

잊었던 단어 '지붕' 나는 오래동안 지붕아래 있지 않았던지라 지붕이 내겐 없었는데,

이 사람은 비오는 날 담배 피우러 갈 때마다 '지붕'을 보았겠구나.

 

담배 한 모금 머금었다 뿜으면, 담배 연기가 지붕 위로 오르고 싶겠지만,

비 때문에 낮게 깔릴테고,

도저히 지붕까지 도달하지 못한 담배 연기는, 저를 뿜은 이의 얼굴을 묻겠구나. 하고 그 모습을 상상해본다.

뿌연 연기사이로 지붕을 쳐다보겠지?

 

 

"대개 집의 지붕은 얄팍한 판자를 깔고 그 위에 누름돌이 늘어놓여 있었다.

그것들 둥근 돌은 햇빛이 닿는 반쪽만이 눈 속에 검은 결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 색은 젖었다기보다도 오랜 풍설에 시달린 검은 먹과 같았다." .................. 『설국(雪國)』(川端康成 가와바타 야스나리) 중에서

 

 

조대리가 감자를 들고 들어왔다.

"감자네" 했는데, 내가 반색을 한 모양이다.

"잠시만요" 하고 어디론가 갔다가 돌아오는데

"하나도 안 남았어요." 한다.

"어~" 하고 옆방에 다녀오니, 책상 위에 감자가 놓여있다.

저 안 먹고 나를 준 모양이다.

감자의 반을 잘라 대리의 책상 위에 올려뒀다.

"나눠먹자" 그랬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이상했다.

원래는 그 대리님의 감자였는데, 내가  베푼 느낌이었다.

"어, 뭔가 이상하지 않아? 왜 조대리가 준 건데, 내가 베푼 것 같은 느낌이지? 고맙다고 생각했지?"

"네"

이상한 거지.

급 모드를 바꿔, 이건 아니지. "조대리 고마워!" 했다.

 

풋내가 살짝 나는 감자는 비오는 날에 딱이다.

또 가난한 자들에게 딱이다.

 

배낭여행 중에는 먹을 것이 마땅치 않다.

로컬음식점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의 편식이 티나지 않게 주로 먹었던 요리는 감자가 들어간 요리였고,

함께 여행을 했던 이들은 내가 감자를 엄청 좋아하는 줄로 알았다.

나는 부인하지 않았고, 나는 감자가 제일 좋아, 그랬다.

그때 옆에 있었던 이가  "감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구황식물이야, 누난 가난한 자의 피가 흐르나봐, 천민이었던 거지."

여행 중 잊혀지지 않는 말이다.

그때부터 감자 먹는 습관을 들여야지 했다.

가난한 자가 되면,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생각했거든,

가난한 자가 되면, 어떤 경우라도 그러려니 할 수 있겠다 생각했거든,

오늘 먹은 감자는 풋내가 살짝 나는 껍질감자,

가난한 자는 설탕과 소금이 적절히 들어가고, 껍질을 잘 벗겨 분이 나는 감자보다는 그냥 감자를 먹어도 고맙지, 했다.

 

오늘은 어제, 그제, 그그제, 그그그제에 이어 내내 비가 오락가락한다.

비가 내내 오니 사람이 점점 소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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