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익스피어 작품 중 가장 좋다는 <리어왕>.
부정이 인간인가?
리어왕은 부정의 인물이다.
마치 거세하는 것이 인간이 태어난 이유인듯,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딸들에게 재산을 나눠준다.
긍정을 품은 것은 부정의 핵이 되고,
부정을 품은 것은 실체를 비운다. 근거가 사라진다.
부정의 핵인 두딸은 참혹하고도, 인간적인 절차로 아버지를 배신하고 자신들 또한 죽게 되고,
부정함으로써 모든 것이 사라진 코델리아는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물론 똑같이 죽게 되지만,
그를 둘러싸고 그를 포함한 모두 죽는다.
리어왕은 우리나라 꼴이다.
간교하게 사랑한다는 입의 말에 혹해서, 리어가 두 딸에게 나라를 맡겼듯 그렇게 선뜻 내주고 만 나라.
땅은 파헤치고, 사람을 파리목숨처럼 대해 이게 아니라고 말했더니.
태풍속으로 내몰고는 문을 닫아버린 것이, 딱 그 누구의 꼴이고, 딱 우리꼴이다.
리어왕에게 니가 인간이니, 하고 더는 다가가지 못하는 것처럼
딱 우리꼴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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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보면서
글을 읽으면서 만들어놓은 리어왕의 상 때문인지, 뭔가 어색했다.
그건 모든 연극을 볼 때마다 부딪히는 충돌같은 거.
좋았다.
특히 무대장치 중에 발로 만든 막의 표현은 압권이었다.
바람 속에 버려진 리어왕이 혼돈이 발의 움직으로 너무 잘 표현되었다.
역시 무대는 단조롭고,
단조로운 것은 상상력을 만들어내는구나, 절감했다.
무대를 믿어라.
리어왕을 연기하는 배우와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하기 위해 설치된 무대, 그리고 그것을 마주보고 앉은 나는
왜?
우리는 연극이라는 것을 볼까.
라고 하는 물음에 적적한 답이 <리어왕> 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인간이라 늙고도, 고통받는, 그렇지만 질기게도 살아남았던 리어왕이 인간의 전형일지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그런 인간을 절감하는 것이 연극의 핵심이 아닌가 한다.
많은 예술 장르 중 인간의 바닥을 가장 많이 긁는 것이 연극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그 중독현상.
나를 내 놓아 볼 수 있는 기쁨.
상처난 곳을 붕대로 꼭꼭 쌔매두었다가, 붕대를 풀고서 벌겋게 드러난 상처를 바람 앞에 햇빛 앞에 내 놓았을 때의
그 잘디잔 고통들과 동시에 느끼는 시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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