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도 '자야'가 있다.
내가 좀 영특한 아이였다면, 세 살 쯤일테고, 그렇지 않다면 다섯 살쯤 이었을 수도 있다.
시인 백석이 그의 연인 자야를 생각하며 지었다는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이 시와 백석과 자야의 이야기를 알고 난 뒤, 나는 까마득히 어릴 적 '자야'를 자꾸 생각한다.
자야는 큰 집 식모였다.
오빠는 어릴 적부터 아팠으므로, 나는 큰 집이나 외가에 있었다.
그래서 내 유년의 기억배경은 대부분 큰집이거나 외가이다.
그날은 햇살이 좋았다.
마당에 깔린 자갈은 디딜 때마다 소리가 났고, 나는 그것이 재미있어 종일 마당을 왔다갔다 했었던 것 같다.
자야가 나를 안았다.
"자야!"
나는 그냥 자야라고 불렀다. 자야가 몇 살인지 가늠도 안된다. 내 기억 속에 자야는 얼굴도 몸도 없고, 다만 젖은 앞섶과 설거지 냄새 뿐이다.
무슨 일이 중간에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자야는 기와가 올려진 담 위에 있었고, 나는 자야를 응원했다.
자야는 기와가 얹힌 담 위를 걸었고, 그때마다 기와에서는 자갈과는 다른 쇳소리 같은 것이 났다.
나는 그 소리도 좋았다.
자야가 기와 위에서 거의 팔짝 뛰었을 때도 기와끼리 부딪히며 땔그락땔그락 잠시의 틈도 없이 소리가 났다.
내가 스무 몇 살 때 엄마에게 물어봤다.
'자야'가 누구야?
큰집에서 일하던 애?
내가 그 이름을 알아?
너 '자야'가 기억 나?
'자야'는 그때 몇 살이었는데?
몰라. 열아홉..그건 왜?
'자야'는 담에서 떨어졌다고 했다. 그때부터 다리를 절었다고 했다.
'자야'는 몇 달 뒤 절름발이 남자에게 시집을 갔다고 했다.
백석의 시를 볼 때면 얼굴도 몸도 아무 것도 없는 그저 '자야' 가 자꾸 생각난다.
그리고... 어떤 소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소리로 가득찬 순간이 되면, '자야'가 생각난다.
몇 주전 제주도에 여행을 갔을 때, 비자림이라는 숲을 이틀 내내 갔었다.
태풍의 끝이라 사람이 없어, 오직 들리는 것은 내가 걷는 발소리와 나무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 간간히 새와 풀벌레 소리였다.
세상이 소리로만 가득했으므로, 그때도 '자야'가 생각났다.
내가 한 일일까? 기억은 때로 시간을 두고 날아드는 파편같아서...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아무에게도 물어보지도 말하지도 않았다.
<2012. 9. 20 비자림>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히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올 리가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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