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자의 슬픔
베르톨드 브레히트(1898~1956)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잠시 딴 소리-
내가 알고 있는 프랑스태생의 신부님(아래 어디에 포스팅 한 적이 있다/ 밤나무길 신부님)은 1.2차 대전을 프랑스에서 다 겪으셨다. 참전도 해서 알제리로 파병도 나갔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들의 일제시대처럼 독일군의 점령하에서 소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운동장의 반이 독일군의 초소였다고 했다. 그리고 독일군들을 피해 스페인(신부님의 고향은 프랑스 남부의 바스크지방이다)으로 국경을 넘으려는 유태인들에게 신부님과 복사들이 위장하여 국경을 넘게 하기도 하고, 사제관에 숨겨주기도 했다고 했다.
"말도 말아요.."
신부님께 듣는 1.2차 대전이야기는 나로서는 흥미로웠다. 교과서에서만 있는 박제된 전쟁이었는데, 실제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재 있었던 이야기라는 사실에, 그렇다면 내가 영화로 보아왔던 잔인한 이야기들이 정말... 정말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자, 우리만이 겪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일제나 한반도전쟁 같은 것들이 우리만이 겪는 가여운 민족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었다.
"독일은 정말 싫어요."
-잠시 딴소리 끝-
브레히트는 독일사람이다. 반전주의자적 경향이었으며, 마르크스주의에 가까이 활동하면서 반파시즘, 반미.. 등을 기조로 희곡작업을 했다고 한다. 아마 유럽문화가 세계의 철학을 지배했다면 일률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데 그 근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 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시로 돌아오면, 의과대학을 다녔던 브레히트는 1차대전중에 육군병원에서 근무했었다. 1차대전은 참호전이라고들 한다. 첨단 무기를 가지고 원거리 전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참호를 파놓고 적이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적이 코앞에 왔을 때 서로 몸을 부딪히며 죽이고 죽고를 했을 것이다. 전쟁, 사람, 죽음 같은 것들이 그들의 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한 번의 전쟁을 치르고나면 살아남은 자는 참호에서 몸을 말고 다음 전투를 기다리며 자신의 손으로 찔렀을 죽음들을 생각할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나서도 돌아오지 않은 친구들이 어떤 상황, 어떤 모습으로 죽어갔을지에 대해 너무 선명했을 것이다. 그것들을 기억하고 산다는 것은 고통 그 자체일거라 상상된다.
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
살아남은 자신에 대해,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무거울 수 밖에 없다.
"강한 자는 살아 남는다"
강한 자라고 함은 무엇인가,
운이 좋은 사람은 곧 강한 사람- 이건 스스로 만든 일이 아니다
약삭 빠르게 행동한 댓가로 살아남은 사람- 진정 강한 자가 아니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살아남았다는 것이 떳떳지 못함이 되고, 죄가 되는 시대에 산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시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 시를 읽고 나서 온 몸이 마음인듯 찌릿함이 마음으로 몸으로 어디가 먼저인지 모르게 일어났다. 이 시를 어떤 식으로든 전쟁을 치른 뒤에 읽는다면 그 전율은 더 클 것이다. 작년 촛불집회 이후에 읽더라도... 우리는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감동이다.
브레히트는 바닥에 깔려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 하다.
누구보다도 우월하지 않아 살갗은 여리디 여려 모세혈관까지 선명히 보이는 듯하고,
귀는 마치 난청이라기라도 하듯 세세한 소리까지 음파로 들리고,
손끝은 더 예민해 닿는 것마다의 차가움에 얼고, 뜨거움에 데이고,
그러면서 모든 이들이 위로만 보이는 아니 그보다 더 아래...
그들이 그저 걷는 것이 아니라 발바닥마다 얼마간의 흙과 먼지와 쓰레기들을 밟으며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래서 내가 미처 말하지 못해 안에서 곪아가고 있는 어떤 것을 빨아내는 것이라서
그래서 누군가를 향해 시를 소리내어 읽음으로 내 마음이 전달되었으리라는 믿음을 주는 그런 아린 감동.
나는 누구를 향해 이 시를 읽을까.
언제나 그렇듯 내 눈동자는 밖으로 열려있지 않다. 내 눈동자는 나를 향해만 눈을 깜빡인다.
운이 좋게 살아남은 지금의 나는 살아남은 나로 인해 내 안 어디에선가 가매장되었을 어느 시절의 나에게 미안해한다.
동시에 살아남은 지금의 내가, 또 다른 운을 기대하고 있는 내가 밉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의 시인처럼 아름답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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