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절거림

공휴일 전야

by 발비(發飛) 2013. 7. 15.

공휴일 전야 

단골 거리 카페에서 맥주를 늦은 저녁 대신 마시고 있었더랬다.
시간이 늦은 터라 카페는 조용했고, 우리 테이블은 테라스에 있었지.

꽃무늬 짧은 원피스를 입은 노랑 컷트 머리 '율라'가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발을 동동 구르며 멈춘다.

 


몇 번 말을 오고 간,
갓 스물 두살의 대학생, 휴학을 한 번하고,
자퇴를 할까 고민 중이고,
슈퍼모델에 나갈까 하다 얼마전 포기한 예쁜 아이지.

왜 약이 올랐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생긴 남친 주려고 장미꽃 사서 가는데, 재수없게 엄마가 여기까지 찾아왔단다.
엄마답지도 못하면서 나이만 많아서 엄마라고,
자기보다 말을 더 철없이 하는 엄마가 무슨 엄마라고,
화가 나면 자기 인생을 두고 막말이나 하는데 그게 무슨 엄마냐고,
이렇게 쫓아와서 자퇴시길거라고 협박하는게 무슨 엄마냐고,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싫다고 십분쯤 쉬지 않는다.

내 앞에 있던 00은
그럼 안된다고... 자식이 그럼 안된다고...한다.
엄마니까 이해해야한다고.
엄마라는 이유로 이해를 해야한다고.
부모니까, 부모는 너를 가장 사랑하니까 그 사람을 이해해야한다고. 말했다.

율라는 더 화가 나는 얼굴이다.
나도 화가 나 버렸다.
화가 나서, 나의 절친 00에게 말했다.

부모라는 이유로 그들이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의 말에 자신이 살아가야 할 개인의 인생을 걸어야 하냐고...
더구나 책임을 부모가 대신 져주지도 않는다면, 모든 것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부모는 부모의 인생을 그들의 선택대로 살았고,
자식은 자식의 인생을 그들의 선택대로 살아야한다고,
부모는 완벽한 사람이 아닌 그냥 인간이라고.
부모를 이해해야 한다면,
자식의 행동은 무엇이어야 하냐고,
율라의 꿈이 있는데, 부모를 이해한다고, 그 꿈을 접고 부모의 말을 듣는 것이 맞는 것이냐고,
사는내내 언제나 그 지점을 그리워하게 될 거라고.
......
약간 흥분했다.
그런데 듣고 있던 율라는 내 말을 듣더니, 흥분이 가라앉는 듯 했다.
흥분한 내 눈을 쳐다본다.

그래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율라에게 다시 말했다.
지금 엄마가 너의 인생을 간섭하는 것은 니가 흔들리기 때문이라고.
너가 단단하게 흔들리지 않고 니꿈을 위한 작은 성공을 증거로 보인다면, 엄마는 너의 인생을 간섭하지 않을거라고.
니가 할일은 자신을 단단히 하고, 자신의 선택에 의한 성공 하나를 이루는 것이라고.
그러면서 한비자에 나오는 '목계', 그 고사를 들려줬다.

그 자리에 또 한 여자가 있었다.

부모와의 관계가 좋지 않아 스물 몇 살때 일본으로 가 18년을 살다가 작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부모와 함께 살고 있는, 카페 건물 주인 딸!

그녀도 자신의 삶으로 이야를 거들었다. 나도 그랬다며...

흥분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이제 알겠다고 했다.
열심히 해 보겠다고 했다.

그 결론이 무엇인지, 율라의 꿈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아이인지도 잘 모른다. 다만 팔팔 뛰던 아이가 멈췄다.
그때 나는 생뚱맞게도 율라는 행운아구나 생각했다.

서로가 단골로 오고가던 늦은 밤 카페,
화가 나 그 카페를 지나다 우연히 만난 여자 셋, 
율라의 팔팔함이 본 우리들은 어땠을까?


율라는 그렇게 화를 가라앉히고, 엄청 밝은 얼굴, 빛나는 얼굴이 되었다.
12시가 다 된 그 밤에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만난지 한 달 되었다는 남친 오빠한테 팔짝거리며 갔다.

 

 


율라가 가고 난 뒤, 열띤 토론 후 , 괜찮은 결론이었다며, 우리 셋은 웃었다.

스물 한 두살 이쁜 율라다.


공휴일 전야  사진에 관한 첨언 끝!

 


'주절거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붕과 감자  (0) 2013.07.23
나는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0) 2013.07.22
거짓말이야  (0) 2013.07.15
'증정' 때문에 군자가 하고 싶어졌어!  (0) 2013.07.10
'알게 된 이'여! 고맙습니다!  (0) 2013.07.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