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見聞錄

one. <들국화 2막1장 콘서트>

by 발비(發飛) 2012. 10. 2.

 

 

one. <들국화 2막1장 콘서트>

 

나에게는 최고였다.

그분들은 악스공연때보다 더 멋진 목소리로 더 멋진 연주를 해 주셨다.

정말...이제... 이렇게... 무대에 계시겠구나 생각하니 더욱 좋았다.

땀이 흠뻑 나도록, 목이 따갑도록 공연을 즐겼다.

언제나 자기도 들국화팬이라는 후배와 함께 공연을 봤다.

악스홀공연에 갔던 이야기를 듣고는, 담에는 꼭 같이 가자고.. 그래서 같이 갔고,  잘 놀았다.

 

그런데,

 

문제는 공연이 끝나고였다.

우리는 공연뒷풀이를 하기 위해 근처 소주집으로 갔다.

 

후배가 속을 이야기 했다.

자신은 실망했노라며..., 자기가 기대했던 모습이 아니라며...,

 

그래서 내가 물었다.

무엇에 실망했냐며..., 기대했던 모습이 어떤 것이냐며...,

 

대체 전인권이 몇 살인데 그렇게 할아버지같이 하고 나오나며..., 사자머리를 하고 포효하듯이 내지르던 그 전인권을 기대하고 왔다고 후배가 말했다.

그래, 대체 몇 살인데 그렇게 하고 나와야 하냐며, 내가 다시 물었다.

팬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누나는 들국화의 골수라서 너무 편협하게 그들을 본다면서..., 자기는 기대를 많이 해서였는지 실망이라고 후배가 또 말했다.

 

이럴수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지? 속이 부글거렸다.

그러면서... 맞는 것은 이세상에 없으니까. 그럴수도 있지, 하고 그를 인정했다.

 

인정하면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자머리가 아닌 하얀 댕기머리, 나는 그 머리를 처음 보았을 때 이 분 스토리의 맥락상 가장 탁월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가장 마지막에 매스컴에 보인 것은 출소를 한 이후 어느 인터뷰에서였다.

그때 그의 머리는 푹 꺼진 하얀 산발이었다. 그리고 지금 하얀 머리를 묶었다.

다시 염색을 하고 사자머리를 하는 것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시간은 단절이 아니 지속에 의미가 있다. 그는 그 시간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다.

들국화가 <죽어도 사는 여자> 에 나왔던 메릴 스트립처럼, 아님 보톡스때문에 팽팽한 피부를 가졌지만, 근육이 움직이지 않은 늙은 배우의 얼굴이 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여전히 열창을 했고, 관객인 우리는 몇 구간 나눠 불렀다. 함께 부를 수 있어서 좋았다.

그의 노래를 통해 어떤 곳에서도 받을 수 없는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나는 받았으나 갚을 길이 없었다.

그들의 에너지가 항상 같을 수는 없다.  그들이 팔십이 되고, 구십이 된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의 노래를 함께 할 수 있다. 

누구의 노래가 아니라 우리의 노래로 함께 콘서트를 했으면 좋겠다.

어느때쯤이면 그들이 꼭 불러야 하는 이유는 없어질 것이다.

우리들은 빚갚음으로, 그들의 노래를 우리의 목소리로 그들에게 불러줄 수 있어야 한다. 

팬은 힘을 합해 연로해지는 들국화를 위해 지금의 그들처럼 합창을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앞뒤로 함께 늙어갈 것이다.  

 

소주 몇 잔에 더 멋지게 말했을 수도 있고, 더 횡설수설했을 수도 있다. 암튼 그랬다.

 

후배의 대답은 간단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헤어진 뒤, 문자가 왔다. 오늘 공연 쵝오! 고마워!

 

 

 

<들국화 2막1방 콘서트> 일주일 전 조덕환을 만나다!

 

지난 월요일 <놀러와>에 들국화 특집이 방송되던 날이었다.

나는 부재의 자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그들의 곁에 조덕환님이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계속 상상했다.

아쉬움에 방송이 끝나고 조덕환1집 <수만리 먼길> 다 듣고서야 잤다.

나는 출근하고서도 <놀러와>의 여운을 어쩌지 못하고, 또 조덕환을 만나고 싶다고 중얼거렸다.

 

정말 우연이었다.

마포구청사거리 신호대기에 걸렸다.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조덕환이다..., 했다.

옆에 앉았던 동료가 선글라스를 꼈는데 어떻게 아냐고 한다. 그런데 조덕환같애. 조덕환이 맞아..., 했다.

신호가 바뀌고 갈길을 갔다. 목적지에 도착하고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전에 알아두었던 그 분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저는 들국화와 조덕환님의 팬입니다. 방금전 마포구청 사거리에서 뵌 것 같은데 맞으신지요? 꼭 한 번 뵙고 싶습니다."

 

그분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조덕환입니다. 어떻게 저를 알아보셨어요?"

 

나는 팬이라서 조덕환님이 공연하시는 동영상을 거의 다 보았다고, 그래서 저절로 알아봤다고 대답했다. 

팬이라고 하니.. 고맙다고 하시면서,

 

노래는 인권이가 최고죠. 하신다.

 

그날 저녁에 그분의 작업실 근처에서 뵈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더니,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혀를 둘렀다. 그만큼 그분을 뵙고 싶다며... 중얼거리고 다녔다.)

 

그분은 미국에 가게 되신 일과 한국으로 돌아오시게 된 일과 곧 나올 2집에 관한 일, 노래 연습을 집중적으로 한다는,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들국화에 대해서는 말씀을 안 하셨다. 그저 가늠이 되는 눈빛과 표정의 여운을 훔쳐봤을 뿐이다.

 

그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처음 그분의 앨범 <수만리 먼 길>을 들었을 때 울컥했던 것이 생각났다.

어떻게 25년 동안 꿈을 버리지 않을 수 있지? 할 수 있지? 3년전 상황은 적어도 들국화 멤버에게는 최악이었을텐데, 그 시간을 어찌 보냈던거지? 또 하나의 빛이 되었다. 역시 들국화는 달라! 그랬었다.

 

그분은 하나하나 천천히 할 것이라고 했다. 풀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너무 오랫동안 창작을 참아오셨고, 본인안에 창작욕을 끊임없이 퍼내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난 노래를 만들고 싶어. 그러셨다.

그분의 눈빛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 눈빛의 진지함때문에 이렇게 글로 상황을 옮겨놓는다는 것이 극도로 조심스럽다.

 

어제의 공연에서 다시 한 번 그 분을 떠올렸다. 상상했다. 그 첫번째 어울림의 모습을 말이다.

행복...이겠지.

 

가장 큰 행복을 위해서.

모두의 가장 큰 행복을 위해서.

 

전인권님이 그렇게 기적을 보여주셨듯이...

우리에게 기적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워하면 언젠가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함께인 것을...

간절히 원하면 언젠가는 보여 줄 것이다. 그들이 처음처럼 함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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