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05(수) ~ 2010.05.30(일)
명동예술극장
시와 소설은 그것 자체로 하나이다.
연극은 희곡이 전부가 아니라서 좋다.
하지만 연극은 희곡과 무대와 배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연출이라는 렌즈가 필요하다.
광부화가들이 어떤 희곡으로 처음 써진 것인지는 읽어 보지 못했지만,
원작의 공연이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본 광부화가들은 무대라는 것의 자유를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어 좋았다.
작가는 무대를 믿어야 한다는 희곡창작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실제의 이야기라 시간적인 흐름을 무대에서 마치 영화처럼 풀었다.
오직 배우와 무대만이 아니라 영상을 덧얹어져 연극을 풀어나갔다.
사실 이렇게도 푸는구나 하면서도, 자꾸 바뀌는 시간 때문에 그들의 내면까지 들어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번 무대의 시간 흐름과 어긋나 힘들었다.
개인적으로 좀 더 내게 시간적 공간에서 머무르게 해주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랬다면, 이 연극에서 어느 부분에 나오는 것처럼 예술은 하는 자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을 만나는 자에게 생산되는 것임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1930년대 산업혁명 후 사람들은 기계가 되어가고 있었던 시점이었을 것이다.
기계보다 더 비인간적인, 기계보다 더 한 노동을 하던 때의 광부들의 이야기이다.
광부는 그 당시로서는 그래도 버리기 힘든 안정적인 직업이었나 보다.
연극상의 설정을 보면 노조가 있고, 노조가 보조해주는 문화센터 같은 것이 운영되고 있었으니, 이때 살짝 연극에서 빠져나와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게도 되었다.
암튼 그런 광부들이 경제학 선생을 구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미술사를 배우게 되고,
한 번도 미술을 생각하지도, 보지도 못해서 대책 없는 수업이 될 수밖에 없었던 시점에 선생은 직접 그림을 그리면서 예술을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치고자 한다.
그래서 그리기 시작한 그림이다.
교수가 그림을 가르친 것은 아니다.
그냥 그들이 그림을 그린 것인데, 그들의 그림은 그들의 일이 얼마나 깊이 자신들 속에 들어와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진리가 체득되면 그 자리가 어디든 자유로이 진리를 펼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이 열 살 때부터 해 온 광부의 일은 그들의 정신과 같아서 그들이 그리고자 하는 그림에 그대로 드러난다.
아마 이들이 피아노를 쳤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갱 속의 소리를 쳐 보라고 한다면 아마 내 생각에는 그들의 그림이 그렇듯이 그들의 연주에서 똑같은 감동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이런 음악을 할 수 있냐고 물으면, 그럼 그러겠지.
이건 그냥 갱 속에서 나는 소리예요.
우리가 한 번도 보지 못했기에, 듣지 못했기에 그들은 특별히 다가왔을 것이다.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교수처럼 예술에 대해 거창하다.
교수는 광부 헨리에게 당신의 재능이 부럽다고 했다. 자신은 그냥 테크닉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헨리도 마찬가지였다. 교수가 그린 그림을 보고 뭔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헨리는 자기가 경험한 새로운 그림이라는 것에 두려워한다. 뭐가 뭔지 모른다.
내가 왜 이래요.
교수는 말한다. 당신이 광부이기 때문에 당신들의 그림을 사람들이 좋다 한다고 했다.
우리가 광부이기 때문에? 라고 광부들이 되물었다.
연극을 보면서 몇 번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던 지점 중에 하나이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뭐지 하고 광부들이 자신들이 그린 그림에 경이로워할 때, 광부이기 때문이라고 할 때,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했다.
나도 글을 쓰고 있다.
마치 광부처럼 돈을 벌면서, 글을 쓰고 있는 나를 경이로워하면서, 내가 만난 이 글쓰기가 신기해서 진정 이 일을 하고 있나 생각할 때도 있다.
이 길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가는 모양새가 광부화가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만약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정말 글만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지금 사람들이 당신 글을 잘 쓰는 것 같아요 하는 말이 그대로 유지될까.
나 또한 광부화가들처럼 갱 안에 있어야만 하는 것인지.
아님, 광부화가들처럼 갱 안에 있으면서 하는 글쓰기가 의미가 되는 것인지.
나는 그래서 예술이기도 하고, 예술이 아니기도 한다.
애초에 예술을 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해버리기에는 시간에 너무 무책임한 일같다는 생각과 함께 그것으로 미진하다는 생각까지 미치자, 이번에도 약간 눈물이 나기는 했다.
이렇게 나에게 꽤 큰 파장을 준 연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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